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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연애를 시작한 나 vs. 거절한 나

평행 우주와 <순간을 믿어요>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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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꿈꾸었지만 만들지 못한, 좀더 따뜻하고, 좀더 행복하고, 좀더 자유로운 세상이 우리들의 평행우주인지도 모른다. 힘들지만 서로 손을 잡고, 계속 꿈꾸고 애쓰고 나눈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평행우주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2월 19일, 그토록 기다렸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누군가는 대선보다 기다렸을, 마야력이 예언한 종말이라는 12월 22일도 별일없이 지나갔다. 유난히 시끄러웠던 2012년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모든 것이 흘러왔다가 흘러갔다. 우리만 남았다. 해결되지 못한 질문과 상처들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일상에서, 트위터에서, 많은 분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이 걱정과 우울에서 벗어나야 하나요.”
“위로해주세요, 절망적인 기분이예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는 같은 시절 같은 공간을 사는 사람들, 어려움과 느낌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우울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간절히 물어본 분들에게, 아주 작은 것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며칠 후 스륵, 이 노래가 떠올랐다.

두둥 두둥, 경쾌한 드럼으로 시작되는 단순한 비트와 설명할 수 없는 짠한 멜로디.
소년같은 맑음과 묘한 아련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석원 씨는 이 노래를 약간 헐렁하게 불렀다. 흥청거리는 것도 같고 즐거운 것도 같은 비트 속에서 그는 속삭인다.

I saw your something
너의 달콤했던 말
I saw your something
너의 영원한 미소 그리워

그 순간들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겐 기쁨이 더 많았어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

<순간을 믿어요>, 언니네 이발관 4집 「순간을 믿어요」 중
<순간을 믿어요>는 오래전부터 메마르고 팍팍해질 때 듣는 마음의 수딩밤 같은 노래였다. 이별과, 상실과, 유한에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최고의 가사와 목소리였다.

같은 이유로, 이 노래는 지금의 나에게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희망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고, 기대했던 최선을, 어쩌면 차악을, 또는 정의나 세상에 대한 신념을 잃었으니까.

우리가 사는 우주 옆에 시간은 공유하지만 공간과 차원이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평행우주>라는 이론이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순간 선택받지 못한 경우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갈라져 나간다고 설명하는 가설이다. 나에게 고백한 동기녀석과 사귈까 말까 고민하다가 승낙한다면 그와 연애를 시작하는 나와 고백을 거절한 나, 두 세계가 따로 계속 진행된다는 이휘재의 <인생극장> 같은 이야기이다.

난 양자역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같은 이런 상상은 가끔 어떤 것도 주지 못하는 위로를 준다. 우리가 아는 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한번 잃어버린 것은 다시 찾기 어렵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우리가 한 잘못된 결정이 바로잡아진, 그런 정의롭고 속시원한 평행우주도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거기선 아마 사람들이 하얀 것은 하얗다고 말하고, 검은 것은 검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들이 죽지 않고, 우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런 평행우주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우주에선 아마 꼭 해주고 싶었는데 전하지 못해 가슴에 맺혔던 많은 말들과 어루만짐과 선물들도 여한없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묘하게 위안이 된다.

[참고] 예스24기사 : 내가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우주가 있다?-『평행 우주』 VS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ch.yes24.com/Article/View/19477
대선이 끝나고 분열과 산적한 문제들이 드러났다. 어두운 경제전망, 팍팍한 사회, 높은 자살률. 머릿속을 뒤적여 평행우주론을 찾아내야 했을 정도로, 2012년 연말은 우울하고 답답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근대화의 첫단추부터 더 잘 끼웠더라면? 더 열심히 연대하고 노력했더라면? 총선을 잘 치르었더라면? 수많은 평행우주가 만들어지고 터져나간다.

언니네 이발관은 노래한다. 앞으로도 실패와 절망과 상실은 계속 되겠지. 아프지만, 힘들고 슬픈 거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기쁜 일이 더 많았잖아. 아무 의미도 없는 건 아닐꺼야, 괜찮아. 물론 나는 아직 괜찮지 않다. 아프고 외롭고 힘든 사람이 많아지는,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고 소외시키는 구조와 돈만의 논리가 싫다. 하지만, 노래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면서, 문득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두렵고 허무하지만, 그래도 순간을 믿고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래 꿈꾸었지만 만들지 못한, 좀더 따뜻하고, 좀더 행복하고, 좀더 자유로운 세상이 우리들의 평행우주인지도 모른다. 힘들지만 서로 손을 잡고, 계속 꿈꾸고 애쓰고 나눈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평행우주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딘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어디에든지 있어 말이 없고 잊어버려져 있지만 몹시도 충실하게 있는 것이다."
-생텍쥐베리, 『인간의 대지』, 오래된 번역본




//twitter.com/yooninas/status/269091176861278208

2012년의 우리는 소외와 결핍에 맞서 열심히 싸우기도, 애써 외면하기도 했지만 다들 많이 힘들었다. 다 잃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도, 기억도, 어디엔가 그렇게 몹시도 충실하게 남아 있을 것이므로.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中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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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미녀정신과의사

늘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한, 밝고 다정한 정신과의사 안주연입니다. 우울증과 불안증, 중독을 주로 보고 삶, 사랑, 가족에 관심이 많아요. 책읽기와 글쓰기, 고양이와 듀공을 좋아합니다. http://twitter.com/mind_ma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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