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코베인은 1967년 2월 20일 미국 워싱턴주 애버딘에서 태어났다. 커트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데에는 그의 가문의 영향이 컸다. 그의 외삼촌은 비치커머스라는 밴드의 멤버였고, 이모 마리는 기타를 칠 줄 알았으며, 큰할아버지는 테너 가수였다. 당시 커트는 비틀즈, 알로 거스리 등을 좋아했다. 커트 코베인은 중학생 때부터 마리화나를 피웠을 정도로 심한 마약 중독자였다. 말년에도 헤로인에 중독되어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공연 중인
크리스 (왼쪽)와 커트 코베인 (오른쪽)
1987년 워싱턴 주의 애버든에서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과 함께 너바나를 결성했다. 너바나는 세션 드럼 연주자와 활동했는데 가장 오래 활동한 연주자는 1990년에 가입한 데이브 그롤이다.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첫 대형음반사(게핀 레코드)와의 계약하에 발매된 <Nevermind>의 「Smells Like Teen Spirit」 이 히트를 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너바나는 펄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등과 함께 시애틀사운드, 혹은 그런지락을 이끌며 80년대 MTV 등장이후 세계 주류음악의 판도를 일거에 흔들어 놓는다. 흔히 말하는 90년대의 얼터너티브 음악 물결은 바로 이 시애틀사운드의 폭발과 함께 만개된다.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그러나, 그러한 밴드의 주류음악에서의 성공을 달가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어떤 죄책감,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말이 94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Grunge is dead"이다.
커트 코베인은 주로 펜더 사의 기타를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펜더 재규어, 머스탱, 재그스탕 등을 자주 사용했고, 스트라토캐스터, 텔레캐스터 등도 사용을 했다. 재그스탕은 커트가 펜더 사의 직접 주문 제작한 제품으로, 머스탱과 재규어 기능을 합친 거와 같다고 보면 된다. 또 그는 모스라이트사의 레스폴형 기타와 유니복스사의 기타도 사용 하였고, 에피폰사의 ET-270 모델도 사용하였다. 그는 많은 공연 도중 수많은 기타를 박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무대에서 보여준 기타 파괴 행위를 물질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강력하게 몸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본다. 또한 불행했던 과거에 담겨 있는 분노, 슬픔 등을 밖으로 배출한 것이라고도 여기기도 한다.
커트 코베인은 1994년 4월 5일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였는데, 경찰은 하나밖에 없는 문이 안에서 잠긴 점과, 타인의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 유서를 남긴 점 등을 들어 자살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경찰이 자살에 사용되었다고 밝힌 총에서 커트 코베인의 지문까지도 전혀 발견되지 않아 누군가 살해한 후 지문을 전부 닦은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경찰이 “문이 하나뿐인데 안쪽에서 잠겨진 상태였다”라는 발표와 달리 문이 두 개였던 것으로 밝혀져 커트 코베인이 타살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또한 커트 코베인의 혈액에서 검출된 헤로인이 치사량의 세 배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이 매우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으며, 그런 상태라면 정신이 매우 혼미하여 장전을 하거나 목표물을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커트 코베인의 시신 옆에 있었던 유서에서도 필체가 “두 사람의 것”이라는 필적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커트 코베인을 살해했을 것이라고 지목된 용의자로는 커트 코베인의 부인이었던 코트니 러브 또는 소속사가 지목되었다. 코트니 러브는 당시 커트 코베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 위기에 있었는데, 결혼생활 시절 “이혼 할 경우 재산 분할을 하지 않는다”라며 내건 조건이 있었다. 그러나 재산을 얻기 위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내연 관계를 유지하며 커트 코베인을 살해한 후 수사 과정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코트니 러브의 아버지 역시 딸의 정신적인 부분을 언급하여 “내 딸이 커트 코베인을 살해했다”라는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커트 코베인의 시신에서 검출된 헤로인 역시 만성 두통에 시달리던 커트 코베인을 위해 코트니 러브가 투약하던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한편, 커트 코베인은 작업 당시 우울증을 앓아 음악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하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소속사가 그와 계약이 끝날 것을 우려하여 커트 코베인을 ‘불멸의 음악가’로 만들어 수익을 올리기 위해 살해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으로 너바나의 짧은 활동은 끝났지만, 밴드의 인기는 그 후에도 지속했다. 그가 예견했듯 90년대 중반 이후 시애틀 사운드를 비롯한 그런지 락의 정점은 기울기 시작했으나, 얼터너티브 락은 그런지이외의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어 90년대가 끝날 때까지 그 거대한 영향력을 지속한다. 2002년에는 밴드가 마지막으로 녹음한 미완성 데모 「You Know You're Right」 가 세계 각지의 라디오 재생횟수 1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데뷔 이후 미국에서만 2500만 장의 음반판매고를 올렸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75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관련 기사]
-새로운 ‘세대 음악’의 출현, 그 성난 얼터너티브 록 - 너바나(Nirvana) <Nevermind>(1991)
-“너는 ‘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해” - 커트니 러브의 홀(Hole)
-너바나 출신의 드러머 데이브 그롤이 이끄는 그룹 - 푸 파이터스
-꼬마 친구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팝, 현실을 노래하다 - 2편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