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의 태양> 안주하지 않는 고수들의 자기 비틀기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보이는 여자와 봐야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남자의 반전 로맨스
이런 비틀기를 통해서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 사랑이다. 태공실과 엮이며 주중원은 ‘계산’을 하는 머리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마음이 태공실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중원은 늘 되뇌어 왔던 자신의 신념, 즉 마음은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할 뿐, 가장 확실한 것은 머리라는 신념을 어겨야 할 상황에 놓인다. 그는 명확한 머리를 선택한다.
드라마의 흥행 요소를 꼽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 짱짱한 캐스팅, 좋은 극본, 감각적인 연출. 이 삼박자가 드라마 흥행의 3대 요소임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 <주군의 태양>은 시작하기도 전에 흥행이 점쳐진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쾌걸춘향>, <환상의 커플>, <최고의 사랑>등 줄줄이 히트작을 낸 홍정은, 홍미란-일명 홍자매-작가의 작품에 <바람의 화원>, <찬란한 유산>, <추적자>를 연출한 진혁 감독, 여기에 화룡점정은 캐스팅이 었다. ‘소간지’ 소지섭과 ‘공블리’ 공효진이 가세한 이 드라마는 흥행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5주째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노련한 드라마쟁이들은 쉽게 딸 수도 있는 시청률 금메달을 결코 쉽지 않게, 오히려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지우는 방식으로 얻고 있다.
일명 ‘로맨틱 호러’ 장르를 표방한 이 작품은 설정부터가 독특하다. 사고 이후 귀신을 보는 능력이 생긴 태공실(공효진)은 킹덤 호텔 사장 주중원(소지섭)을 만질 때만은 귀신이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든 주중원의 옆에 있어야 하는 태공실. 그러나 태공실이 필요한 것은 주중원도 만만치 않다. 오래 전, 자신의 납치 사건 때 죽음을 당한 차희주(한보름)를 만나 의문점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주중원은 귀신을 만나기 위한 ‘레이더’로 사용하기 위해 태공실을 비서실에 취직시켜 준다. 우연의 반복을 통해 사랑이 쌓이는 여타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철저히 필요에 의한 ‘결탁’으로 출발한 관계다.
회가 거듭될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든 것을 갖춘 주중원이 아니라 조금 모자라 보이는 태공실이다. 킹덤 호텔에서 일어나는 각종 소동들은 귀신을 보는 그녀의 능력 덕분에 무사히 해결된다. ‘계산할 수 있는 것’을 최고로 치는 주중원은 킹덤 호텔의 가치를 높여 주는 태공실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된다. 많은 여주인공들이 주로 왕자의 무조건적인 도움을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왕자와 캔디 드라마에 끼워 넣는다. 그들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태공실은 백마 탄 왕자 주중원을 잡으려다 ‘까인’ 캔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주중원은 답답해한다. 차라리 캔디 이야기면 ‘계산’이 가능할 텐데, 귀신을 보는 여자와 엮이는 것은 어떤 예상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중원은 태공실에게 차라리 캔디를 하라고 제안한다. 홍자매는 여기에 자신들의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의 비틀기를 시도한다. 집과 차를 사 주고 공부도 시켜 주겠다는 주중원에게 태공실은 묻는다. “사장님, 뭐 큰 귀신 잡을 일 있어요?” 이후 나온 말이 더 가관이다.
“큰 집은 귀신 숨을 데가 많아서 필요 없고요, 차는 면허는 있는데 운전하다 뭐 튀어나올까 봐 없어도 돼요. 공부는 생각하고 있는데 요즘 같아서는 옆에 귀신이 있어도 시험 볼 것 같아요.”
이들에게 캔디는 애초에 가능한 설정이 아니었다. 드라마가 계속되며 역할 바꾸기는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늑대와 염소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주중원을 보면서도 은근히 자신이 주중원을 좋아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태공실. 과연 염소(주중원)는 자신을 희생해 늑대(태공실)을 지키게 될까?
태공실: 전에 본 만화영화에서 벼락 치는 날 늑대가 염소를 만났어요. 늑대는 살기 위해서 염소를 잡아먹어야 되는데 염소가 너무 좋아져서 못 먹고 굶어 죽을 뻔해요. 생존을 위해선 먹을 건 먹을 걸로 봐야지 좋아하는 염소로 보면 안 되는데 참 바보 같죠? 저는 그런 짓 안 해요.
주중원: 그러니까, 그쪽 늑대가 이쪽 염소를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생각하신다?
태공실: 네. 그러니까 자꾸 늑대한테 염소 좋아하냐고 묻지 마세요.
주중원: 뭐 그래, 좋아. 그럼 늑대는 그렇다 치고, 염소는 어때?
태공실: 거기서는 염소도 늑대를 좋아해요.
주중원: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태공실: 되게 많이 좋아해서 그래요. 늑대야 나를 잡아먹어.
주중원: 그 염소 미쳤구나.
태공실: 그렇다고 늑대가 염소를 잡아먹겠어요? 좋아하는데….
이런 비틀기를 통해서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 사랑이다. 태공실과 엮이며 주중원은 ‘계산’을 하는 머리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마음이 태공실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중원은 늘 되뇌어 왔던 자신의 신념, 즉 마음은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할 뿐, 가장 확실한 것은 머리라는 신념을 어겨야 할 상황에 놓인다. 그는 명확한 머리를 선택한다. 그리고 비즈니스적 판단을 통해 가장 ‘확실한 결혼’을 하려 마음먹는다. 드라마는 내내 말한다. ‘마음이 정직하게 굴지 않을 땐 통증이 답을 준다’고. 쿨한 척 자신을 대하는 태공실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는 주중원.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10회가 마무리되었다.
이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결과로 향하는 길의 궤적이다. 주중원은 아직 난독증을 치료하지 못했고, 태공실 또한 귀신이 보이는 증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로의 상처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품을 리 없는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이를 극복하게 될까. 주중원의 아버지가 한 말에서 조금의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자신과 겨루지 마라.
미래의 자신을 기대해라.
현재의 자신을 사랑해라.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는 현재의 모습을 긍정하는 일, 10회에서 주중원은 태공실을 선택한 것을 통해 이것에 한 발을 내디뎠다.
아직 풀지 못한 매듭이 남은 상태에서 이 드라마는 어떤 비틀기를 선택할까. 태양은 어떻게 주군에게 빛이 될까. 안주하지 않는 고수들이 펼치는 이야기의 향연, 그것이 <주군의 태양>을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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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궁금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했다. TV와 영화, 책과 음악이 숨 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저녁이 매일 이어지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