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우리의 마지막 이야기
스무 개의 키워드를 딱 세 개로만 요약한다면?
이 글은 나와 내 친구들이 20대를 보내며 미처 끝내지 못한 사랑과 우정의 ‘뒤풀이’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차라리 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랐던, 그래서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나와 내 친구들의 20대를 향한 때늦은 뒤풀이. 나는 그 뒤풀이의 주모(酒母)가 되어 밤새도록 향기로운 술을 나르고 푸짐하게 안주를 요리하며 아직 우리 가슴 속에 여전히 시린 꿈으로 빛나는 20대를 다독이고 구슬리고 보듬어주고 싶다. 사랑과 혁명과 우정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너무도 푸른 꿈을 향해 골든벨을 울리고 싶다.
나는 남들에게 들려줄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얼마 전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안엔 세상에 내놓을 만한 멋진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친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친구의 맑고 따스한 눈길은 말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에겐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쉽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은 이 이야기는 나의 적극적인 의도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 덕분에 태어났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싶다고 말해준 편집자, 내 이야기를 매주 바지런히 들으러 와준 독자들 덕분에 이 이야기는 수줍게 시작되고, 튼튼하게 이어지고, 마침내 맺어질 수 있었다.
우리 안에는 저마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SF영화로도, 멜로드라마로도, 액션영화로도 정리되지 않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끝없이 지속되는 마음의 다큐멘터리다. 어떤 장르로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우리의 울퉁불퉁한 이야기들은 멋들어진 형식보다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내 것이기에 소중한 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지난 몇 달 간 더없이 행복했다. 모두가 걱정하는 진로 문제보다도 ‘우정’을 최고의 키워드로 삼은 이유는 바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의 소중함을, 살면 살수록 더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나의 20대와 지금의 20대가 느끼는 슬픔과 두려움의 뿌리는 같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의 아픔과 여러분의 아픔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버티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게 소중했던 청춘의 키워드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다정한 댓글을 남겨주고 가슴 저린 편지를 보내주는 독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나는 우리 사이에 ‘다름’보다도 ‘닮음’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20대가 가장 많이 느끼는 첫 번째 두려움. 그것은 내 꿈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내 꿈이 진정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할까봐 느끼는 불안. 누군가에게 내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할까봐 느끼는 두려움. 이것은 동서고금의 젊은이들이 느낀 한결같은 아픔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이 두려움은 확실히 과장되었다. 우리는 두려움을 마음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느낀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학습했고, 두려움에 짓눌리고, 두려움에 잡아먹혔다. 한국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개개인에게 과도한 두려움의 문화를 학습시킨다. 남에게 뒤지는 것에 대한 불안. 남들보다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 누구에게도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삶에 대한 불안. 이런 ‘학습된 불안’은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데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불특정 다수의 객관적 칭찬 때문에 행복해지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각별하게 여기는 타인이 오직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존재를 알아볼 때,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우리는 나를 깊이 알지 못하는 만인의 칭찬보다는 나를 깊이 알고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의 따스한 시선으로 기쁨을 느낀다. 내 존재의 고유한 빛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나 또한 그만이 지닌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삶은 끝없는 고통이기를 그치고, 두려움은 더 이상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20대를 괴롭히는 두 번째 두려움. 그것은 삶에 대한 조급증에서 온다. 나 또한 ‘서른이 되기 전에’ 무언가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서른이 넘으면 인생은 좀 더 안정되고, 평온하고, 거리낌 없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을 향한 공포는 숫자를 향한 미신일 뿐이다. 나는 사실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깨달았다. 신기하게도 ‘서른이 넘어서야 찾은 꿈’은 전혀 ‘늦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찾기 위해 겪어온 모든 실수와 방황이 내 글쓰기에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꿈 찾기의 속도란 없다. ‘나만의 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 낭비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자긍심이 필요하다.
위대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라이프스토리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 속에는 그들의 ‘트레이닝’ 기간을 다루는 장면이 아주 짧게 나온다. 운동선수가 몸을 만드는 과정, 음악가가 재능을 단련하는 과정, 화가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 이 모든 지난한 과정들이 영화에서는 마치 5분짜리 뮤직비디오처럼 짧고 간단하게 스치듯 다루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짧고 불친절하게 다뤄지는 그 ‘수련’의 과정이야말로 젊은 시절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멀리서보면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멋질 것도 없는 그 트레이닝의 과정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끝내 빛나게 하는 최고의 비밀이다. 영화에서는 5분이 채 안되지만, 인생에서는 거의 평생일 수도 있다. 그 수련의 소중함은 스피드나 드라마틱함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만들어가는 일상의 빛으로 증명된다.
무언가를 배울 때, 단기간에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1, 2년은 지나야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 인생의 교양을 쌓아가기 위한 기간으로 대학 4년도 짧다. 과정의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근력을 키울 수 있다. 영화는 2시간 만에 한 사람의 인생을 스피디하게 보여주지만, 우리 인생은 몇 년이 지나도 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그 ‘보이지 않는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나만의 글쓰기’다. 일기든, 편지든, 우리의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게 만드는 글쓰기에 조금만 시간을 써보자. 나는 옛날에 쓴 일기나 메모를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동시에 ‘그동안 훌쩍 자란 나 자신’을 발견한다. 과거의 메모가 유치하고 쑥스러울수록, 그동안 조금은 성숙해진 나 자신이 기특하다. 빛바랜 책갈피 위에 휘갈긴 서툰 메모들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향해 보내는 편지가 되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준다.
이 글은 나와 내 친구들이 20대를 보내며 미처 끝내지 못한 사랑과 우정의 ‘뒤풀이’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차라리 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랐던, 그래서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나와 내 친구들의 20대를 향한 때늦은 뒤풀이. 나는 그 뒤풀이의 주모(酒母)가 되어 밤새도록 향기로운 술을 나르고 푸짐하게 안주를 요리하며 아직 우리 가슴 속에 여전히 시린 꿈으로 빛나는 20대를 다독이고 구슬리고 보듬어주고 싶다. 사랑과 혁명과 우정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너무도 푸른 꿈을 향해 골든벨을 울리고 싶다.
20대의 가슴에 안겨주고 싶은 20개의 키워드를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 모든 단어들이 내게는 소중하지만, 이 스무 개의 키워드를 딱 세 개로만 요약한다면? 나는 세 가지를 꼽고 싶다. 바로 사랑, 혁명, 우정이다. 내가 소중하게 가꿔온 청춘의 키워드들은 이 세 가지와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 사랑, 우정, 혁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우리의 20대를 빛나게 하는 힘이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 20대의 키워드가 ‘생존, 스펙, 취직’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가치들은 ‘상황’이지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 마음 속의 별처럼 빛나는 이 세 단어의 가치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사랑, 혁명, 우정. 이루어지지 않아도, 끝없이 실패해도, 소유할 수 없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가치들이다. 바보 같아 보여도, 철 지난 이상처럼 보여도, 난 그것들이 미치게 좋다. 사랑, 혁명, 우정을 향한 변함없는 짝사랑이 나를 여전히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따스한 낱말 3총사가 여러분의 삶도 환하게 비춰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정은 나를 바꾸고, 사랑은 너와 나를 바꾸고, 혁명은 세상을 바꾼다.
p.s. 지난 반 년 동안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작은 글쓰기의 방으로 매주 놀러와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글쓰기의 고통을 기쁘게 견딜 수 있었습니다. 멋진 사진으로 이 빽빽한 연재에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주신 이승원 선생님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조만간 더 깔끔하게 갈무리된 책으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저와 함께 그 검푸른 20대를 함께 건너 준 모든 분들께, 그리고 풀리지 않는 청춘의 화두를 짊어지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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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은…
타칭 문학평론가, 자칭 글쟁이 또는 글순이.
문학과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여행과 음악을 짝사랑하는 사람.
<한겨레신문>에 ‘정여울의 청소년 인문학’ 코너를 연재하고 있으며, 2012년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네필 다이어리1, 2≫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미디어 아라크네≫,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정여울의 문학멘토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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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서 상처밖에 줄 수 없었던 나의 20대에 사과하며...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감성을 울리는 첫 번째 에세이 멘토’ ‘힐링’ ‘테라피’ 등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각종 치유의 담론들이 범람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 광적인 치유의 열풍 속에서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