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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손과 늑대소년, 그리고 칠봉이
<가위손>의 에드워드(조니 뎁)와 <늑대소년>의 철수(송중기), 그리고<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유연석)
<응답하라 1994>의 마지막 회를 보았다. ‘응사’를 지배한 건 ‘첫사랑’이라는 단어였다. 마지막 회에서 우린 모두 첫사랑과 결혼했다는 대사가 나올 만큼 등장인물들 모두는 첫사랑에 집착하고 (사랑의 성공이 결혼이라면) 한 명의 처절한 패배자를 제외한 거의 모두가 완벽한 승리자가 된다.
1990년대는 물론 2010년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 전 시대에 비해 연애가 훨씬 자유롭고 욕망에 대해 관대한 시대였다. 단 한 명에 대한 지고지순한 순정이 지천에 널려있던 시대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런데, 왜?
어쩌면 역설적으로 여기 비밀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 충분히 받지 못했던 것을 꿈꾸고 싶은 마음이 시청자를 감정이입하게 했다고. 그렇다면 응사의 여주인공 성나정은 아주 영리하게 만들어진 주인공이다. 그녀는 충분히 (첫)사랑하고 또 충분히 (첫)사랑받는, 첫사랑의 완전체이다. 충분히 사랑하는 상대와, 충분히 사랑받는 상대가 서로 다르다는 설정이 함정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되었을 터다.
응사에서 한 여자만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남자는 칠봉이다. 그는 나중에 메이저리거가 되는 천재적인 야구선수에다 유복한 경제적 환경, 밝은 성격을 가진 듯하지만 알고 보면 부모의 이혼 등으로 남들과는 다른 성장과정을 지났다. 그 과정에서 따뜻한 가정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라온 오랜 콤플렉스가 있다. 그러므로 칠봉이 나중에는 스토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토록 심하게 나정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그녀의 따사로운 부모, 또는 신촌 하숙의 화목한 유사가족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칠봉을 나정은 한 순간도 남자로 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냉정히 뿌리치지도 않는다. 마치 큰누이 된 표정으로 그 수 년 간의 애타는 가슴앓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어깨를 두드려주기만 한다. 야, 상대는 바로 너라니까? 라고 알려주면 화들짝 놀랄 것만 같다. 어장관리, 희망고문 등의 불경한 사자성어들이 지나가지만 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므로 그녀가 어떻게 하든 그녀의 자유일 것이다. 그리고 뭐, 자신에게 맹목적인 첫사랑을 바치는 괜찮은 남자를 뎅강 잘라버리는 여자는 사실 현실에서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회에서 드디어 마음을 접기로 결심한 칠봉에게 나정은 말한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꼭 말해줄 거라고. 저 텔레비전 속의 스타가 엄마를 좋아했다고,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잠시 스쳐가는 칠봉의 아스라한 눈빛.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영화 두 편을 떠올렸다. 하나는 얼마 전 개봉했던 조성희 감독의 영화 <늑대소년>이고, 또 하나는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이다.
<늑대소년> 개봉 당시 여러 가지 면에서 <가위손>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들었을 만큼 두 작품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둘 다 옛사랑에의 추억을 손녀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서사라는 점에서 그렇고, 그 추억의 대상이 ‘완벽한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어떤 존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가위손>의 에드워드도, <늑대소년>의 철수도 맹목적이고 순수하게 한 여자만을 바라보며 영원히 그녀를 기다리는 ‘현실에 없는’ 남성이다.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미완성 제품’이었다. 그를 인간으로 창조한 과학자가 마지막 한 부분인 두 손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이다. 손바닥과 손등, 다섯 손가락이 달린 인간의 손대신 가위 모양의 날카로운 금속이 그의 양 팔 끝에 붙어있다. 에드워드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위손’이라고 부른다. 결핍에 의해 존재 전체가 명명되는 것이다. 동네의 고만고만한 일상에서 가위손 청년은 대번에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가위손이 정원수를 멋지게 손질하고, 동네 여자들의 헤어스타일을 아름답게 매만지자 그는 곧 경외의 대상으로 등극한다. 그러다 오해에 휘말려 남의 집 자물쇠를 맘대로 열 수 있는 위험한 인물로 인식되어 배척받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기이한 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인데, 인간들은 제멋대로 그를 판단하고 이용하고 유폐한다. 소년의 첫사랑 대상이었던 소녀 킴은 노파가 되어서야 조금 미안하고 많이 아름답게 그 시절을 회상한다. 에드워드가 첫사랑의 아픈 기억만을 가슴에 품고 머나먼 성에 유폐된 동안, 킴은 나이를 먹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할머니가 되기까지 ‘정상적’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늑대소년>의 순이 역시 한 장의 쪽지를 남기고 도망치듯 철수 곁을 떠난 후 수십 년이 흐르도록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 역시 다른 남자와 다른 인생을 살았다. 바쁘게 사는 동안 그녀는 자기가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긴 것조차 잊고 지냈을 것이다. 할머니가 되어서야 돌아간 그곳에서 철수는 여전히 그때처럼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으로 꽃밭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거기 추억이라 명명한 환상적 공간에 그대로 박제된 듯이.
이 두 편의 영화들은 모두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거대한 일인칭 회고담이다. ‘내 자식한테 너에 대해 말할 거’라며 칠봉을 위로(!)하던 나정의 고백도 어쩌면 킴 그리고 순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건 아닐까. 어떤 남자들은 한 여자를 철저하고 처절하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그저 상대를 죽도록 사랑한 죄밖에 없는 순진무구한 그들의 진심은 제대로 응답받지 못하고, ‘시간’이라는 이름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제 그녀들은 몇 방울의 눈물과 깊지 않은 회한으로 그 때의 소년들을 호명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그것을 ‘아름다운 첫사랑’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일까?
인간소녀의 일인칭 회고담이 아니라, 가위손 소년이나 늑대소년 혹은 타자의 시각으로 새로 쓰는 새로운 방식의 첫사랑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칠봉이의 응사 외전(外傳) 편,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사랑(들)이 궁금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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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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