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한 팀의 스토브리그가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정규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넥센을 기적 같은 리버스 스윕으로 이기고 올시즌 돌풍의 팀인 잠실 라이벌 LG마저 꺾은 후 디펜딩 챔피언 삼성을 벼랑까지 몰았다가 아쉽게 패한 ‘미라클 두산’ 말입니다.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 등 내부 FA 3명이 모두 팀을 떠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투타의 베테랑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주던 김선우, 임재철이 사실상 방출 및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팀을 떠났습니다. 거기에 ‘포스트 김동주’로 애지중지 키우던 거포 유망주 윤석민이 넥센 외야수 장민석(장기영)과 전격적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결국 팀의 수장인 김진욱 감독이 전지 훈련을 하던 중 전격 경질되었습니다. 두산 팬들은 스포츠면 보기가 무서울 지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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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삼성 라이온즈] |
LG 트윈스 암흑기의 시작은 감독 경질서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광폭 행보는 준우승한 팀의 모습은 아닙니다. 아 물론 준우승한 감독을 경질한 예가 있긴 합니다. 바로 같은 홈구장을 쓰는 잠실 라이벌 LG 트윈스입니다. 월드컵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2002년 가을, LG는 힘겹게 4위로 올라와 강호 현대와 기아를 연달아 격파하고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됩니다. 당시 삼성은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위해 해태에서 우승 청부사 격으로 김응용 감독을 영입한 상태였고 양준혁이 클린업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타선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모두 거쳐 지칠대로 지친 LG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죠.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아시는 바대로 KBO 역사상 손꼽히는 명승부였습니다.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삼성이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삼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LG의 저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LG의 이런 저력의 중심에는 바로 ‘야신’ 김성근 감독이 있었습니다. ‘야신’이란 별명도 이 시리즈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승장 김응용 감독이 “마치 ‘야구의 신’과 대결하는 것 같았다”라고 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죠. 당연하게도 많은 야구팬들은 2003년 시즌의 LG가 더 강한 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LG 트윈스의 프런트는 김성근 감독을 전격 해임합니다. ‘신바람 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고서 말이죠. 이후 결과야 다들 아시는 바대로 LG는 작년까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최악의 암흑기를 겪게 됩니다. 준우승한 감독을 명분 없이 경질한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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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두산 베어스] |
윤석민은 제2의 박병호가 될 것인가
준우승 감독 경질 말고도 두산이 LG의 길을 따라간 것이 또 있습니다. 거포 유망주 트레이드입니다. 2011 시즌, 4강의 가능성을 어렵게 어렵게 이어가던 LG는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 마무리 투수의 부재를 타개하기 위해 박병호와 심수창을 넥센에 내주고 송신영과 김성현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박병호는 아마 시절 4연타석 홈런을 칠 정도로 엄청난 괴력을 소유했던 거포 유망주였지만 프로에 데뷔해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기량보다는 멘탈의 문제였습니다. 가장 넓은 구장인 잠실을 홈으로 쓰고 있었다는 것도 불리한 대목이었죠. 팀과 본인 모두 부담감과 조급증을 안고 있다 보니 제 실력이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팀은 박병호를 트레이드 카드로 쓰게 되고 잠실보다 훨씬 작은 목동으로 간 박병호는 김시진 감독의 보살핌 아래 부담감을 완전 떨친 후 무서운 거포로 변신하게 됩니다. 작년 그리고 올해 MVP를 연속 수상하며 넥센만이 아닌 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강타자가 된 것이죠. ‘거포 유망주’는 함부로 트레이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LG를 포함, 모든 구단에게 새삼 깨닫게 해 주면서 말이죠. (박병호를 주고 받아온 송신영은 SK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블론을 하게 되고 이 이후로 LG는 사실상 4강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윤석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2의 박병호’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기간 동안 박병호보다 더 많은 홈런을 때려냈으니 당연한 예상이죠. 거기에 윤석민은 박병호와 마찬가지로 내야 수비가 가능해(1루만 가능한 박병호와 달리 윤석민은 3루 수비도 가능합니다)가 아주 높습니다. 반면 윤석민을 내주고 받아 온 장민석은 나이도 윤석민보다 많고 주루 외에는 크게 장점이 없는 선수입니다. 이종욱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지만 거포 유망주를 내주고 메울 것이었으면 임재철을 보낸 게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두산 팬들이 흥분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이번 트레이드는 카드가 두산에 너무 기울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넥센에 당한’ 트레이드였습니다.
내년 시즌, 연패에 빠진다면…
두산의 ‘LG 따라하기’ 완결판은 고참들에 관한 것입니다. LG는 2004년 이순철 감독 재임시 이상훈, 김재현, 유지현 등 팀의 간판급 고참들이 줄줄이 은퇴하거나 팀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팀은 구심점이 사라진 채 팀 역사상 최초로 꼴찌를 경험하게 되지요. 10년 암흑기의 가장 큰 원인을 바로 이 팀의 중심을 잡아 줄 고참의 부재로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두산은 이번 스토브리그서 앞서 말한 것처럼 임재철, 김선우, 이종욱, 손시헌 등 고참들이 모두 팀을 떠나갔습니다. 남은 고참은 홍성흔 정도. 두산 프런트야 자신들의 두터운 선수층과 올시즌 기량이 급성장한 민병헌, 김재호, 오재일 등등을 믿고 있겠지만 문제는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입니다.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 이 위기를 탈출하는 실마리는 신진세력보다는 고참 베테랑들에게서 나옵니다. 젊은 선수들은 잘할 때는 무섭게 치고 나가는 맛이 있지만 뭔가 꼬여갈 때 이를 풀어나갈 힘은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험 부족 때문이죠. 올시즌만 해도 두산이 연패에 빠지거나 위기일 때마다 이종욱이 팀을 살려내곤 했습니다. 눈야구 하면서 출루하고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로 투수를 흔들리게 하고 결승타도 많이 때렸습니다. 내년에는 누가 이 역할을 하게 될까요. 고참들을 모두 내보낸 뒤 연패나 위기를 끊어 낼 ‘플랜 B’는 있기는 한 걸까요.
희극일까 비극일까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특히 두산 팬들은 ‘무슨 재수없는 소리를 그렇게 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준우승 감독을 경질하고도 이듬해 좋은 성적을 올린 경우도 있습니다. 2010년 선동열 감독을 경질하고 이듬해 우승을 차지한 삼성처럼. 또 고참들을 대대적으로 내보내고도 좋은 성적으로 세대교체를 완수한 팀들도 종목을 막론하고 많이 있습니다. 윤석민과 트레이드 된 장민석이 내년에 ‘미친 활약’을 할지도 모를 일이죠.
마르크스 말대로 역사는 두 번 반복됩니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이번 두산의 행보가 10년 전 LG와 비슷한 바 결과가 희극으로 끝날지 비극으로 끝날지 저도 몹시 궁금합니다. ‘선수가 들어온’ 한화나 NC보다 ‘선수가 나간’ 두산의 성적이 더 궁금해 지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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