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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보다 낫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어떤 이유에서건 놓치면 아쉬울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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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러 가자는 내 말에 지인은 말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는 보고 싶지 않아.” 그 지인은 심지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말했다. 물론, 영화를 봤더라도 그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영화는 좋은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밝은 영화는 아니니까.


좋은 연출, 좋은 연기, 좋은 각본으로 기억되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이 혹자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원작보다 나은 작품 없을 테고, 게다가 뮤지컬 무대가 원작의 심도와 깊이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당연히 들 테다. 그런 우려와 고정관념 때문에 혹시나 이 멋진 작품을 놓칠까봐 노파심에서 이 리뷰를 적는다. 일단 이렇게 얘기부터 해두면, 당신의 좀 마음이 동하려나? 이 뮤지컬, 영화만큼 괜찮다고. 영화보다 더 매력적인 구석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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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병장 ‘김수혁’은 비무장 지대 수색 중 낙오돼 지뢰를 밟는다. 그러다 우연히 북한 병사 ‘오경필’과 ‘정우진’의 도움을 받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영화 속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연출된 이 에피소드가 무대 위에 흥미롭게 재현된다. 한 치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의 적과의 만남. 하지만 무찔러야 할 적, 악의 축이라고만 생각했던 인민군 오경필과 정우진의 인간적인 모습에 금새 경계는 허물어지고, 김수혁과 오경필, 정우진은 친구가 된다. 

 

남과 북 경계선을 넘으며, 위험한 우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남과 북 사이를 가르고 있는 건 사(死)전선이 아니라 ‘휴’전선일 뿐이다. 이들의 우정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이 평화로울 때만 안전할 뿐. 지금은 서로 공기놀이를 하고, 과자를 나눠 먹고 있지만, 전쟁이 터지면 서로를 향해 총을 들어야 하는 사이다. 이들의 사이가 돈독해지고, 형제처럼 가까워질수록, 비극의 깊이 또한 깊어진다. 

 

우리는 왜 서로를 향해 총을 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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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영화가 아니라 소설 <DMZ>를 원작으로 삼는다. 영화는 스위스 소령 ‘지그 베르사미’를 한국계 여군장교 소피 소령(이영애 분)으로 각색했지만, 뮤지컬에서는 원작대로 ‘지그 베르사미’ 남자 소령이 등장한다. 이정렬이 열연하는 베르사미가 남한군과 북한군 사이에서 총성이 울렸던 ‘그날’의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극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베르사미는 인민군 아버지를 둔, ‘한국어를 무척 잘하는’ 외국인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형제간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아버지와 그 삶에 대해 베르사미는 의혹투성이다. 아버지는 왜 동생에게,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을까? 베르사미 삶 속에 품고 있던 개인적인 의문은, 여기 국경선에서 벌어진 ‘그날’의 사건과 맞물려 커다란 질문이 된다. “이들은 도대체 왜 서로 죽여야 하는가?” 영화 속에서는 관찰자에 머물렀던 소령 역시 이 비극의 축에 가담하면서, 이야기와 감정선은 더욱 명확하고 깊어진다.

 

남과 북이라는 묵직한 이야기만을 다루는 게 아니다. 이 극의 가장 큰 미덕은 이야기의 눈높이를 객석에 잘 맞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남북 관계에 관해 교조적인 메시지를 전하려고도 하지 않고, 평화나 전쟁에 대해 지루한 교훈을 전할 생각도 없다. 그저 우리네 친구들과 닮은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이 문제가 우리 삶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체감하게 한다. 

 

무대 위에 군인들은 군대에서 ‘닥치고 충성’하며 복무하는 이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고 노래한다. 얼른 제대하고 취직해서, 부모님께 효도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노래하기도 한다. 우렁찬 구호로 어버이 수령을 모시는 북한군 역시 엄마가 그리워 남몰래 훌쩍거리는 보통 사람들로 그려진다. 

 

군대, 남북 등 이야기는 외양은 딱딱하게 각을 잡고 있지만, 노래가 흐르고 감칠맛 나는 대사를 주고받으면, 무대는 관객들을 단숨에 몰입시킨다. 여기에는 북한군의 엄격하고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이석준과 임철수의 열연이 큰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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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준은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따뜻한 속내를 가진 오경필을 그대로 연기하고, 임철수는 막내 동생같이 사랑스러운 정우진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빚어낸다. 이들과 어울려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김수혁 역으로는 정상윤이 연기한다. 김수혁은 극 중에서 호기심, 장난기 많은 활발한 모습뿐 아니라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 혼란에 빠진 병사로도 연기하는데, 정상윤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넘나든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사건 이전과 이후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무대 장치도 탁월했다. 무대, 연기, 연출 모든 것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막이 시작할 때, 마치 드라마의 ‘지난 이야기’처럼 1막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요약해서 무대 위에 그려낸다. 1시간 동안 우리가 서로 나눈 이야기들이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상징적인 장면으로 나타나는데 꽤 인상적이었다. 배우들과 관객이 공유한 시간들을 추억처럼 회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왜 미워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과 북의 진짜 비극은, 서로 채 알기도 전에, 서로 적으로 규정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왜 미워하는지 성찰할 기회도 없이, 그저 나쁘고, 원래 나쁜 악마라고 증오심부터 키워간다는 사실이다. 자동 반사처럼, 강력하게 각인된 관념이 사랑과 우정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비극이 안타깝고, 그보다도 우리가 이런 비극 속에 놓여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참 슬픈 일이다. 

 

요즘 신문이나 TV 뉴스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북한은 악의 축이고 간첩, 전쟁, 핵개발, 도발의 대상일 뿐이다. 온갖 부정적인 테그로 둘러쌓여 있는 2014년의 북한. 오늘날 남북 병사가 인간적으로 어울려 친구가 된다는 JSA의 상상력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더욱 생생한 비극으로 다가온다. 

 

의미는 제쳐놓고 일단,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3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뮤지컬 우수작품 제작지원 선정작이다. <내 마음의 풍금> <쌍화별곡> 등을 만든 이희준이 극본과 작사를 맡았고, <인당수 사랑가> <웨딩싱어>의 최성신이 연출을 맡았다. 4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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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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