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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남주나>, 우리네 삶을 볶아내는 순간들

안방극장, 순수함이라는 의외의 복병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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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을 해도 어쩐지 더 퉁명스러워지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은 사람들, 가족. <사랑해서 남주나>가 공감을 얻는 것은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결코 억지스러운 시선으로 그려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드라마를 많이 보다 보면, 훌륭한 캐스팅만이 좋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온 가족을 노린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일수록 특히 그렇다. 시청자를 TV 앞에 잡아두는 것은 화려한 배우의 얼굴보다는 같이 나오는 출연진들의 ‘합’일 경우가 많다. 과하지 않게 서로의 연기를 뒷받침해 보는 내내 기분을 좋게 하는 드라마, 시청자들은 그런 드라마를 향해 한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놓는다.

처음에는 <사랑해서 남주나>를 조금 쉽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막장을 섞은 스토리 구성에다 전광렬, 황신혜, 거기에 ‘연기돌’로 변신한 소녀시대 서현까지 출연하는 같은 시간대 경쟁작 <열애>에 비해 전투력이 살짝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주부들을 겨냥한 것이 분명한 ‘일일드라마스러운’ 제목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승자는 <사랑해서 남주나>였다. 2회 들어 <열애>와의 시청률은 더 벌어졌다. 시청자들은 막장 대신 공감을 선택한 것이다.


사랑만 해도 아까울 시간, 황혼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사랑해서 남주나>는 그동안 안방극장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소재인 중년의 재혼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은퇴한 판사인 정현수(박근형)와 동네 반찬가게 주인 홍순애(차화연)의 로맨스가 그것이다. 세간의 존경을 받는 강직한 판사였지만, 막내 재민을 밖에서 낳아온 이후로 가족들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정현수, 그는 몇 해 전 아내마저 잃고 혼자 살림을 꾸려간다. 반찬을 사러 가끔 들르는 반찬가게의 주인 홍순애가 은근히 신경 쓰인다. 혼자 사는 그녀에게 접근해 오는 남자들과 한 번쯤 말을 섞을 법도 한데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내치는 그녀의 모습이 싫지 않다.


정현수를 보는 홍순애의 마음도 그렇다.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지 늘 쇠고기 장조림만 사가는 그 양반의 모습이 늘 짠하다. 그러나 중년의 로맨스는 탐색만을 반복하다 제풀에 지치는 젊은 연애와는 제법 다르다. 홍순애는 제법 적극적으로 정현수에게 구애(?)를 시작했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것저것 가릴 것 없는 이들의 늦은 연애는 제법 뜨거울 공산이 크다. 오히려 이들의 연애를 막는 것은 연적이 아니라 자녀들이다. 부모의 늦은 연애를 달가워하지 않는 자녀들의 방해공작을 뚫고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지, 갈수록 늘어나는 이혼에, 지긋한 나이에 서로를 ‘남자친구’, ‘여자친구’로 부르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시대의 모습을 드라마가 얼마나 반영할지 기대가 된다.


3등, 4등인 우리들이 만드는 사랑

반면 젊은이들의 사랑은 난항을 겪는다. 이혼을 한 것도,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들의 사랑은 채울 것이 많아 너무나 힘겹다. 전직 판사 아버지, 정신과 의사인 매형, 대학 강사인 작은누나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이 정재민(이상엽)에게는 언제나 감옥이었다. 늘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아버지의 기대를 채우려 노력했지만 결국 대학도, 학점도, 취업까지도 어느 하나 아버지에게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2%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학교도 서울이 아니라 지방 캠퍼스를 다녔고, 학점도 평균 B 정도고, 필기시험 실력도 항상 최우수는 아니고 우수 정도고, 그러다 보니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괜찮은 회사에 인턴 사원으로 간신히 뽑혔는데 스펙이 시원치 않다보니 결국 정사원에 뽑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처음부터 일등이지 않으면 일등할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어느 회사든 최고만 뽑으려고 하니까요. 일등끼리 모여도 그 속에는 최고가 있고 이등끼리 모이면 또 그 속에 최고가 있죠. 삼등 사등 마찬가집니다. 저도 하느라고 했는데 항상 저보다 잘난 사람이 꼭 있더라고요. 그게 제 비극이죠.” <사랑해서 남주나> 2회 중에서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보지 않고 조건 없이 감싸준 사람이 송미주(홍수현)이었다. 그러나 미주를 지치게 한 것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 미래였다. 은행 계약직 직원인 자신이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재민이기를 바랐지만, 어디를 보아도 믿음직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재민과 평생을 함께할 자신이 점점 없어지는 그녀였다. 결국 그들의 관계는 끝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아직 감정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한 이별, 이제 부모의 재혼이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만나게 될 두 사람은 어떤 관계를 엮어 나가게 될까.


매일 상처받아도 매일 다가가는 그 이름, 가족

같은 말을 해도 어쩐지 더 퉁명스러워지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은 사람들, 가족. <사랑해서 남주나>가 공감을 얻는 것은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결코 억지스러운 시선으로 그려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 중 정유라(한고은)의 대사처럼 “모든 가족이 그렇게 잘 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가야 할 최후의 보루 역시 가족의 곁이다. 매일 상처받아도 또 매일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관계,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그 관계에 대해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이 드라마가 기대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백 마디 말이 아버지가 어깨 위에 툭 올려놓는 손만 못하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알려준다. 연인에게 거는 전화 한 통보다 가족에게 보내는 문자 한 통이 더 어려운 당신, 지금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당신에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드라마 <사랑해서 남주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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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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