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확실한 콘셉트 영화가 있을까?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분노를 깔고 있지만, <7번방의 선물>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전제를 깔고 이어가는 동화 같은 거짓말이다. 유아 살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번방의 선물>은 건강하고 착하다. 피의자의 인권, 경찰수뇌부에 대한 불신, 재판의 불공평성, 정부 마크가 찍힌 이불을 덮고 폭행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제도에 대한 비판도 담아내지만, 사회비판의 논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이 영화의 목표는 분명하다. 명민하게도 어느 지점에서 울리고 웃겨야 하는지, 그 정확한 지점을 알고 있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를 내세운 미스터리, 감방을 배경으로 한 변주된 조폭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도 흡수하고, <하모니>에서 보아온 재소자들의 감동 드라마, <아이 앰 샘>에서 보여준 바보 아빠의 절절한 부성애까지 아주 많은 영화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그 여러 가지 변주를 온전히 자기화한다.
<베를린>의 물량공세에도 흔들림 없이 지난 주말 전국관객 400만을 돌파한 그 원동력은 온전치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결집하게 한 <레미제라블>과 정반대의 지점에서 폭발한다. 그래도 세상은 꿈꿔보고 믿어볼 만하다는
<7번방의 선물>은 분명 ‘기적’을 담고 있다. 영화의 흥행도, 내용도,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과장된 최루 코미디에 담긴 진심과 열정도 되짚어 보면 모두 ‘기적’과 같다. 이 모든 거짓말을 믿음직하게 만드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가 있다. 아역배우 갈소원과 어느 영화에서도 제 몫을 하는 오달수, 김정태, 박원상은 영화의 과장된 감정의 흐름 속에서도 정확한 지점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방해하는 법 없이 조화롭다. 그리고 그 구심점에 류승룡이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과장된 마초 캐릭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류승룡의 바보연기는 짜릿한 배반이다. 그리고 그 배반의 충격은 철저히 바보가 된 류승룡의 연기를 통해 믿음으로 변한다. 이 남자, 참 물건이다.
류승룡, 세상의 모든 남자
<황진이>
<천년학>한국공연예술의 새로운 혁명이었던 난타 1기 배우로 시작해, 2004년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에서 은행털이 단역으로 데뷔하여 꽤 많은 영화에서 얼굴을 알렸지만, 배우 류승룡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최초의 작품은 2010년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었다. 하지만, 류승룡이라는 배우의 강렬함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영화 쪽에서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37세의 나이에 신인남우상 후보에 오른 영화이기도 한
<황진이>에서 그가 맡은 송도 유수 김희열은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류승룡을 다양한 얼굴로 각인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인 이율배반적 이미지는
<황진이>에서 시작되었고, 빛나고 있었다. 황진이를 둘러싼 수많은 남자 중에서 김희열은 가장 호방하지만, 동시에 황진이의 돌변에 가장 비열한 모습으로 응대한다. 호방함과 비열함의 두 얼굴이 동시에 가능한 류승룡의 독특한 매력은 캐릭터 속에서 더욱 빛났다. 또한 가장 비열한 순간에도 천박해지지는 않는 그의 이미지는 캐릭터를 더욱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2007년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에서도 그는 순박하고 우직하지만 괴팍한 시골 남자 역할을 맡았다. 거장 임권택을 만나 류승룡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순박하고 괴팍할 정도로 심지가 굳어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까지 주는 캐릭터로 진화했다.
<개인의 취향>
<최종병기 활>이런 이율배반적인 이미지가 상승해, 그를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작품은 2010년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었다. 이 작품에서 류승룡은 비밀스러운 게이 역할을 맡아, 우아하면서도 중후하고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7급 공무원>,
<바람의 화원>,
<불신지옥> 등 개성강한 작품에 등장했음에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그의 인지도는 급상승했고, 캐릭터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대부분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으면 그 틀에 갇혀 벗어나기 어렵게 되는데, 류승룡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는 곧 엄정화와 함께 한
<베스트셀러>에서 역시 냉정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남편 역할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날개를 달았다. 데뷔 이후 9편이나 함께 한 장진 감독과 함께 한 2010년
<퀴즈왕>의 출연을 시작으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최종병기 활>,
<평양성>,
<고지전>,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이다. 개구리 소년의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
<아이들>에서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거의 불패신화라 할 만한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많은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오늘의 류승룡을 CF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얼굴로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작품은 2011년
<내 아내의 모든 것>이다. 독특한 매력으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카사노바 ‘성기’가 된 류승룡은 강인한 남성적 매력에 허당의 이미지와 섬세한 감수성까지 더해, 류승룡만이 뿜어낼 수 있는 배반적 이미지를 과시하면서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해 주춤하게 될 법도 한데, 류승룡의 다음 작품은
<광해, 왕이 된 남자>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완벽한 지략가로 변신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상식적인 ‘킹메이커’가 되어 이병헌과 함께 든든하게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 간다.
<최종병기 활>에서 호기로운 무인의 이미지를 보였던 그가 이번에는 냉정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지략가라니, 과연 한 사람의 배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냉정한 웃음기를 걷어낸 그의 얼굴은 카리스마 넘치고, 믿음직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허균이라는 그의 캐릭터가 이끌어내는 웃음 코드는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과장되지 않은 그의 웃음코드는 전략적이고 치밀해 보인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연기를 거쳐, 2013년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7번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은 다시 부성애 가득한 바보가 되어 관객과 만난다. 이제까지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섬세함, 부드러움, 냉정함, 강인함, 섹시함이라는 전혀 조화롭지 않은 단어라는 사실이 류승룡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이 모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되짚어 보면, 류승룡이라는 배우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남자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능청스러움까지 더한
<7번방의 선물>이 배우 류승룡이 가진 ‘변신’에 대한 강박처럼 보이지 않은 이유는 이미 우리가 배우 류승룡에게 기대하는 바가 ‘변신’이 아니라 배우로서 그의 연기에 대한 ‘환기’라는 점에 있다.
<7번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은 캐릭터를 희화화시키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통해 웃게 되는 이유는 바보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딱 그 캐릭터에 적합한 반응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바보 캐릭터가 아니라, 딸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절절한 부성애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각인되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떤 지점에서 관객과 소통하면서 쾌감을 준다고 할 때, 그는 늘 ‘절정’을 맛보게 해주는 배우이다. 그러니 다음 작품에서도 충분히 유혹받고 싶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