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Beck) 『Morning Phase』
『Modern Guilt』(2008) 이후 우리는 벡(Beck)의 소식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함께했던 유니버셜 뮤직 산하 레이블인 DGC 레코즈, 영국과 유럽 지역의 판권을 맡았던 XL 레코딩스와 새로이 계약하지 않고 인디 뮤지션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과 거대 자본의 간섭에서 한발 물러나 쉼 없이 음악을 만들고 또 파기했다. 이를 통해 순수한 예술가로서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표출할 수 있었다. 원체 다작의 아티스트라지만, 강박감이 없었기에 더 열정적인 자세로 창작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내용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탈자본으로 돌아간 벡이 행한 그간의 방대한 작업량을 갈무리한 후, 본 작품인 『Morning Phase』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까 한다.
2009년, 오직 홈페이지에서 비디오만 선보인 ‘Record Club’ 프로젝트는 특정 아티스트의 한 앨범을 선정해 모든 곡을 커버해 녹음하는 것이었다. 시대순으로 나열하자면 총 5 장의 명단은 이렇다. 인디 뮤직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The Velvet Underground & Nico』(1967), 고뇌하는 시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Songs Of Leonard Cohen』(1967),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드러머 스킵 스펜스(Skip Spence)의
『Oar』(1969), 호주의 국민 밴드 인엑시스(INXS)의
『Kick』(1987), 그리고 일렉트로 뉴에이지의 거장 야니의
『Yanni Live At The Acropolis』(1994)였다. 다소 어둡고 음침한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대중은 벡 한센(Beck Hansen)이라는 음악가에게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슷한 지향점에 있는 뮤지션들과의 협업도 있었다.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와 제인 버킨(Jane Birkin)의 딸 샤를로뜨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의 최고작이라 평가받는
『IRM』(2009)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창조주 더스턴 무어(Thurston Moore)의
『Demolished Thoughts』(2010), 페이브먼트(Pavement)의 보컬리스트 스티븐 말크머스(Stephen Malkmus)의
『Mirror Traffic』(2011)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자신의 무한정 영역을 확대했다. 2012년 말에는 『Song Reader』 라는 타이틀의 악보를 발매하는 발칙함까지 보이며 팬들의 직접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런 작업을 끊임없지 이어오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온전한 컨트리 스타일이었다.
마침표가 없는 창작열을 불태우며 쉼 없이 내쉬빌과 캘리포니아를 오갔다. 잭 화이트(Jack White)와 함께 그의 레이블인 서드 맨 레코드(Third Man Records)에서 발표한 싱글 「I just started hating some people today」 역시 의미 있는 작업이다. 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창법을 모창에 가까운 수준으로 소화하는가 하면, 곡의 후미에서는 전형적인 잭 화이트식의 개러지 사운드를 등장시킨다. 그동안 스튜디오작만 발표하지 않았다 뿐이다.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실험이라도 하듯 창조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 시작은 2005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완성은 하지 못한 채 지금으로 이어졌다.
“태평양 연안에서 들려오는 포크 록, 그리고 목가적이고 우울한 파워 발라드다.”-벡
스스로를 정의한 이 문장은 앨범을 잘 요약한다. 인털루드(interlude) 격의 오프닝 「Cycle」 를 지나 「Morning」 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Sea Change』(2002)의 머리 곡 「Golden age」 가 연상된다. 사랑이 ‘끝’난 것에 대한 비통한 아픔과 아침이 주는 활기찬 ‘시작’의 메시지는 정반대로 두 곡은 어슷하게 닮아있다. 수록곡에는 내쉬빌 세션에서 미완에 그쳐 남겨진 「Waking light」, 「Blackbird chain」 등이 수록되었다. 특히, 「Country down」 를 빌어 그는 밥 딜런식의 세상에 대한 ‘이별가’라 소개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딜런이 수즈 로톨로(Suze Lotolo)에게 남긴 「All I really want to do」 와 존 바에즈(Joan Baez)에게 작별을 고한 「It' all over now, baby blue」 로 연결되는 트랙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왔던 ‘클래식 포크 록’의 완결 점은 「Blue moon」 에서 결정지었다. 직관적으로 음폭이 깊고 넓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악기가 전후방에 빼곡하게 배치되었지만, 단 한 순간도 소리의 덩어리를 과용하지 않는다. 감상하는 내내 비련과 고통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절정부는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사랑과 평화를 목놓아 노래했던 1960년대 말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비범한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Morning Phase』 는 이미 발매 전부터 각종 음악 전문지의 호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데뷔에서부터 모든 미디어는 그에게 늘 호의적이었지만, 이 작품이 평단과 팬들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Sea Change』(2002)의 스타일이 주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롤링 스톤》에서는 “침묵을 깨고 밥 딜런틱 싸이키델리아로 돌아왔다”고 환호했다. 맞는 말이다.
『Morning Phase』 라는 온전한 포크 음반은 밥 딜런의 향취가 강렬하다. 이처럼 음악적 토대 자체가 ‘통기타’에 있지만 정규작들을 훑어보면 절대로 그것만을 매개로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덜’ 사용했다.
‘밥 딜런형’보다는 ‘닐 영형’에 두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하이브리드’에서 ‘포크’로의 반복적인 전환은 ‘일렉트릭 기타’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수시로 얼굴을 바꿔가며 디스코그라피를 적립해온 닐 영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록과 힙합, 일레트로니카와 포크 뮤직까지 그 무엇을 해도 이상할 것이 하등 없다. 모두가 그를 천재라고 추켜세우는 이유는 진짜 천재여서다. 벡은 매번 다르고, 변함없이 새로웠으며 늘 위대했다. 다시 돌아온 ‘포키’는 예측 불가능함만이 예측 가능한 남자가 되었다.
글/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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