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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생 예능의 진화, < Let's go(古) 시간탐험대 >
예능을 가장한 EBS 역사 다큐멘터리
출연진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인 <Let's go(古) 시간탐험대>의 고생은 ‘옛 시대를 있는 그대로 살아보기’라는 단순한 규칙에서 나온다. 민속촌에서 전통체험을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제작진은 정해진 시대에 실제로 했던 민중들이 살았던 삶을 철저히 고증해 미션으로 부가한다.
확실히 드라마는 ‘환상’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가 맞다. <Let's go(古) 시간탐험대>를 본 후 이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많은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시대를 간접체험 했지만, 드라마 속 민중들의 삶이 심하게 궁핍해 보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애절한 사랑에 눈길이 갔을 뿐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역사’를 ‘환상’의 세계로 끌고 들어갔다.
예능 프로그램 <Let's go(古) 시간탐험대>는 달랐다. 역사를 리얼 중에서도 ‘진짜 리얼’의 세계 중간에 놓았다. ‘진짜 리얼’이라는 말은 희한한 언어조합임에 틀림없지만, 이 프로그램을 묘사하는 가장 알맞은 단어의 조합이다.
‘리얼’이라는 화두가 대한민국의 예능 판도를 장악한 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리얼’이라는 수식어 뒤에 실험, 버라이어티, 관찰,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형식 또는 소재의 키워드가 붙으며 무한 복제가 되었지만 본질은 하나였다. 바로 어떻게 리얼리티를 살릴 것인가 이다. 사실, 리얼리티를 잘 살리는 방법은 단순하다.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직접 ‘생고생’을 하면 된다. 그렇게 ‘생고생’은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에서는 소와 줄다리기를, 탄광촌에서 연탄 구하기를 했고, <1박 2일>에서는 까나리 액젓을 음료수처럼 들이켰고 야외취침을 일상처럼 보여주었다. <정글의 법칙>은 아예 정글로 떠났다.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는 행동을 할수록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반응이 나오니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일개미처럼 열심히 생고생을 시작했다.
<Let's go(古) 시간탐험대>도 생고생 리얼 프로그램의 맥을 잇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 맥을 그냥 이어받지 않았다. 가장 독하게, 누구보다 리얼하게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출연진들이 대놓고 프로그램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의 진정성이 시청자에게도 느껴질 정도이다. 출연진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인 <Let's go(古) 시간탐험대>의 고생은 ‘옛 시대를 있는 그대로 살아보기’라는 단순한 규칙에서 나온다. 민속촌에서 전통체험을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제작진은 정해진 시대에 실제로 했던 민중들이 살았던 삶을 철저히 고증해 미션으로 부가한다.
조선 성종시대의 노비의 삶을 체험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출연자들을 철저히 노비의 생활로 살도록 한다. 음식을 담당하는 ‘취비’, 불을 담당하는 ‘불담사리’ 등 실제 노비들에게 나눴던 노역대로 출연자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미션을 가장한 일을 시킨다. 부싯돌로 불을 만드느라 4시간 동안 돌을 마찰시키고, 소를 산책시키며 길에 흘린 소똥도 풀을 뜯어 청소하는 모습은 <정글의 법칙>에서 병만족의 고생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심지어 역사서에 적힌 대로 삭힌 오줌과 잿물을 섞어 빨래를 하고, 아침 소변으로 세수를 한다. 이러한 미션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쉬운 축에 속한다. 닭을 손수 잡아 음식을 만드는 일은 예사이고 직접 소를 도축까지 했다. 이쯤이면 <Let's go(古) 시간탐험대>가 예능을 가장한 EBS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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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주리?’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란 사람. 지식을 주기에는 아직 배울 것이 많아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인 TV보기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