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희, 고민이 많은 건 다 함께 살기 위해서
대학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이유 언어학은 돈 버는 학문
함께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게 사회인데 자꾸 단절되는 듯합니다. 교육이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단적인 예로, 요즘 국사 교육이 화두잖아요. 예전만 해도 국사가 필수였는데, 지금은 아닌데요. 공유하는 지식이 다르다 보니 세대간 소통이 안 되고 그게 정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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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백조가 되고 싶은 한국외대 살찐 미운 오리 새끼,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공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공부를 좋아하지만, 공부하기 쉽지 않다면서요?
네, 공부하기 어렵습니다. 대학에서는 신입생의 기본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데요. 일부 대학에서는 고등학교 때 이미 배워야 했을 영어, 수학을 따로 가르치기도 하고요. 학생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교수님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오래 전에 썼던 강의노트를 그대로 사용하는 교수님도 있고, 신변잡기 이야기로 강의 시간을 떼우는 교수님도 있고요.
왜 그럴까요?
대학에서 교수님이 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습니다. 연구하기에도 벅찰 텐데 강의도 하고 학교 행정 업무도 맡고 있잖아요. 강의 전담 교수, 연구 전문 교수를 따로 뽑고 시간 강사 처우를 개선하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의로부터 학문을 배울 수 있겠지만, 공부는 스스로 할 수도 있잖아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알겠지만, 대학에 와서 바로 공부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결국 교수님이나 선배가 이끌어줘야 하는데, 문제는 선후배 교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보통 공대는 랩실이 있고, 인문대나 사회대에도 연구소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대학원생 위주고 학부생이 용감하게 연구소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죠.
대학이 기업화되었다는 말이 많잖아요.
학문이 소비되고 있어요. 신입생 커리큘럼을 한 번 보세요. 정말 공부하고 싶어집니다. 정작 입학하고 나면 기대했던 것을 배울 수 없어요. 교수님들이 그 분야를 강의할 준비가 안 됐더라도 학교에서 신입생 유치를 위해 과대선전을 한 거죠. 마치 과대광고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처럼요. 그래도 기업에서는 나름대로 A/S 정책이 있으나, 대학은 없습니다.
원래부터 공부를 좋아하셨나요?
공부보다는 게임을 좋아했죠.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니기 힘들잖아요. 7시 20분까지 등교해야 하고, 밤 늦게 집에 오고. 그래서 자퇴하려고 했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수학, 영어에서 각각 100점을 받으면 자퇴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자퇴 못했죠. 100점을 못 받았으니까요. (웃음) 학교 다니면서도 공부해서 뭣하나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졸업하고 그냥 장사하자고 마음 먹었죠. 장사하려면 군대 연기를 해야 하니 근처에 있는 전문대에 등록하긴 했어요.
어떤 장사였나요.
술집을 두 번 열었습니다. 고등학교 끝나고 바로 술집을 시작했어요. 동창생이 많이 왔습니다. 그러니 테이블 회전이 너무 안 됐죠. 항상 손님으로 가득 찼지만, 돈은 안 벌리는 그런 상황. 친구들이 오후 4시에 와서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죽치고 있는데, 그 테이블 술값은 겨우 4만 원 정도였으니까요. 두 번째는 포장마차 비슷하게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크게 손해보지도, 크게 돈벌지도 못했지만 사회가 어마어마하게 무섭다는 건 느꼈습니다. 장사를 하면 갑의 입장에서 이것 저것 사야 하잖아요. 그럴 때 제가 20살, 영업사원은 50살 아버지뻘인데 그 분들이 제게 깎듯한 걸 보면서 이게 사회구나, 싶더군요.
동기야 여러 가지겠지만 장사를 결심한 건 돈일 텐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돈과 별로 상관 없는 학문인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네요?
편견입니다. 언어학이 있는 곳이 몇 군데 없는데, 있는 곳마다 인문대 소속이라 그런 오해가 생겼어요. 언어학은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실용학문이에요. 아이폰 씨리도 그렇고요. 검색엔진에 필요한 키워드 분석, 번역하는 서비스, 음성인식 이 모든 게 언어학 영역이에요.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미진합니다. 장사를 하면서도 머리가 굳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은 했는데 어쩌다 보니 언어학 하면서 성적도 잘 나오고 재밌더라고요. 이쪽 공부할 때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갑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장사를 하고, 군대 다녀 와서는 다소 늦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 또는 방임이 있었을 것 같네요.
아버지와는 사이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웃음). 어머니는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거다.”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제 선택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도 그랬고 용돈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는 친구와 놀 때도 친구를 집에 불렀어요. 돈 쓸 필요가 없죠. 장사를 접은 뒤에도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등록금은 상당 부분을 장학금으로 해결했고요. 20살 넘어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어른인 걸 알아 달라고 떼쓰는 것보다는 경제적인 독립이 어른임을 증명합니다. 이렇게 해야 부모님에게 떳떳하죠. 만약 제가 집에서 지원을 받았다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4학년이잖아요. 곧 졸업할 텐데,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일단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제 능력을 보여야 하니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요. 그곳에서 오지 말라고 하면 어쩔 수 없으니 대안도 생각 중입니다. 계획대로 외국에서 석박사를 마치면, 그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요. 학자보다는 연구하면서도 일하는 길이요. 특히 AI쪽이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싶어요. 성공만 하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죠. 요즘 혼자 사는 사람이 많잖아요. 이들도 말을 하고 싶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어요. 고객 클레임 상담하는 상담원에게도 굉장히 도움될 거예요.
언어학이 종합 학문인데요. 책 많이 읽어야겠습니다.
책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200쪽 넘는 건 아예 보지도 않았고. 80쪽 넘어서 본 적도 없을 정도에요. 그러다 『상실의 시대』를 보면서 책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계속 봤습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 무슨 내용이 나올지 다소 보이지만, 재밌어요. 황석영 『삼국지』도 재밌고요. 전문서보다는 소설을 좋아해요. 그리고 『강철의 연금술사』도요. 여기서 나오는 ‘등가교환’은 제가 인생 철학으로 여기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공 지식은 책으로도 접하지만 학회 등에 참석해 듣는 편입니다.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게 이해하기 쉽잖아요.
채널예스는 언제 보나요?
2주에 한 번은 꼭 봅니다. 제가 쓴 글을 읽으려고요. 그외에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자주 보는 칼럼입니다. 채널예스에는 읽을거리가 많은데, 페이스북으로 많이 퍼지면 좋겠어요. 요즘은 페이스북이 대세니까요.
요즘 고민은 뭔가요?
고민이 많습니다. 함께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게 사회인데 자꾸 단절되는 듯합니다. 교육이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단적인 예로, 요즘 국사 교육이 화두잖아요. 예전만 해도 국사가 필수였는데, 지금은 아닌데요. 공유하는 지식이 다르다 보니 세대간 소통이 안 되고 그게 정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죠. 그렇다고 국사를 ‘몇 년에는 이 사건이 중요하다, 시험에 나온다.’ 이런 식으로 배워서는 곤란합니다.
아르바이트로 컴퓨터 학원에서 아이를 가르쳐 본 적이 있는데요. 학생들이 정말 당돌해요. 권위적인 사회에서 민주적인 사회로 변했다고 볼 수 있지만요. 지나친 감은 있어요. 요즘 맞벌이가 많은데, 맞벌이를 하면 맡길 곳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인성 교육을 맡아줄 교육 기관이나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또 하나 문제가 있다면, 한국은 장애인이 교육 받기 너무 어려운 사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장애인인데 말이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요.
‘단절’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렇다면 사회가 소통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들어주는 게 우선입니다. 소통의 시발점이죠. 사람들이 자기 말만 하려고 해요. 잘 들어주는 문화가 정착되어야겠습니다. 지금은 다르다, 틀리다가 혼용되고 있는데요.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겠죠.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책을 틈 날 때마다 읽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합니다. 영화 한 편 보는 돈으로 책 한 권 살 수 있는 곳이 한국이잖아요. 문화상품 중에서도 책이 정말 쌉니다. 커피를 마시더라도, 커피 한 잔 마시면 그걸로 끝이지만, 책은 사면 두고두고 볼 수 있어요.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