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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

아는 만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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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언제나 우주보다 더 큰 기대와 희망 속에서 찬란하게 시작된다. 하지만 신과 자신을 아는 모든 지인들 앞에서 결혼을 맹세한 커플의 절반이 이혼으로 마무리되는 이 시대에 사랑만큼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높은 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바다가 배를 만나 너울거리듯
사내와 여인이 만나 아이를 낳고
폐허를 다시 세워 사람을 부르고,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영혼이 영혼에게 전하는,
따뜻한 배려의 말로 힘겨운 나날을 견디는 인생.
함께 있는 장소를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만들고,
함께 있어 가장 평온한 들판이 되어주어라.
이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고,
같은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다.
다시 못 만날 때를 생각하며 사랑해라.
영영 다시 못 만날 때가 오니 깊이 사랑해라.
누구든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사랑을 누려라.
-신현림, 「엄마의 유언, 너도 사랑을 누려라」 중에서

사랑받기와 사랑하기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사랑받기와 사랑하기. 겨우 한 글자 차이로 이렇게 상반된 의미를 지니는 문장이 또 있을까. 사랑을 받으며 동시에 아낌없이 사랑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만약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궁금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아마도 많은 여성들은(특히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여자는 모름지기 자신을 듬뿍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 사는 게 최고’라는 검증되지 않은 문구를 어릴 적부터 숱하게 주워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를 한층 더 성숙한 사랑의 길로 인도한 사랑의 대가, 에리히 프롬은 이미 고전이 된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사랑의 대가’님의 말씀에 따르면 지금껏 사랑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노심초사한 이들은 죽 쒀서 개 준 격이다. 좀 더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면서 오늘도 거울 앞에 앉아 그가 좋아하는 청순 메이크업으로 무장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랑받는 여자의 특징’을 스크랩하는 중이라면 지금 당장 멈춰라. 그런 표면적인 것들이 당신을 ‘연애의 달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짜 사랑에 이르는 길에 다다르게 할 수는 없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받기만 하는 사랑으로는 영원히 고독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는 바닷물처럼 아무리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의 나락으로 발을 딛게 될 뿐이다. 사랑이란 주는 것을 아는 능력이며 특정한 대상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통해 이기심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가 나를 얼마나 극진히 사랑할까 저울질하며 오늘도 밀고 당기기에 몰두하는 당신, 유치한 감정 따위는 이제 그만 내려놓자. 어떻게 하면 더 사랑받을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모든 사랑은 결국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러니 덜 사랑받는다고 억울해할 것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분통해할 것도 없다.


사랑, 열렬히 배워라!

그렇다면 사랑을 제대로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방법은 오직 하나! 열렬한 배움 속에서 내공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그림,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의지이자 판단이며, 결의이자 신성한 약속이다. 따라서 피아노를 치거나 외국어를 익히듯이 자세를 낮추고 배움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중략)……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그럴수록, 사랑은 더욱 위대하다.
물론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이 ‘테크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좀 더 원론적인 것으로 들어가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책임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열심히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려고 하고 개선의 방법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이 활동을 포기할 것이다.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언제나 우주보다 더 큰 기대와 희망 속에서 찬란하게 시작된다. 하지만 신과 자신을 아는 모든 지인들 앞에서 결혼을 맹세한 커플의 절반이 이혼으로 마무리되는 이 시대에 사랑만큼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높은 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그 해답이 궁금하다면 에리히 프롬과 함께 생의 가장 가치 있는 공부, ‘사랑의 기술’을 배워보자.


아는 만큼 사랑한다

일찍이 스피노자는 말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노력만큼, 능력만큼, 의지만큼 사랑에 더 깊이 다다를 수 있다. 즉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남자가 있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사랑이란 그녀를 자신의 울타리에 넣어 아끼고 보호하는 일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날마다 사랑을 고백하고, 좋은 것들을 집안에 가져다 나르고, 여자의 안전을 위해 울타리를 수리한다. 그녀를 이 위험한 세상에 절대 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를 온전히 자신의 시야에 묶어둔 남자는 이제 자신의 지고지순하고 완벽한 사랑에 감탄한다.

반면에 여자의 꿈은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자의 ‘진정한 사랑’ 앞에 여자는 진정으로 불행해졌다. 그녀는 결국 그를 사랑하지도,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한 채 조각난 마음으로 그 사랑을 선택한 스스로를 저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의 문제는 무엇일까? 이 사랑의 죄명은 ‘무지’다. 사랑하는 두루미를 배불리 먹이기 위해 접시 한 가득 음식을 담아주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무식한 사랑인 것이다.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배워보지 못한 남자가 자신의 잣대로 사랑을 피력한 결과, 두 사람의 삶 속에 영원한 사랑의 결핍이 생겨났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사랑을 반복하고, 실패하고, 상처입고, 아파하고, 좌절하다가 또 다른 대상을 만나 다시 잘못된 사랑을 반복하는 악순환을 일평생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외치는 것이다. 사랑 따위는 없다. 이 더럽고 이기적인 세상에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라는 건 애당초 없었다. 과연 그럴까? 자기애적 사랑에 눈이 먼 사람에게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랑이란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땅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을 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을 하면서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을 통해 말하고 있는 사랑의 궁극적 지점이다.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이웃을, 신을, 나아가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 닿을 수 있는 종착점이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길가의 들꽃 한 송이를 우습게 보거나, 인류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웃을 외면한다거나, 진정한 사랑을 하는 중이라고 떠들면서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한다면 그는 아직도 사랑의 궁극적인 지점에 닿지 않은 것이다. 사랑이란 한 사람을 통해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는 힘, 그 위대한 에너지가 아닐까?

사랑은 ‘아름다운 환상’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뜬구름 잡는 허무맹랑한 소망도 아니고,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도 아니다. 용기 있게 마음의 빗장을 열고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 노력한다면, 언젠가 그 ‘기술’이 당신의 사랑을 ‘예술’로 만들어놓을 것이다.


사랑의 목적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에리히 프롬과 마찬가지로 저명한 심리학자인 스캇 펙 역시 사랑을 ‘훈련을 통해 가다듬어야 할 공부’라고 보고 있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나’ 중심의 사랑에서 벗어나 ‘그’ 중심의 사랑으로 성숙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캇 펙이 그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의 성장을 끊임없이 기원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그 목적이 항상 정신적 성장에 있으며, 사랑이 아닐 때는 그 목적이 항상 다른 것에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누군가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상대방이 ‘참된 자기’가 되는 길을 막아선다면 그 사랑은 점검이 필요한 사랑이다.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를 구속하고, 제지하고, 억누르고, 막아선다면 그는 자신만 배부른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꿈을 조용히 접는다. 20~30대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의 단골소재는 단연 ‘결혼’과 ‘자아실현’사이의 양자택일에 관한 고민이다. 그런데 스캇 펙의 말처럼 진정한 사랑의 목적이 정신적 성장과 발전에 있다면 그런 것들은 선택을 고민해야 할 거리가 아니다. 사랑을 하면서 동시에 나를 발전시키고 찾아나가야 마땅하지, 사랑을 선택함으로서 나를 잃게 되는 것은 너무나 큰 모순이다. 그 사랑을 가짐으로서 자아가 조각난다면, 그 사랑의 한복판에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



사랑은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자기희생이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확대인 것이다.
엄마도 늘 내게 말씀하셨다. 지금의 네가 아닌 다른 네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그냥 지금의 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어릴 적에는 그 말의 의미를 크게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말의 참뜻을 뼛속 깊이 이해할 것 같다. 사랑이란 이를 악물고 희생하고 인내해야 하는 극기의 과정이 아니다. 나 역시 ‘지금 이대로의 나’가 아닌 ‘그 사람이 원하고 바라는 나’의 모습대로 살아가보려 부단히 노력해본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늘 불행했다. 그가 좋아하는 말투를 하고, 그가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를 고르고, 그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일은 타국의 가면무도회에서 이상한 춤을 추는 듯 생경했다. 사랑은 때론 변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 변화가 이런 식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스캇 펙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커진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다시 채우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이란 텅 빈 나를 다시 채우는 행위. 채워진 나를 비우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경계를 잘 파악하도록 하자. 뜨거운 감정으로 격정에 휩싸이는 사랑도 좋지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일생을 함께하고자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을 크게 뜨고 사랑을 관찰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처럼 사랑이란 상상이 이성을 이기는 힘임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지만, 좀 더 현명하고 아름답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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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김애리 저 | 퍼플카우
작가 김애리는 ‘책’을 ‘내 편’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르케스, 카잔차키스에서 산도르 마라이……. 고전부터 근래의 베스트셀러까지 100여 권의 책들이 작가를 통해 방황의 터널을 먼저 지난 선배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로, 혹은 나보다 더 방황하고 있는 친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친구(책)를 소개받고, 잊고 지낸 친구(책)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애리라는 청춘이 길어 올린 찬란한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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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애리

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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