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광고하는 광고쟁이, 박웅현과 인문학
광고회사 TBWA의 박웅현 ECD는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을 소리 높여 이야기 하고 있다. 광고로 인문학 하는 ‘광고쟁이’로 독자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고, 인문학 강의를 엮은 『책은 도끼다』를 통해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박웅현 CD가 인문학 연구가나 서평가도 아니다. “1년에 30권쯤 읽는, 남보다 덜 한 독서량”을 갖고 있다고 본인은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그 뒤에 이어지는 말, “대신, 한 권을 읽더라도 여러 번 읽고 꼼꼼히 읽는다”에 그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박웅현은 인문학적으로 광고하는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인문학을 광고하는 사람이 되었다. (광고)주님들의 상품만 광고하지 않고, 인문학책 광고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열풍이라고 할 만큼 인문학을 주창하는 요즘, 서점에서 근무하는 쪽에서 보면, 사실 인문학 시장도 레드오션이다. 고전을 읽었다고 자랑하려는 사람도 많고, 고전을 쉽게 해석해주려는 사람도 많다.
이런 와중에 『책은 도끼다』가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박웅현과 함께하는 인문학 8주 특강> 모집에 사람들이 몰렸던 까닭은? 박웅현 ECD와 관련한 트윗을 날릴 때마다 여느 때보다 리트윗이 많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업무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굳이 그 번잡한 강남역 사거리까지 나가서(!) 8주간 늦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강의를 듣는 이유부터 생각해보는 게 먼저일 것이다.
‘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긴 여행 중이었다. 비행기 일정이 여의치 않아, 장거리 버스로 국경을 넘고 있었다. 여행이 길어지는 탓에 피로했고,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깥 풍경에도 약간 시큰둥해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박웅현 ECD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책은 도끼다』에서도 설명하고 있는 핑크 마티니의 ‘Splendor in the Grass(초원의 빛)’이라는 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후배가 넣어준 MP3파일 중에 꽂혀서 수백 번을 들었는데, 간주에 나오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인트로 부분이 나올 때면 소름이 돋는다는 거였다. 가사까지 곱씹게 되었는데, 거기 나오는
“I think we should take it slow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and listen to it grow”가 굉장하지 않느냐고 그가 감격에 차서 얘기했다.
감동을 하는 것도 어떤 툴이나 루트 같은 게 있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한번 그 노래를 듣고 나니, 그가 말한 그 부분에서 어쩐지 나도 몸이 간질간질해지는 것 같고 ‘다시금’ 새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완벽한, 정형화된 툴은 아니지만, 그가 일러준 대로 귀를 기울이고, 그가 확장해준 감상의 폭으로 음악을 접하면, 흘려 듣던 노래에서도 움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가 제시해주는 감동의 툴, 감상의 툴을 더 알고 싶어서 사람들이 그의 책을 보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닐까?
나 역시 그 덕분에 ‘listen to it grow’ 풀이 자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말에 홀려버렸다. 그것을 여러 번 곱씹으며, 숨죽인 채 버스 안을 샅샅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루함 없이 장거리 버스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뭔가 조금 더 볼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인문학 8주 특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놓인 사소한 것들의 의미를 새삼 각성하게 되니까, 사소한 변화를 체험하게 해주니까. 8주 동안 그가, 좀 더 웃고 좀 더 즐겁게 살수 있는 감상의 툴을 제시해주겠구나 싶어서 말이다.
아들에게 뭘 가르쳐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지난 10월 12일. 강남의 한 강의실에서 첫 번째 강의가 열렸다. 시작 시간 7시를 지켜달라는 그의 당부에 맞추어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제 시간에 앉아있었고, 전원이 참석했다. 이 수업의 기대감과 열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웅현 ECD의 첫 마디는
“기대하지는 마세요.”였다.
“강의 몇 번으로 인생을 정리해준다고 하면 사기꾼일 거예요. 그냥 어떤 사람의 생각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중에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짓밟을 건 짓밟으세요. 다만 각자 작은 깨달음은 있을 겁니다. 자기 삶의 돈오(頓悟)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쌓여서 지속적인 점수(漸修)가 되길 바랍니다.”
인문학 8주 특강. 박웅현 ECD가 살면서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8주간 나누는 시간이다. 그는 이 강의를 시작할 때, 약간의 부채감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회가 성장 일로에 있지 않아서, 뛰어난 재능이 있는 후배들이 그 재능을 펼치기 어려운 시대라는 거다. 스펙만 보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지켜야 할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다고. 그 안타까움에서 이 강의가 기획됐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자존’이다. 그래서 첫 번째 주제가 됐다.
“시작은 어느 후배의 질문이었어요.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는 후배였는데 술을 마시는데 묻더라고요. ‘애한테 뭘 가르쳐야 행복할 수 있어요? 애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웅현 ECD의 답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였다고. 솔직하다. 하지만 좀 무성의한 것 같아서 다시 고민해봤는데, 그때 꺼내놓은 답이 바로 ‘자존’이었다.
“아모르 파티, 네가 처한 운명을 사랑하라”
“자존이 있는 사람은 풀빵을 구워도 행복할 수 있고, 자존이 없으면 100억을 벌어도 자살할 수 있어요. 자존은 스스로 존중하는 거거든요. 중계동에 황가네 호떡집이 있어요. 호떡 굽는 아저씨가 표정이 좋아요. 호떡을 굽고 있는데 내가 대학까지 나와서 호떡이나 굽고 있고, 이런 사람이 그런 표정이 나오겠어요? 자기 일을 진짜 좋아서 하는 게 느껴져요. 가끔 택시를 타면 아주 표정 좋은 아저씨를 만나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것 같아요. 재벌그룹 2세, 서울 대학교 나온 사람들. 몇 사람들에게는 그게 보였고요. 많이는 못 봤어요. 과연 그 표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가 정의하는 자존이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내 위치에 대한 존중’이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 내 운명을 사랑하라던 그 말과 맥을 같이 한다.
“네가 처한 운명을 사랑하라.” 자명한 말이다. 하지만 꾸준히 각오하지 않으면, 그만큼 놓치기도 쉬운 일이다.
그는 자존을 갖는 일이 어려운 까닭을 교육에서 찾았다. 각자의 개성을 가진, 제 각각의 모양의 아이들이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는 제 모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각자 내면에 갖고 있는 점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보다는, 바깥에 점을 찍어놓고 그것을 따라가라고 가르치죠. 기준점이 내 밖에 있는 거예요. 이건 마치 고소영한테 왜 김태희처럼 생기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존감 대신, 눈치나 습관이 길러진 거죠.”
그는 자존의 반대말은 눈치라고 말했다. 눈치는 바깥에 제시된 중심점에 자신을 맞추는 방법이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튀지 않고 살려면,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는 덕목이 아닌가.
“우리는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세요.”
“20대 여자가 살아야 할 상자(form)가 있어요. 그 상자대로 살지 못하면, 명절 때 고문을 당해요. 30대 부부가 살아야 할 상자가 있어요. 그렇게 살지 못하면 측은하단 소리를 들어요. 다 정해진 상자가 있어요. 다른 것의 인정이 없으니 자존이 안 생기죠. 가장 무서운 것 중의 하나가 대기업의 지하주차장이에요. 상무급 임원들에게 똑같은 차가 나가잖아요. 큰 회사 주차장에 가면 시커먼 차 50대가 놓여 있어요. 여기서 자존을 찾기 어렵죠. 그래서 자살율이 높아요.”
젊음, 가능성의 시기.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미완성의 시기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게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 부족한데, 아직 모자라는데. 과연 내 자존을 얘기할 만큼 나한테 뭐가 있을까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박웅현 ECD는 명쾌하게 말한다.
“우리는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세요.”
근거가 있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어떤 직책에 앉아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총장? 회장? 조금 더 옳은 생각을 할 가능성이 있겠죠. 하지만 그들도 모든 게 다 옳진 않잖아요. 그러니 내가 가진 장점을 내가 먼저 인정해줘야 한다는 거죠.” 이 점에서 만큼은 박웅현 ECD도 예외가 아니다. 그도 완벽하게 불완전하고, 그도 늘 옳지 않다. 우리처럼.
“일이 생기면, 저는 그 일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못 봐요. 그러면 사람들이 충고하죠. 사람을 포용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요. 그러려는 하는데 잘 안 돼요. 그러면 집중력이 사라져요. 에이, 모르겠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웅현을 만들자. ‘저 새끼랑 일하면 신경 날카롭고, 깐깐해! 그래도 저 새끼는 있어야 해.’ 이런 얘기가 나오게 하면 된 거죠. 단점은 인정해야 해요. 그렇지만 그게 장점을 녹이면 안 돼요. 여기 누구라도 단점만 있어요? 아닐 거예요.”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각보다 강하다. 그가 한마디 덧붙인다.
“내가 못났다고 외로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렇게 존경하는 교수님, 부모님. 그분들도 약속 다 못 지키고요. 실수 다 하거든요. 실수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돈오’한 다음에 ‘점수’하면 돼요.”
자존감 있으려면, 인생의 개별성을 인정해야
송규봉, 강판권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권하고 싶은 책
자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완벽하지 않아도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지 박웅현 ECD는 두 사람의 일화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GIS 전문가 송규봉 씨, 나무학자 강판권 씨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 역시 인생이 생각한 대로 호락호락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 자기 앞에 놓인 일을 등한시 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길로 흘러갔을 때, 그 두 사람은 비로소 이제까지 쌓아온 자신의 역사와 경험을 더해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 주변을 무시하지 않은 것, 자존을 놓지 않은 것,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잘 살핀 것이에요.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이죠, 어떻게 인생이 반복될 수 있겠어요. 어떤 인생이든 기회가 와요. 어느 순간이 될진 몰라요. 똑같은 기회가 똑같이 오지는 않아요. 노량해협에 물살이 있죠. 이순신 장군처럼 그 물살을 보느냐, 못 보느냐의 차이에요.”
송규봉 씨처럼, 강판권 씨처럼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중요하게 붙잡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결국 ‘자존’이 필요하다.
“인생의 개별성을 인정해야 해요. 남의 기준점으로는, 절대 나만의 답이 나오지 않아요. 모든 인생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어요. 그걸 뚫고 나가야 하는데, 자기를 존중하는 힘 없이는 뚫고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다음주에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하는 까닭
오프라인 모집은 마감되었지만, 이렇게 기사로 매주 8주 특강 강의를 함께 할 수 있다.
여러분도 이곳에 초대한다.
“모든 사람은 아직 뇌관이 발견되지 않은 폭탄이에요. 터질 것들은 다 가지고 있어요. 주위에 있는 노량해협은 무시하고 활만 찾고 있으니까 안 되는 거죠. 자만이 아니라 자존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답은 나에게 있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부러워해도 난 엄친아가 될 수 없고 김태희가 될 수 없어요. 내 앞 잔디가 저기 푸른 잔디보다 듬성듬성할지언정, 여기서 답을 찾지 말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답은 없어요.”
박웅현 ECD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것만큼, 우리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강의를 듣는 이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불끈불끈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작은 열정은 금방 식을 테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인생에 불평부터 털어놓을 우리라는 것을. 그는 단호하게 당부했다.
“흔들리지 말라”고.
“인생은 설계도대로 흘러가지 않거든요. 혼자 사는 게 아니거든요. 계속 흔들릴 거예요. 그때마다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 당신을 붙잡아 줄 수 있는 것들을 만나세요. 본질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세요.”
우리가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만나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맨 처음, 그가 강의를 소개할 때, 이런 얘길 했다.
“젊음, 젊음은 멋진 거거든요. 그 젊음을 좀 더 멋지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멋진 젊음이라는 게 뭘까? 그것 역시 한 가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자존을 배웠으니, 그 ‘멋짐’은 개개의 젊음마다 다른 색깔일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돈오’하고, 꾸준히 ‘점수’하면 ‘나답게 멋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큰 기대 없이, 동시에 그런 희망을 품고, 강의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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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도끼다 박웅현 저 | 북하우스
『책은 도끼다』는 창의력의 전장인 광고계에서 인문학적 깊이가 느껴지면서도 감성적인 광고를 만들어온 저자의 아이디어의 원천을 소개하는 책으로, 저자는 그것이 바로 '책'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사고와 태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책읽기를 하라는 것.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 봄으로써 '보는 눈'을 가지게 되고 사고의 확장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책읽기를 통해 삶이 풍요로워졌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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