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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롭고 황홀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리안 감독의 모든 것

이방의 경계와 공생을 긍정하는 힘 <결혼피로연>부터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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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한가운데 표류하게 된 소년과 벵갈 호랑이의 이야기? 게다가 자연의 풍광 속 인간, 가족, 갈등과 화해의 서사시를 그려온 리안 감독의 3D 영화? 기대와 함께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기우를 털어내고 리안 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진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테크놀로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한 마디로 <라이프 오브 파이>는 경이롭고 황홀한 영화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표류하게 된 소년과 벵갈 호랑이의 이야기? 게다가 자연의 풍광 속 인간, 가족, 갈등과 화해의 서사시를 그려온 리안 감독의 3D 영화? 기대와 함께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솔직히 2003년 리안 감독의 블록버스터 <헐크>는 감독의 명성에 비한다면 다소 밋밋한 답안지 같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기우를 털어내고 리안 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진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테크놀로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한 마디로 <라이프 오브 파이>는 경이롭고 황홀한 영화이다.


동명의 원작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소년과 호랑이의 태평양 표류기를 통해 사람의 절대 가치인 믿음과 용기, 희망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작품이다. 인도에 살던 소년 파이는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야 한다. 파이의 아버지는 그가 소유했던 동물원을 처분하고 동물들을 팔기 위해 배에 함께 싣는다. 파이의 가족과 동물을 함께 태운 배는 세상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마리아나 해구를 지나면서 폭풍우를 만나고,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우는 배를 집어 삼킨다. 결국 구명보트에 몸을 싣고 겨우 살아남은 건 파이와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 그리고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 뿐이다. 구명보트 안에서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본능대로 서로를 잡아먹고, 당연히 호랑이가 살아남는다. 이제 비좁은 구명보트에 남은 건 파이와 호랑이 단둘이다. 둘은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낯설고 기이한 공생을 시작한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사슬 앞에서 결코 양립되어 보일 수 없었던 인간과 호랑이의 공존은 아름답다. 당장 생존에 지장을 줄 법한 호랑이를 적으로 간주하기보다, 함께 위기를 해쳐갈 동반자로 보았던 파이의 지혜는 리안 감독의 전작들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질문과 맞닿아 있다. 세상 속 나와 ‘이방인’ 혹은 세상 속 ‘이방인으로서의 나’와 타인 사이의 갈등과 화해, 공존의 법칙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거대한 화두 중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파이의 생존은 이방인이 나의 적이 아닌, 공생의 동반자라는 깨달음과 함께 한다. 철학적이고 감동적이다.


3D로 펼쳐지는 태평양의 풍광은 격정적이고 역동적이지만, 리안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을 살린 감성적인 사색이 영화의 전체를 감싼다. 폭풍우라는 거센 절망과 생존의 위기 속에 표류하면서도 인간이 지녀야 할 것은 희망이며,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리안 감독의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아우른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나오면서 그 동안 보았던 3D 영화를 되짚어 보았다. 최첨단의 기술력으로 한계를 뛰어 넘은 피터 잭슨의 <호빗>부터 3D 영화를 통해 감동까지 맛볼 수 있었던 <아바타>,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등 앞선 작품들은 기술력과 이야기의 훌륭한 조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작품들이었지만 3D 안경을 끼고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영화를 통한 ‘공감’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를 통한 ‘감탄’을 원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2013년 피터 잭슨과 리안 감독은 각각의 3D 영화를 통해 테크놀로지와 이야기가 공생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피터 잭슨은 <호빗>을 통해 3D 기술력이 표현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의 깊이를 통해 관객들이 마치 중간계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여기에 리안 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경이로움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실감나는 표현을 위한 기술을 통해 ‘공감’이라는 영화라는 장르가 지신 근원적 감동에 다가간다. 이를 위해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영화적 체험을 위한 3D가 아니라, 이야기를 보조해주는 수단으로서 3D 기술력의 완급과 강약을 이야기의 층위에 맞게 조절해낸다.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의 감동과 드라마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한 테크놀로지의 활용이라는 공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만하다.


   소수가 주류를 긍정하는 아이러니와 그 힘


<쿵푸선생>

뉴욕 대학을 졸업한 리안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1992년 <쿵푸선생>은 리안 감독 스스로가 묻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뉴욕에 온 대만의 쿵후 선생과 뉴욕에 정착한 이민자 아들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이 영화는 개인과 가족, 현대와 전통, 서양과 동양의 대립이 한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묘사하는 영화였다. 리안 감독은 낯선 이국에서 벌어지는 동양인의 충돌을 호들갑스럽게 바라보기 보다는, 코스비 쇼같은 중산층의 여유로운 유머로 담아낸다.


<결혼피로연>

두 번째 영화 <결혼피로연>은 동성애자인 대만 출신의 유학생이 부모의 강권으로 인해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려낸다. 여기서도 리안 감독은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 속 동양인 동성애자라는 이방인을 그리면서, 그들보다 더욱 더 이방인으로 보이는 전통적 관습에 익숙한 어머니를 배치시킨다. 베를린 영화제는 이 떠들썩한 소동극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에게 금곰상을 안겨주었고, 리안 감독은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스타 감독이 되었다. 천방지축 세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 <음식남녀>는 리안 감독의 명성이 기우가 아님을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리안 감독이 활동하던 시절의 대만은 관금붕을 중심으로 한 뉴웨이브가 주도하던 때였지만, 그는 시류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면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센스, 센서빌리티>


<아이스 스톰>

1995년 리안 감독은 <센스, 센서빌리티>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의 원작인 19세기 영국 시대극을 연출하는 동양의 남자 감독이라니, 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리안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다시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리안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1997년 <아이스 스톰>이다. 1970년대 ‘스와핑’을 소재로 자기분열적 유희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미국 중산층 가족의 황폐한 일상을 통해 리안 감독은 서구 자본주의와 견고한 가족주의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그 어떤 미국의 감독보다 더 예리하고 냉정하게 미국사회의 폐부를 드러낸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1999년 미국 남북전쟁을 그린 <라이드 위드 데블>에 이어, 리안 감독은 2000년 정말 의외의 영화를 연출해내는데, 그것이 바로 무협영화 <와호장룡>이다. 자신의 의무감 때문에 사랑을 인내하고 희생시켜야 하는 것이 중국적 정서라고 생각한 리안 감독은 영화 속에 흐르는 동양적 음악과 무술, 정서를 환기시키며 동양인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되짚어 본다. 2003년 <헐크>에 이어 2005년 리안 감독의 역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거친 카우보이들의 애달픈 사랑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담아낸다. 세상 속의 이방인 애니스와 잭의 사랑을 유일하게 품어준 것은 브로크백이라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뿐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리안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가족, 이방인, 자연의 풍광을 아우르는 거대한 산맥을 훑어내는 서사시가 된다. 애니스와 잭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위태로워지는 건 그들의 가족이다. 개인의 사랑과 가족의 분열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유기적인 관계를 바라보는 리안 감독의 시선은 그의 첫 작품 <쿵푸선생>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색,계>

2007년 리안 감독은 다시 대륙으로 돌아가 <색,계>를 통해 육체와 그 현존을 통한 인간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자극적인 육체관계와 격정적 드라마의 사이를 파고드는 그 노곤한 삶의 권태와 나른함이 무척이나 이질적인 작품이었다. 2009년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안 감독답게 락 페스티벌을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유쾌한 소동극인데,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소품이다.


리안 감독은 미국 속 동양인, 전통적 가치에 맞선 젊은이, 보수적 세상 속 동성애자, 스파이 등 주로 경계에 선 이방인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퀴어, 멜로, 여성, 가족, 무협, 블록버스터, 음악, 전쟁, 시대, 3D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그 이방인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고 오히려 객관적 진실함으로 다가온다. 리안 감독에게 성별, 국적, 장르의 경계란 이미 무의미한 분류에 불과하다. 그는 경계가 나눠지는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리안 감독이 난도질 슬래셔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리안이라면 칼을 휘두르는 자와 찔리는 자 사이의 유대와 생존, 그리고 그 사이에 오가는 삶의 의미를 또 그 장르 속에 녹여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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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이안
수라즈 샤르마 | 이르판 칸
어드벤처,드라마
전체등급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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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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