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읽는다고 인생이 바뀌냐? - 『삶을 바꾸는 책 읽기』
독서의 기술이 곧 삶의 기술
이 책은 일종의 자기계발서적 포맷을 갖고 있지만,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저자는 자기계발서가 갖는 성공에 대한 환상,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강조, 당장 겪는 불안에 대한 당의정적 처방을 비판한다. 그런 세계가 공허한 이유를 지적하며 극복하기 위해 인간 근본을 돌아볼 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을 갖기를 권한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왜? 필요한 게 그 안에 있으니까. 교과서, 참고서, 여행가이드를 읽는 것은 정말 필요하기 때문이다. 옛날 선비들은 밥은 굶어도 책을 읽었다. 장원급제로 인생이 바뀔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고시촌의 수험생들도 책을 읽는다. 밑줄을 긋고 한줄 한줄 달달 외우고, 그 의미를 머릿속에 새겨 넣는다. 고시를 패스하고 나면 불가능할 것 같은 신분상승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책은 그런 실용서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위해서 그냥 읽는 나를 위해서 읽는 책을 말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만 보니”라는 말을 할때 바로 그 책이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민음사)의 저자 정혜윤은 세상 모든 책이 다 자기계발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알쏭달쏭한 얘기를 한다.
『침대와 책』으로 몇 년전 독서계에 나타난 정혜윤은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씨줄날줄로 엮어낸 독특한 책이야기를 여러 권 써낸 책 좀 읽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뮤즈와 같은 존재다. 현직 방송국 프로듀서인 그녀는 방송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직 책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책을 읽고 있자면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눈앞에 그 책이 펼쳐지는 것같은 광경이 떠오른다. 그녀는 그동안 줄기차게 자기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이야기해왔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더 과감히 한 발 더 나아갔다.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 도 있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목차를 읽어보면 일종의 자기계발서같다.
책을 읽기를 주저하는 사람, 공부, 수험과 취업준비를 하기에도 벅찬데 책을 읽는 것은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 실용서를 읽으면서 자기계발을 하기에도 바쁘다고 여기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마음이 급하고 불안해질때일수록 고전문학과 인문서적을 읽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해열제와 진통제로 잠시 열을 내리고 통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힘들고 오래 걸리지만 환부를 도려내고, 항생제를 충분히 쓰는 것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녀는 책을 통해 배운 디테일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해야할지 질을 잃을 때,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 기준과 나침반이 필요할 때 책이 그 역할을 해준다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가 살며 경험하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불안과 아픔도 책을 통해 타인의 그것을 지켜보며 서서히 최소한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준비를 하게 된다. 마르케스에게 ‘삶은 기억’이고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것이기에 각자가 기억한 모습을 보는 것은 지금 현실에서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그것들을 나의 그것으로 재구성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종의 자기계발서적 포맷을 갖고 있지만,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저자는 자기계발서가 갖는 성공에 대한 환상,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강조, 당장 겪는 불안에 대한 당의정적 처방을 비판한다. 그런 세계가 공허한 이유를 지적하며 극복하기 위해 인간 근본을 돌아볼 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을 갖기를 권한다. 실리 위주, 쓸모 위주, 개인적인 해결위주의 세계관을 경쟁과 패배, 열등감에서 절대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어 저자는 진정한 자기계발은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깨닫는 것”이고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아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을 갖는 것이라 말한다. ‘불안하기 때문에’라고 말하기보다 ‘불안하지만’이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이 될 용기를 갖는 것이 필요한데 자신의 경험을 더 큰 맥락에서 볼 줄 알기 위해 책이 도움이 된다고 역설한다.
또한 책은 한 가지를 잘 하는 능력을 주지는 못하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볼 능력을 준다. 그러기 위해 모든 것을 특정 목적을 갖고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단 ‘생생하게’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기억, 경험, 세상을 연결시키게 되는데, 이런 연결이야말로 진정한 사고인데, 이를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게 책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껌좀 씹던 누나들이 놀기도 잘했듯이, 책 좀 읽어주면 인생이 바뀔 것만 같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과 삶의 관계에 대해 말하며 시인 쉼보르스카가 한 “우리 삶은 중간 부분이 펼쳐진 책”이란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보르헤스가 말했듯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이므로, 같은 책을 읽더라도 앞부분의 책에서 읽은 것이 다른 사람들은 각각의 독서에서 얻는 것이 다를 것이고 그들의 인생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하나하나가 우리를 부르는 영혼이며, 삶은 무한히 끝없이 갈라진 길과 같은데 그 갈림길마다 책이 놓여있다.
저자는 250페이지 남짓의 길지 않은 책안에서 무려 110권의 책을 촘촘히 인용하며 방대한 지식으로 읽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 읽은 사람이니 책을 통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래, 당신은 그렇게 믿을 수도 있겠어’라고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책을 좋아하고, 책 이야기를 좋아하는 열렬한 애서가가 경험한 책을 통한 삶의 변화에 대한 고백이 지난 책들에 비해 잘 정돈되어 있고, 읽기도 편하게 써져 있기에 처음 그녀의 책을 접하는 독자들이 집어들기 좋을 것이다.
관련태그: 정혜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침대와 책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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