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화장품 가격의 비밀 - 왜 원화가 아닌 달러로 적혀 있을까?
면세쇼핑에 숨어 있는 환율 경제학
얼마 전 정부소유의 면세점을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징세권’을 포기하는 것과 함께 ‘사업권’도 완전히 포기하고 대기업에 넘겨준다는 것이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인천공항은 거의 8조 원에 가까운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국가기반시설이다. 그중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면세사업을 대기업에 판다는 일이 과연 국민을 위하는 일일까.
직장인이 큰돈을 기꺼이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해외여행일 것이다. 평소에는 만 원 한 장에도 벌벌 떨던 사람들이 해외여행만 가면 씀씀이가 커지게 마련이다. 애쓰고 고생한 자신에게 선물을 안겨준다는 생각에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이처럼 긴장이 풀어지는 데는 복잡한 환율도 한몫한다.
예를 들면 면세점에서 적용되는 가격도 환율을 이용해 이익을 취한다. 사는 사람만 모를 뿐이다. 무심코 지나가기 쉽지만 화장품이나 화장품에 붙어 있는 금액은 원화가 아닌 달러다. 우리나라 인천공항 면세점의 가격표도 원화로 기재되어 있지 않고 달러로 기재되어 있다. 왜 그럴까? 어차피 해외여행의 한껏 취해 기분을 내는 시점에서 화장품 가격표가 달러인지 원화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면세점 화장품은 가격이 시중보다 싼 데다 복잡한 계산은 직원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외국인이 많아 그런가보다 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면세점 입장에서는 상품에 적용되는 환율은 중요한 수익 포인트다. 여기서 챙기는 잔돈도 쏠쏠하다. 환율에는 ‘매도율’과 ‘매입율’이 있는데, 이 중 면세점이 적용하는 환율은 쇼핑하는 날의 전날 ‘매도율’(이것이 높은 환율이다)을 적용한다.
얼마 전 여름휴가 동안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게으름 탓에 미리 환전을 해놓는다는 걸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인천공항 안에 있는 은행에서 환전을 하니 여간 비싸지가 않았다. 여행객이 마지막 환전할 수 있는 곳이 공항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은행이 이를 이용해서 높은 환전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외국환 은행은 말하자면 양국의 통화 교환 시 중간거래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은행은 한 고객으로부터 싼 값에 달러를 구입하여 다른 고객에게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이다. 2012년 9월 5일에 한 은행에서 이뤄지는 환전 거래를 한번 살펴보자.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1,114원에 달러를 사고 1,154원에 판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약 4퍼센트의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최근 은행을 지나가다보면 창문에 환전에 관한 현수막이 많이 붙어 있다. 은행들이 알 수 없는 각종 혜택을 베풀어가면서 환전 업무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공항에서 환전을 마치고 출국장을 나서면 곧바로 보이는 것이 바로 공항 면세점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다. 패키지 관광조차도 입국 수속을 비행기 탑승 두 시간 전에 마무리짓는다. 쇼핑을 위해서다.
공항 게이트 앞에는 월급쟁이의 지갑을 노리는 글로벌 명품 기업이 도열해 있다. 월급쟁이에게 1년 중 가장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시간, 10만 원을 만 원처럼! 바야흐로 명품 쇼핑의 시간이다. 다른 때는 엄두를 내지 못해도 여름휴가 때만큼은 기분을 최대한 내봐야 한다. 면세기 때문이다.
우선 출발 일주일 전에 시내 면세점과 인터넷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인천공항 면세품 인도장에서 찾는다. 거기서 30분을 넘는 시간을 소비한다. 동병상련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건을 찾고 이제 남은 시간은 1시간이다. 꿈에 그리던 명품가방과 시계, 구두를 구입해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많은 여성들이 사고 싶어 하는 루이뷔통 가방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는 것일까? 백화점에서 루이뷔통 가방을 구입하는 경우에 소비자는 고가의 제품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와 관세, 부가가치세를 부담해야 한다. 요즘은 FTA로 인해 관세가 철폐됐다고는 하나 소비자는 그 효과를 보지 못한다. FTA 도입 전보다 오히려 가격이 더 오른 것이 사실이다. 가격은 루이뷔통 사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개인이 해외에서 루이뷔통 가방을 직접 구입해 들여오다가 세관에서 적발될 경우 400달러를 초과하는 금액의 상품이면 상품 가격의 약 20퍼센트를 세금으로 물어야 한다.
면세점에서 사는 경우에는 앞서 말한 세금이 모두 면제된다. 게다가 인터넷 면세점에서는 달마다 적립금과 포인트, 쿠폰을 넉넉하게 뿌려준다. 여행 가는 길에는 여행사나 공항리무진에서 나눠주는 면세점 쿠폰이 넘치다 못해 발에 채일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인심 좋게 뿌려주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보통 면세점에 떨어지는 마진은 40퍼센트에 달한다. 100만 원 상당 가방의 면세점 입고 가격은 60만 원 정도다. 물론 매장 직원 급여와 임차료, 건물 감가상각비 등을 차감한다 하더라도 큰 이익이 남는다. 롯데그룹의 경우 작년에만 해도 면세 부문에서 약 2조 3,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로 인한 영업이익이 1,900억 원에 이르렀다. 호텔신라의 경우에도 면세사업 부문에서 매출이 약 1조 5,000억 원이고 영업이익이 650억 원이나 된다. 실로 엄청난 실적이다.
면세점이라는 것은 국가의 ‘징세권’을 포기하는 사업이다. 법에 의해 국가가 매겨놓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곳을 국가가 허용해주는 것이다. 사업 자체가 특혜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특혜를 부여하는 이유는 관광사업 활성화라는 명분 때문이다. 그런데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사실 국산품의 비중이 거의 없다.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해외여행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뷔통 등의 해외명품을 중심으로 면세점의 매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기준 국내 면세시장 현황에 따르면 국내 면세시장 총매출은 약 4조 2,000억 원 규모이며 이 가운데 명품 등 해외상품 매출은 3조 8,000억 원으로 91퍼센트에 이른다. 이마저도 국산 담배가 있었기에 10퍼센트에 가까운 국산점유율이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한다.
더욱이 대기업계열의 면세점과 해외명품의 관계를 보면 해외명품이 ‘갑’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면세점 눈치보기에 바쁜 ‘을’의 지위에 있다. 면세점이 업체로부터 수취하는 판매수수료율만 봐도 알 수 있는데, 해외 명품의 면세점 수수료율이 국내 제품의 수수료율 보다 훨씬 낮다.
얼마 전 정부소유의 면세점을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징세권’을 포기하는 것과 함께 ‘사업권’도 완전히 포기하고 대기업에 넘겨준다는 것이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인천공항은 거의 8조 원에 가까운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국가기반시설이다. 그중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면세사업을 대기업에 판다는 일이 과연 국민을 위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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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생태계에서 기업의 재무상태를 감사하고 돈의 흐름을 감시하는 공인회계사로 일하며 지난 10여 년간 곱창집 사장님부터 대기업 회장님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장사하는 많은 분들을 고객으로 만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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