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의 부자를 위해 500명의 가난한 사람이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한국의 대기업 보고서
IMF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부도가 난 한보그룹 청문회가 열릴 때였다. 당시 출석했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주인(재벌 총수)이 하는 일을 어찌 머슴(임직원)이 아느냐.”라는 발언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신분이나 계급이 있는 사회도 아닌데 재벌총수와 임직원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나아졌을까?
IMF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부도가 난 한보그룹 청문회가 열릴 때였다. 당시 출석했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주인(재벌 총수)이 하는 일을 어찌 머슴(임직원)이 아느냐.”라는 발언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신분이나 계급이 있는 사회도 아닌데 재벌총수와 임직원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나아졌을까?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경영학에서는 대부분 주주라고 말한다. 기업의 설립을 위한 자본을 낸 것이니 당연히 주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주 중심의 경영을 추구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주주 중심의 경영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최고경영진의 엄청난 급여와 보너스가 문제가 된 것이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돈으로 최고경영진만 보너스를 엄청나게 챙기는 것이 못마땅해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좀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장된 대부분의 대기업은 주식이 분산되어 있다. 삼성의 에버랜드처럼 복잡한 대기업의 순환출자구조(여러 기업이 서로 주식을 구입해서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식)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상장기업의 경우 전체지분의 30퍼센트 정도만 확보하면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
본래 이론적으로만 보면 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주주가 맡겨놓은 돈을 불리기 위해 임직원을 고용한다. 그런데 상장기업의 경우 주주들 대부분은 회사의 경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크게 없다.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오르기만을 바란다. 그러다보니 주주총회에 참여하는 비율이 낮다. 전체 주식의 30퍼센트 정도만 확보(그것이 재벌총수의 개인지분이든 계열회사의 지분이든 상관없이)하면 그들은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고 임직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자신의 몫을 제외한 나머지 70퍼센트 주주들의 부를 창출하는 데 힘을 쓰기보다 본인의 부를 더 늘릴 방법을 찾게 된다. 그를 위해서 조금씩 사업을 떼내본다. 대주주의 자녀에게 조금 증여를 하고 그 돈으로 회사가 생산한 자동차를 운송해주는 별도의 물류운송 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다시 상장한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의 자녀는 금세 엄청난 부자가 된다. 워렌 버핏도 울고 갈 재테크의 황제들은 이렇게 탄생한다.
IMF 이전에는 ‘삼성맨’ ‘현대맨’이라는 용어가 흔하게 통용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기업문화를 대표하는 ‘삼성맨’ ‘현대맨’ 같은 용어가 언론에서 사라져버렸다. IMF 이전만 해도 종신고용과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 운용이 직장인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데 반해, 이제는 시스템이 훨씬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즉 사람보다 글로벌 컴퍼니로서의 회사 이미지, ‘삼성 제품, 현대자동차 제품’이라는 인식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종신고용이 사라진 시점부터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일체감이나 소속감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대기업이 벌리는 사업들이 대부분 비슷해져서 특정 기업의 문화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예전만 해도 소비자의 머릿속에 삼성은 전자, 현대는 건설, 롯데는 과자 같은 기업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기업들은 모든 업종에 무차별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특정 기업의 특정 업종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분별한 인수합병을 통해 마트나 호텔, 편의점, 식음료, MRO 사업(기업 내부에 사무용품 등의 소모성자재를 판매하는 기업 구매 대행) 등 이른바 ‘돈 놓고 돈 먹기’ 사업에 무분별하게 진출해 있다.
사실 대기업이 근래 진출하고 확장시킨 사업들을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고급 기술력이 없이도 가능한 사업들인 것이다. MRO나 택배, 홈쇼핑, 마트 등의 유통업 같은 사업은 자금력만 갖추고 있으면 손쉽게 장악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고생스럽게 세계시장에 진출하지 않고도 국내에서 쉽게 시장을 넓힐 수 있는 사업들인 셈이다. 예전에는 각 기업마다 고유한 전문성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업 영역이 너무 중복되다보니 업종에 따른 특성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수많은 임직원이 열심히 일해서 받는 월급으로는 도무지 부가 쌓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주주의 재산은 빛의 속도로 증가한다. 임직원은 마트를 세우기 위해서 입지를 선정하고 사업 계획 등을 열심히 세운다. 마트의 직원들은 24시간 열심히 일한다. 대기업의 24시간 서비스 덕택에 주변의 땅값은 올라간다. 그런데 주변에 땅을 미리 사둬서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돈다. 마트가 들어설 것을 미리 알고 투자를 해뒀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미리 그것을 알고 땅 살 돈을 준비해둘 수 있었겠는가? 답은 뻔하다.
그뿐만 아니라 대주주의 자녀들은 회사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특별대우를 받으며 초고속으로 승진한다. 일반 직원들 휘하에 대주주 자녀가 들어왔다면 언젠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갈 것이기 때문에 일반 직원을 다루듯 함부로 할 수 없다. 직원들은 대주주의 자녀들이 대체 일을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한다. 보통 사람들은 업무의 기본인 사업계획서를 몇 장씩 준비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저 아이디어나 몇 마디 던지고 실행에 들어간다. 회사의 모든 팀은 회장의 자녀를 위해 상시 대기 중이다.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주인집 곳간은 늘 가득 채워져 있고 머슴집은 곳간은커녕 하루 끼니를 잇기도 힘들다. 그나마 주인집 ‘집사’는 머슴들보다 더 좋은 고깃국이라도 먹고 산다. 농사일은 늘 머슴이 하는데 주인집 곳간만 채워진다. 주인집의 재산은 날로 번창하는데 머슴의 집은 재산이라는 것이 없다. 돌이켜보기는 잔인하지만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은 늘 우리 월급쟁이들이 하는데 20-30년 꼬박 벌어야 집 한 채 마련하기도 버거운 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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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생태계에서 기업의 재무상태를 감사하고 돈의 흐름을 감시하는 공인회계사로 일하며 지난 10여 년간 곱창집 사장님부터 대기업 회장님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장사하는 많은 분들을 고객으로 만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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