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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직접 사인한 와인 술통에 깜짝! - 헤레즈 데 라 프론테라

스페인 생쥐는 와인도 즐긴다?! 플라멩코보다 셰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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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시음시간! 와인 잔에 코를 갖다 대니 진한 브랜디 향이 올라온다. 알자스 지방에서 맛본 화이트와인 리슬링이 떠오른다. 리슬링은 과일 향이 강했는데, 똑같이 식전주와 식후주로 마시는 티오 페페 와인은 어떤 맛일까? 천천히 한 모금 삼킨다. 향은 독했지만 맛은 굉장히 드라이하고 달콤하다. 알자스의 리슬링이 나를 반하게 한 것처럼 티오 페페 와인 역시 나를 반하게 한다.




가장 먼저 브랜디를 만드는 곳을 둘러보는데 커다란 티오 페페 로고 조형물이 우리를 반긴다. 사람처럼 빨간 모자와 자켓을 입고, 기타를 옆에 세워둔 술병이다. 이 로고는 1936년, 루이스 페레스 솔레로Luis Perez Solero가 만들었다고 한다.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는 농부를, 빨간색 자켓은 헤레스에서 유명한 승마복에서 따왔고, 기타는 플라멩코를 상징한다. 헤레스에서 유명한 아이콘은 다 넣어 만든 셈이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스페인의 전통적인 가옥구조인 파티오가 나타났다. 햇살이 들어와야 하는데 어두컴컴하다. 위쪽을 보니 포도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거미줄처럼 엮여서 자연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 심은 포도나무 중에는 100년이 넘은 것도 있단다. 오래된 포도나무는 와인을 만들기에는 부적합해서 관상용으로 이용된단다. 건물 안은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향과 퀴퀴한 와인 냄새가 뒤섞여 있다. 층층이 쌓인 술통의 한쪽 벽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고, 백열전구가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매달렸는데, 거미줄이 쳐져 있어 마치 오래된 성 안에 들어온 것만 같다.

브랜디를 증류하는 커다란 증류기가 보인다. 예전에 프랑스 그라스Grasse의 향수공장에서 본 증류기와 비슷하다. 증류방식은 간단하다. 증류기에 와인을 넣고 왼쪽의 네모난 곳에 불을 때면 관을 통해 열기가 증류기로 들어가고, 이를 통과하면서 증발된 와인이 오른쪽 통에 저장되는 방식이다. 브랜디는 숙성 정도에 따라 색상이 진해진다. 쉽게 비교할 수 있게 일렬로 쭉 늘어놓은 잔에 흰색에서 진한 색까지 각 브랜디를 따라놓았다. 관광객들은 잔을 들고 브랜디 색과 향을 비교해본다. 여기서 생산된 브랜디 레판토Lepanto는 셰리와인을 만드는 데 쓰이고, 전 세계로 수출되기도 한단다.

브랜디 제조공장을 나와 돌아본 곳은 거대한 원형건물에 진열된 오크통들이다. 곤살레스 비아스에서 와인을 수출한 나라들엔 어떤 나라가 있는지 술통을 이용하여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함께한 관광객들의 국가를 물어보고 수백개의 통 가운데 해당 국가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준다. 우리나라도 있을까 하며 기웃거리는데, 왼쪽 편에서 ‘Corea Sur’라고 쓰인 태극기가 붙은 술통이 눈에 번쩍 띈다. 하하, 가이드보다 내가 먼저 찾아내다니,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인가 보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와인 저장소다. 거대한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보다 그 장엄한 분위기가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검은빛을 띠는 술통들이 4단으로 쌓여 수십 미터까지 죽 늘어서 있다. 곳곳에 거미줄이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들어왔다면 아마 오랜 세월 버려둔, 지금은 쓰지 않는 술 창고쯤으로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햇살에 반짝이는 거미줄이라니, 내 머릿속에 깊은 인상이 하나 찍힌다.

20분 정도 비디오를 보고 시음장소로 향하는 중간에 가이드가 재미난 곳으로 안내했다. 와인 잔에 와인이 가득 담겨 있는데, 그곳까지 작은 사다리가 걸려 있다. 이 와인은 생쥐를 위한 것이란다. 에이, 농담이겠지 하는데 벽에 보니 정말 생쥐가 와인을 먹는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모두 유쾌하게 웃는다. 술 공장에 사는 스페인 생쥐는 와인도 즐기는구나. 그것도 공짜로!




통로에는 세계의 왕족과 유명 연예인, 예술가들에게 헌사된 술통을 모아놓았다. 그중 피카소 사인이 있는 오크통을 보고는 모두 감탄해 마지않는다. 사인이 어찌나 예쁘고 큼지막한지! 또 이렇게 가까이서 피카소 사인을 보게 될 줄이야!

시음장소는 공장 내부에 동네 잔치집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와인은 셰리주 가운데 비교적 옅은 색의 3가지 와인에서 하나를 고르는데, 우리 테이블은 가장 옅은 피노Fino를 골랐다. 병에 쓰인 이름은 ‘피노 무이 세코Finomuy seco’. 이름에서 이미 매우 드라이하다고 밝히고 있다(스페인어로 ‘seco’는 ‘마른, 건조된’이라는 뜻이다). 입구에서 별도로 구매한 안주 티켓을 문의하자 하몽과 치즈, 비스킷이 함께 나온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음시간! 와인 잔에 코를 갖다 대니 진한 브랜디 향이 올라온다. 알자스 지방에서 맛본 화이트와인 리슬링이 떠오른다. 리슬링은 과일 향이 강했는데, 똑같이 식전주와 식후주로 마시는 티오 페페 와인은 어떤 맛일까? 천천히 한 모금 삼킨다. 향은 독했지만 맛은 굉장히 드라이하고 달콤하다. 알자스의 리슬링이 나를 반하게 한 것처럼 티오 페페 와인 역시 나를 반하게 한다.

나는 여행 중반에는 웬만하면 기념품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예외가 됐다. 티오 페페의 브랜디 레판토Lepanto와 셰리와인을 종류별로 50ml 작은 병에 담은 와인박스를 사버린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알리라. 들고 간 여행책조차 조각조각 뜯어서 읽고 버린다는 것을. 그런데 나는 여기서만 3kg이 넘는 기념품을 샀다. 앞으로 남은 여행길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했지만, 티오 페페의 매력은 그만큼 거부할 수 없었다. 물어보니 마드리드에서도 살 수 있지만 이곳처럼 다양하지는 않단다. 솔직히 시음한 셰리와인을 큰 병으로 사고 싶었지만, 무게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깝기만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의 진짜 매력, 더 알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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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소도시 여행 박정은 저 | 시공사

중남미 여행 중 스페인어를 배우며 시작된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은 저자를 마침내 순례자의 길로 이끌었다, 순례자의 길은 저자에게 큰 깨달음이자 행운의 길이었다. 이 길에서 저자는 스페인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에 감동하고, 감칠맛 나는 음식에 매혹당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자는 다시 스페인을 찾았다. 이번에는 스페인 소도시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 마치 둘시네아 공주를 찾아 걸었던 돈 키호테처럼. 흔히 정열, 사랑, 자유로 표현되는 스페인은 감히 한 단어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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