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지우의 드라마, 당신의 이야기
이선균 이연희 <미스코리아>, 결말이 기대되는 이유
반가워 <미스코리아>, 성공보다 성장을 그릴 테니까
드라마는 분명 성공담이라기 보단 성장기에 가까운 내용이 될 터다. <미스코리아>, 이쯤 되면 노골적인 제목이 다시 보인다. 제목과 달리 이것은 화려한 쇼비지니스 세계에 성공을 위해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 최대,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인 기회를 잡기 위해 뛰어든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이며 그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른 어떤 피상적인 가치 때문이 아니라 좀 더 따뜻하고 다정한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국제통화기금에 유동성 조절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경제부 총리가 1997년 침통한 표정으로 이른바 IMF시대를 선언하던 날을 기억한다. 나라빚이 60조에 육박한다는 발표에 국민들은 충격에 빠져들었고, 사회 분위기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놀랍게도 OECD 가입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뜨린 지 불과 1년이 막 지난 때였다.
간단하다. 그녀가 과연 그럴만한 사람이냐는 질문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반복해 지영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지영은 제게 돌아오는 부당한 대접은 참아도 동료나 후배들에게 온당치 않은 상황을 강요할 땐 제일 먼저 나서고 그 대가로 뺨을 맞고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동료들을 술집 아가씨들처럼 취급하는 상사의 술자리에 마네킹을 이고 가 내려놓고는 대거리를 하는 데에 이르면 그 당찬 매력에 웃음 짓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제 뒤에서 못난 말을 하고 다니던 옛 남자친구를 만나 멱살을 움켜쥐고 거침없이 욕을 내뱉다가 눈물짓는 것이 지영이기도 하다. 그녀의 어깨 위에 운명처럼 내려앉았던 노란 종이비행기는 지영에게 청춘의 한 자락이자 아마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형준과의 추억을 오롯이 담은 매개일 테다. 형준이 떠나고 나서 그녀의 얼굴에 줄줄 흐르던 눈물은 제 형편없는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만은 아니다.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그가 제게 다시 노란 종이비행기를 건네지만 이미 그 속에는 이전의 수줍고 두근거리는 마음 따윈 없다. 지영은 이미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도 안타까움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지영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도, 제 삶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던 순간의 가치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인 셈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현실과 당연한 가치 사이에서 힘겨워하던 그녀가 선택한 길은 미스코리아지만, 결국 그녀가 서게 될 무대도 지금 힘들게 감당하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인 대회,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빛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선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웃음 지으며 외적인 미(美)를 자랑하는 곳 아닌가. 지영이 아끼고 사랑하는 그 모든 가치는 힘을 잃고 오로지 그녀의 신체적 아름다움만을 자로 재 측정하는 곳. 그녀는 다시 그 과정에서 온갖 모욕과 수모를 감당해야 하며 그녀가 올라갈 무대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느꼈던 허망함으로 가득 찬 곳이기도 하다. 자판에 놓인 과일마냥 싱싱하고 건강한 자신을 판매해야 하는 그곳에서 그녀는 과연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을까. 몇 평짜리 좁은 공간에서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기계적인 멘트를 반복하다 몰래 삶은 달걀을 까먹던 자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형준도 그렇다. 오로지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못할 말을 떠벌렸던 여자 친구 앞에 다시 나타나 뻔뻔스레 자신이 퀸 메이커가 되어주겠다 느물대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남모를 죄책감이 숨어 있다. 과거의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또한 그 앞에 서던 자신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는 탓이다. 휘청대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지영을 찾아 뛰어나가지만, 형준은 끝까지 그녀를 이용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드라마는 미스코리아를 위해 하나로 뭉친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할 것이다.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로맨스라는 장르가 원래 그러하거니와, 이것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의 가치를 강조해 온 서숙향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들이 잡으려는 이 절박한 기회가 그저 더 중요한 가치를 깨닫기 위한 조건이 되리라 생각한다. 가끔은 돈, 외적인 아름다움, 혹은 명예나 성공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1997년의 추위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깨달아 가리라.
이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분명 성공담이라기 보단 성장기에 가까운 내용이 될 터다. <미스코리아>, 이쯤 되면 노골적인 제목이 다시 보인다. 제목과 달리 이것은 화려한 쇼비지니스 세계에 성공을 위해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 최대,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인 기회를 잡기 위해 뛰어든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이며 그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른 어떤 피상적인 가치 때문이 아니라 좀 더 따뜻하고 다정한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의 결론이 무엇보다도 기다려진다. 드라마는 말할 것이다. 지영의 머리에 올라갈 왕관보다 더욱 빛나는 그 무언가가 그녀의 눈 속에 있다고. 고되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제가 얻은 것이 단순히 왕관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가치 있는 무엇임을 깨달은 지영의 미소를 보라고. 그리고 분명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테다. 그 깨달음은 드라마에서 가장 값진 것 중 하나임이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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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