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영(Neil Young)과 그의 오랜 동반자 밴드인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는 새 앨범 < Psychedelic Pill >에서 또 일을 저질렀다. 머리 곡 「Driftin' back」의 러닝타임은 27분이 넘는다. 기껏해야 3분 남짓한 요즘의 싱글 트랙 생래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아마 거들떠보지도 않을 작품일지 모른다. 더욱이 팝 음악에 수절하고 있는 마니아라도 큰마음을 먹고 플레이 버튼을 눌러야 이 곡을 끝까지 들을 수 있다. 아마도 닐 영의 광적인 팬이라도 이 생각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길어도 너무 길다.
차트의 순위나 상업적 욕심은 전혀 없어 보이는 시도라 할만하다. 물론 앨범의 마지막에 ‘Alternative version’을 수록하고 있지만, 수록곡인 「Ramanda inn」과 「Walk like a giant」 역시 16분여가 된다. 이쯤 하면 작정을 하고 앨범 작업에 임했음이 눈에 보인다. 이런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는 대곡의 나열 역시 닐 영에게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안다. 아직도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으신지, 칠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음악가 닐 영의 열정은 젊은 뮤지션에 뒤지지 않는다.
그는 평가가 무의미한 전설 그 자체이며, 재단 불능의 인물로 인정받는다. 최근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음악계 명인들을 예로 들어보자. 롤링 스톤지에서 만점의 평가를 받은 밥 딜런의 < Tempest >(2012)는 그를 대변해왔던 포크 뮤직이라기보다는 블루스에 가까운 원형질의 ‘루츠 테마’였다. 역시 미디어의 특전을 누린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 Wrecking Ball >(2012)은 전성기의 강성과 메시지로 복귀하며 ‘보스의 건재’를 알렸다. 폴 매카트니 역시 < Kisses On The Bottom >(2012)라는 스탠다즈 재즈 앨범을 선보이며 자신의 ‘무한한 음악 스펙트럼’을 다시금 확장시켰다. 이처럼 아무리 대단한 거장일 지라도 대략적인 음악 노선에 대한 예상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설령 다양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전례 없는 파격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계산 못할 수준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닐 영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 혹은 오락가락한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이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들리겠지만, 그의 행보를 꾸준히 지켜본 수용자의 입장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이처럼 장르의 고저장단을 쉴 새 없이 넘나드는 닐 영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넓혀왔다. 같은 세대를 활동해온 뮤지션들은 나이에 걸맞은 원숙하며 여유로운 음악을 이어오고 있지만, 닐 영의 창조물은 여전히 젊고 진보적인 것들이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비음 가득한 가녀린 목소리뿐이랄까.
통기타에서 일렉트릭 기타로의 전환은 닐 영의 펼쳐놓은 디스코그래피의 핵심 키워드다.
< Old Ways >(1985)와
< Landing On Water >(1986), 그리고
< This Note's For You >(1988)와
< Freedom >(1989)의 상관관계도 그렇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과 맞물려 화제를 나은
< Sleeps With Angels >(1994)와 이듬해인 펄 잼과의 유기적인 그런지 콜라보레이션이 빛난
< Mirror Ball >(1995)까지, 심지어
< Rust Never Sleeps >(1978)는 LP의 양면을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으로 각각 채우는 기발함(?)까지 보인다. 이런 편차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막무가내식의 억척으로까지 인식될 정도였으니 ‘재단이 불가능한 뮤지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현재의 닐 영은 이런 ‘전작 뒤집기’의 행보는 잠시 거둬둔 듯하다. 2010년 작
< Le Noise >와 2011년 발표한
< Americana >, 작년 말에 선보인
< Psychedelic Pill >의 기조는 노이즈 가득한 거친 굉음이 중심을 이룬다. 각 작품은 마치 라이브 앨범을 듣는 듯 크레이지 호스 멤버들과의 대화도 들려오며, 원 테이크(one take)만으로 녹음한 듯 악기 간의 조화도 완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첨단을 달리는 레코딩 시스템이 익숙한 요즘의 음악 애호가라면 듣기에 거북할지도 모르는 ‘로-파이(lo-fi)의 록’이다.
이런 피드백과 노이즈로 공간을 가득 채운 ‘하이 볼륨 & 하드 사운드’는 ‘컨트리 & 포크’로 상기되어온 닐 영이라는 인물의 원 심상과는 다르다. 작정하고 내뱉는 독설이며, 시대의 무기력에 대한 통탄의 외침이다. 여기에 반감은 없다. 앨범에 쓰인 길고 긴 러닝 타임은 결코 청취의 장애물이 아닌 바람직한 선택이다. 대신 알 수 없는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는 닐 영만이 가진 음악적 주술의 힘이며, 마법의 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명 기타리스트의 리스트에는 그의 이름이 올라 있질 않다. 굳이 ‘맛깔스러운 기타’라고 옹호할 수도 있지만, 훌륭한 기타 연주로 말하기는 어렵다. 둔탁하며 때로는 투박하기까지 하다. 깔끔하고 깨끗한 믹싱, 세련된 코드 워크와 일률적인 기계음이 지배하는 지금의 음악과도 역시 다르다. 느릿하고 처지는 느낌도 전해지기도 하고, 심지어 그 질감이 거칠다 못해 지저분한 기분마저 드는 소리의 연속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를 통한 발견이 테크닉과 예술적 우수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My my hey hey」에서 반복되는 ‘로큰롤은 절대 죽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는 록은 기능적 우월이 아닌 ‘자세와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닐 영의 최근작들은 황홀한 기타의 향연이 넘실거린다. 그가 행하는 일련의 소리 전개는 우리가 그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있던 소중함을 다시 찾는 경험을 전한다. 느리고 무겁고 진한 인생의 맛을 찾게 한다. 왜 그런지 알 길은 없다. 닐 영의 ‘종잡을 수 없음’은 그만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이며, 유일한 규칙은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닐 영이 행해온 무작위의 나열은 마치 해독제처럼 음악을 지배하고 있다.
글/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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