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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회의실” – 보는 것의 힘

“박웅현 ECD님,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별 거 없는 삶에서 별 일을 찾아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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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以不見 聽以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 보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만 듣지 못한다는 이 구절을 보고 박웅현 ECD가 무릎을 쳤던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쉴새 없이 밀려오는 내 삶 속에서 무엇을 유심히 보고, 귀 기울여야 할까?

내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삶의 촉수’


인문학 특강. 네 번째 주제는 “見” 보는 것의 힘이다. 박웅현 ECD야말로 견력(見力)이 좋은 사람이다. 이전부터 그는 자신의 광고가 일상을 들여다본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왔고, 실제로 그의 광고들은 공감의 힘으로 빚어지는 울림이 크다.

‘사람을 향합니다’거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거나 ‘생각대로 해, 그게 답이야’라는 그의 카피들은 기업을 넘어 삶의 모토로 삼아도 좋을 법한 구절들이었다.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감정들, 이를테면 남을 도우면서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기분 좋은 따뜻함,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통념 앞에서 느꼈던 분노, 혹은 머뭇거림 등의 경험을 그는 한 줄의 카피로 일갈했다. 그의 광고 앞에서 저절로 고개부터 끄덕이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직업의식을 넘어 그의 삶의 태도로 느껴지는 단어, ‘볼 견’(見)은 박웅현 ECD가 창의력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제시하는 (짧고도 깊은) 답이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그의 광고가 전파를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박웅현 ECD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곳이 많아졌다. 역시 여기저기 강연자로 나설 때면, 사람들이 그에게 빼놓지 않고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대체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새로운 시선으로 매력적인 카피를 뽑을 수 있었느냐는 질문일 터. 한 줄의 카피, 한 편의 광고마다 구구절절 사람과 사연이 엮여 완성되었을 텐데, 그걸 과연 한마디로 할 수 있을까? 박웅현 ECD 역시 고민했다. 입사 때 들은 창의력 수업이 도움됐나? ‘부정어로 써보라’ ‘주어를 바꿔보라’던 글쓰기 법칙이 효과적이었나? 정작 좋은 카피를 쓸 때는 자취를 감췄던 것들이었다.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회의실”


박웅현 ECD은 카피를 만들었던 순간을 거꾸로 복기했다. 아이디어의 출처를 떠올려보니 전부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내가 본 게 아니면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왜 넘어진 아이는 일으켜 세우십니까?’ 내가 예전에 지나가는 아이가 넘어졌을 때 왜 일으켰지? 그 아이를 좋아했나? 박애주의자인가? 그건 본능적인 행동이었거든요. 그 행동을 들여다봤어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그건 내 원래 철학이었어요. 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나온 거죠.”

그 생각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됐다. “1997년 NYU에서 첫 수업을 들을 때였어요. 50대 아저씨가 책을 들고 들어오길래, 저분이 교수님인가? 했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요. 와우! 그것도 놀라웠는데, 30대 젊은 학생이 강단에 서는 거예요. 자기가 교수래. 와우!(웃음) 그 경험을 어떻게 잊어요? 앙리 루소의 ‘꿈’이라는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지 않았다면 ‘see the unseen’은 어떻게 나왔겠어요?”




앙리 루소의 '꿈'(1910, 캔버스에 유채, 204.5?298.5㎝, 뉴욕 현대미술관),
그 작품을 들여다보고 오른쪽 광고를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험을 축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이런 카피를 써내고, 어떤 사람은 그게 어려운 걸까? 어떤 경험이 창의력이라는 불꽃을 튀며 광고가 되고, 어떤 경험이 그저 흘러가는 걸까? “제가 넘어진 아이를 일으킨 경험이 난생처음 하는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하루는 그 경험을 머릿속 어딘가에 새겼던 것 같아요. 열 번은 흘려봤고, 한 번은 ‘내가 왜 모르는 아이를 일으켜 세웠지?’ 하고 주의 깊게 생각하면서 저장이 된 거죠.”

視以不見 聽以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 보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만 듣지 못한다는 이 구절을 보고 박웅현 ECD가 무릎을 쳤던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쉴새 없이 밀려오는 내 삶 속에서 무엇을 유심히 보고, 귀 기울여야 할까?

“사실,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회의실이에요. 남들과의 대화에서 아이디어가 제일 많이 나와요. 내 주변 사람들이 던진 말을 시청(視聽)하지 말고 견문(見聞)하라는 거죠. 근데 남의 말이라는 게 별거 아니에요. 인턴 사원이 회의 때 그랬죠. ‘난 아파트 광고 싫어요. 나한테 하는 말 같지가 않아요.’

이 말 듣고 제가 ‘그래, 수고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하고 넘어가느냐, 그 말을 들여다보면서 ‘진심이 짓는다’를 꺼내느냐의 차이에요. 중요한 말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과 귀가 있느냐. 생각의 파편을 모을 수 있느냐의 문제인 거죠.”
그렇게 박웅현 ECD는 창의력에 관한 대답을 마련했다.


“잘 보려면 시간이 걸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그렇게 정리해두고 보니, 주변에 정말 많은 사람이 오래전부터 ‘보는 힘’을 강조하고 있었다. 존 러스킨은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리라”고 말했고, 앙드레지드는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 말했다. 왜 똑같은 담쟁이를 보고도 도종환은 <담쟁이>라는 기가 막힌 시를 쓰고, 왜 똑같은 간장게장을 먹으면서 우리는 안도현처럼 간장게장에 관한 시 <스며드는 것>을 쓰지 못하는 걸까?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스며드는 것>, 『간절하게 참 철없이』 중에서
강의실을 일순 먹먹하게 만들었던 안도현의 시. 박웅현 ECD가 낭독했다.


“애정을 갖고 봐줘야죠. 우리가 정말 간장게장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요? 애정과 시간을 투자해야 해요. 『생각의 탄생』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죠. ‘보려면 시간이 걸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행인들이 무신경하게 못 보고 지나가는 순간, 세계는 참을성 있는 관찰자에게 놀라운 비밀을 드러냅니다. 옛날에 중국에서는 시 쓰는 사람을 견자(見者), ‘보는 놈’이라고 불렀어요. 볼 수 있으면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박웅현 ECD는 정혜윤 PD의 책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서 소개된 한충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노년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해 시를 쓰고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시를 쓰니까 뭐가 좋아요?” “응, 안 보이던 꽃이 보여.” 박웅현 ECD는 이렇게 덧붙였다. “왜 인문을 공부해야 하는지 이보다 더 명쾌한 답이 있습니까?”


인문학을 공부하면 행복해지는 까닭


‘볼 견’이라는 글자가 박웅현 ECD에게 준 것도 이것이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걸 보게 되면서, 행복한 순간이 많아졌어요. 이제는 불어오는 바람도 축복이에요. 늦여름, 밤에 불어오는 바람이 축복이 아니면 뭐가 축복입니까? 강이 흐르는 것도 기적이에요.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들이 정말 행복한 거예요.

고은의 시 구절이 절로 떠오르죠. ‘어린 토끼 주둥이 봐 / 개 꼬리 봐 /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이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풍요롭겠어요. 인문학이 법학자에게도, 물리학자에게도 다 필요한 까닭은 이거에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도 이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인생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걸 주목하는 게 삶의 지혜고요.”


박웅현 ECD는 강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민한 촉수”를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똑같은 삶을 살더라도 그 촉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87번 국도에서 봤던 가을, 어느 날 공원에서 봤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햇살……” 마음속에 저장된, 나만의 잊지 못할 풍경들이 많은 사람이라면, 일상을 살아가는 에너지와 감수성이 남다르지 않을까?

“참된 진실은 모든 걸 다 경험해보는 데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고, 그 집중력으로 스쳐 지나갈 만한 의미 있는 것들을 잘 새겨두고, 그렇게 저장된 의미 있는 장면들을 축적해 삶이라는 걸 채워나가는 거다.

물론 박웅현 ECD는 “인생 별거 없어요. 너무 큰 기대하지 마세요. 그저 그 순간의 합일 뿐이에요”라고 마무리했지만, 별거 없는 인생에서 별을 찾아내는 것도 그 순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존재하느냐에 따라 다를 거다. 정리해보니 ‘볼 견’은 이런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 지금(이라는 순간) 애정, 관심, 열정. 그러니까 바로 발휘해보자. ‘볼 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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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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