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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고등학생 때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책 읽기에 별로 취미가 없는 아이였어요. 바로 손아랫누이가 삼중당문고를 잔뜩 사놔서 그 가운데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기는 했지만, 다독과는 거리가 멀었죠. 수업시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랑 페이 더너웨이 사진을 친구들에게 돌리다가 선생님께 들켜 얻어터진 적은 있지만, 교과서 말고 몰래 다른 책을 읽은 적은 없어요. 중1 겨울방학 때 심훈의 <상록수>를 읽으며, 눈물을 뺐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그 소설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아, 고등학교 때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은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이 소설들은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그것도 제 바로 손아랫누이가 크리스티 팬이어서 집에다 크리스티 책을 쌓아놓은 덕에 읽은 겁니다. 그런데 고1때 처음 읽은 <워드파워 메이드 이지>라는 책은 특별히 기억나네요. 어떻게 보면 영어단어 학습서에 지나지 않지만, 그게 제게는 유럽문화로 들어가는 문이었어요. 열 번도 더 읽은 것 같아요. 지금도 그 내용이 뇌리에 꽤 또렷이 박혀 있어요. 아,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때 대입 준비는 제쳐놓고 국어학 책을 열심히 읽기는 했습니다. <우리말본>과 <한글갈>을 비롯해서, 당시 종로서적에서 구할 수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님 책은 다 읽은 것 같아요. 꽤 전문적인 책들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제게는 술술 읽혔어요. 지적 궁합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외솔협회에서 나왔던 <나라사랑>이라는 잡지도 꼬박꼬박 사 봤구요. 나중에 언어학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그 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책 읽기에 전혀 취미가 없지는 않았군요. 다만 편식을 했던 거지요. 외국 소설로는 중3때 읽은 스탕달의 <적과 흑>,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가 인상 깊었습니다. 대중소설들은 좀 읽었어요. 최인호와 한수산, 박범신 소설을 읽었던 것 같네요.” 소설가도 지식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게 투르니에를 읽고부터 “국내소설로는 최인훈 소설과 이청준 소설을 꽤 읽었습니다. 최인훈 선생님 소설엔 정말 빨려 들어가서 읽었습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 같은 거야 전혀 안 해 봤지만, 최인훈 소설들을 읽고 소설가란 멋진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렇지만 이청준 선생님 소설들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문단의 평판에 영향을 받은 거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좀 어리석은 짓이었어요. 프랑스 소설은 꽤 많이 읽었는데, 그건 제가 대학 때 프랑스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읽은 프랑스 소설들은 거의 다 불어로 읽었습니다. 특히 앙드레 말로와 생택쥐페리의 소설은 불어로 빠짐없이 읽었던 것 같아요.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또는 태평양의 끝>은 한국어로 번역되기 한참 전에 읽었는데,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설가도 지식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게 투르니에를 읽고부터입니다. 그러나 대학 때는 창작물보다는 사회과학서적이나 비평서를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영어로 읽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저를 완강한 반공주의자로 만들었어요. 그 책 덕분에 저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한국의 저항적 지식사회를 풍미했던 마르크스주의에 전혀 감염되지 않았죠. 리영희 선생님이 마르크스주의자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7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에 크게 유행하던 그 분의 책을 빠짐없이 읽었는데도 그 책들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좀 깔봤다고 말하는 게 옳을 거에요. (죄송합니다, 리영희 선생님!) 그러나 제가 골수 우파가 되지 않은 건, 역시 대학시절에 영어로 읽은 존 롤스의 <정의론> 덕분입니다. 결국 포퍼와 롤스 덕분에 저는 완화된 사회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호적 관찰자, 또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 정도의 이념적 좌표를 지니게 된 셈입니다. 그리고 김현, 김우창, 백낙청 선생님들의 문학비평들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세 분 다 제 문체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한참 뒤 복거일 선생님의 문체에도 좀 영향을 받은 것 같구요. 그렇지만 지금 제 문장을 보면 그 분들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그분들의 문체들이 버무려지고 제 개성이 거기 섞이면서 전혀 새로운 문체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한 때는 수집벽이 있었어요 “한 때는 수집벽이 있었어요. 잠잘 공간만 빼고는 제 방이 거의 다 책이었던 적도 있었죠. 그런데 스물일곱 살 땐가, 저희 집에 화재가 나 전소가 됐어요. 당연히 그 때까지 모았던 책들이 다 망실됐죠. 그 뒤로는 수집벽이 없어졌어요. 물질로서의 책에 허망함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 뒤론 책을 읽고 나면 남에게 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사전류는 예외죠. 그것들은 항상 옆에 두고 보아야 할 책이니까요. 외국어사전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어사전을 모았고, 그 사전들은 지금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 살 때, 사전류를 보이는 대로 사들였죠. 그런데 인터넷시대가 열리고 보니까, 그런 사전들의 쓸모가 크게 줄어들더군요.”
나의 책읽기 습관 “제목과 목차, 처음 몇 페이지에 유혹당하는 편이지요. 사실은 술집도 가던 데엘 자주 가게 되듯, 책도 읽었던 저자들의 책을 집게 됩니다. 예컨대 복거일 선생님 책은, 제가 그 분의 이념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꼭 읽게 됩니다. 소설이든 사회비평이든 다요.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무튼 재미있어요, 복 선생님 책은. 그런데 여러 책을 동시에 읽지는 못해요. 항상 한 책을 마무리한 뒤에야, 다음 책을 읽습니다.” 요즘이 제 책읽기의 전성시대 “시집이나 잡지를 제외하면, 일주일에 한두 권 정도에요. 게으른 독자죠. 책을 가장 많이 읽던 시절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문학, 출판, 학술을 담당하던 기자 시절이요. 직업적으로 읽어야 했으니까요. 그 땐 하루에 두 권 정도를 완독했던 것 같아요. 대충대충 읽을 때는 하루에 서너 권을 읽기도 했구요. 그렇지만 의무적으로 읽는 책들은 재미가 없지요. 요즘엔 글도 쓰지 않으니까, 글쓰기를 위한 독서도 하지 않아요. 완벽하게 재미를 위한 독서만 하죠. 그래서 요즘이 제 책읽기의 전성시대인 것 같아요. 독서량과는 상관없이.” 최근에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이라는 책이요. 20세기 해석학의 고전이죠.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철학 분야의 비판적 지성사라고도 할 수 있구요. 말이 좀 우습지만, 그 유명한 책에서 새로 배운 게 거의 없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건방져서 죄송합니다. 아, 또 하나는 며칠 전에 읽은 미셸 푸코의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라는 책이요. 푸코는 국가박사학위 부논문으로 칸트의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이라는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거기 긴 서설을 첨부했는데, 그 서설이 바로 이 책이에요.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제가 푸코를 역사학자나 철학자로만 여겼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이한테 꼼꼼한 텍스트비평가나 문헌학자의 기질도 있었다는 걸 깨달아서예요.” 언어학자, 에세이스트, 소설가로서의 탐색에 영향을 받은 책은 언어학에서는 최현배 선생님의 <우리말본>,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와 트루베츠코이의 <음운론 원리>, 루이 옐름슬레우의 <언어학 에세이>, 로만 야콥슨의 <선집>(일곱 권으로 나왔던 것 같네요), 콜린 렌퓨의 <인도-유럽 수수께끼>, 촘스키의 <통사구조론>과 <데카르트 언어학>, 윌리엄 레이보브의 <사회언어학> 같은 책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영향을 끼쳤습니다. 언어에 대한 관점이나 관심분야 그리고 추상도가 조금씩 다른 책들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언어학이 관심을 안 가질 대상은 없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됐죠. 에세이와 저널리즘 분야에서는 라로슈푸코, 라브뤼예르, 파스칼, 에밀 시오랑의 여러 에세이들과 임재경 선생님의 <상황과 비판정신>, 정운영 선생님, 디디에 에리봉(르누벨옵세르바퇴르 기자), 로베르 마지오리(리베라시옹 기자)의 책들이 생각나네요. 산문정신이라는 게 뭔지를 가르쳐준 책들입니다. 축적된 사색과 경험의 순간적 폭발이 지성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준 책들이요. 제가 에세이스트나 저널리스트라고 불리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건 이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지요. 소설로는 최인훈 선생님과 복거일 선생님의 작품들입니다. 아, 본디 직업은 고전문학자이지만 대중소설가이기도 했던 에릭 시걸의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이분들의 소설들에 빨려들면서 아, 역시 나는 좌파가 될 수 없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았지요. 책은 재미로 읽자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어요, 재미말고는. 책 읽는 게 재미없다면, 책 읽을 필요가 없지요. 책은 재미있고 유익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재미가 먼저죠. 재미없는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자신을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건데요.

명사 소개

고종석 (19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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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 인문/사회 저자

최신작 : 어린왕자

간결하면서도 냉철한 글로 유명한 고종석은 이 시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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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추천

김우창 전집 1

김우창 저

한국 최고의 생존 인문학자라 할 저자의 첫 평론집입니다.. ‘현대문학과 사회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이 책은 그 바탕이 문학비평서지만 문학 바깥 공간에도 뾰족한 시선을 건넵니다. 뒷날 저자의 라벨이 된 ‘심미적 이성’(비록 이 개념의 저작권은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에게 있지만)의 뿌리가 이 책에 박혀 있어요.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서는 미학과 논리에 대한 살핌이, 실존과 가치에 대한 성찰이 완미하게 얽히죠. 내용도 형식도 이성과 감성을 아울러 휘젓습니다. 김우창 선생님의 문체는 강철 같은 사유인의 문체이자, 흐르는 물 같은 예술가의 문체라고 할 수 있어요.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칼 포퍼 저/이한구 역

앞 책에 대한 해독제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먼저 읽어버리면, <공산당선언>이 재미없어집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겠다 마음먹었으면 <공산당선언>을 읽은 뒤에 읽는 것이 좋습니다. 포퍼의 날카롭게 벼려진 언어의 칼이 이 책에서 겨누는 것은 플라톤과 헤겔과 마르크스예요.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전체주의의 이념적 두목들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좀 고쳐 훔쳐오기로 하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고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수는 없어요!

공산당선언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저/이진우 역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책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가장 선동적인 책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공산당선언>은 한 세기 이상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죠. 이 책의 시작(유령 하나가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과 끝(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은 독자들에게 익숙할 겁니다. 그러나 통독을 권합니다. 물론 낡고 일그러진 세계관이에요. 저도 이 책의 세계관에 공명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 책은 고전입니다! 또 이 19세기 책에서, 바로 지금의 자본주의에 대한 몇 줄기 통찰이 읽히기도 합니다.

미당 시전집 1

서정주 저

시중 서점에서 이 얄팍한 시집을 따로 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서정주 시전집>을 사서 <화사집> 부분만 읽어도 좋을 것 같네요.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말은 이제 글 좀 쓴다는 장삼이사 아무한테나 붙이는 상투어가 돼버렸지만, 이 오마주를 진실무위한 차원에서 독차지할 자격이 있는 한국어 화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서정주 선생님이지요. <화사집>은 그이의 첫 시집입니다. <화사집>을 읽는 것은 한국어의 관능 속에 깊이 잠겨 그 속살을 더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집을 읽으면서도 전율하지 않는다면, 자기 한국어 감각을 의심해 보는 게 좋아요. 열번이고 백번이고 읽으세요. 모국어가 얼마나 아리따운지 알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아주 슬픈 일 하나는 꼭 기억하세요. 이렇게 아름다움 모국어를 쓸 줄 알았던 시인의 삶이 추레하기 짝이 없었다는 거요. 그걸 생각하면 문학이라는 건 참 하찮은 것 같아요.

WORD POWER made easy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노먼 루이스 저/강주헌 역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책은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영어 낱말 학습서입니다. 실용성도 그리 크다 할 수 없어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지 않는 ‘낡은 낱말들’도 적잖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원을 중심으로 영어 낱말들의 세계를 주유하는 이 책은 제게 처음으로 지적 충격을 준 책입니다. 저는 10대 후반에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어(를 포함한 현대유럽어)에 ‘그레코로마니즘’이라 부를 만한 문화유전자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깨닫게 되었죠. 좀 구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책은 ‘태서(泰西)문화 입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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