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들의 박수와 울음을 뒤로하고 생활관에 들어간 입영 장정들은 입소대대에서 3박 4일간 생활하게 된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소지품 검사.
“모든 소지품을 자기 발 옆에 내려놓는다. 실시!”
군대는 전형적인 계급사회라지만 육군훈련소만큼 평등한 세상은 없다.
여기서는 누구나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자세로 앉아, 똑같은 암기사항을 외운다. 예외는 없다.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은 예외와 특별한 대우를 바라지 않는 공동체 정신을 배운다.
각자 배정받은 생활실(내무반)에 들어서면 분대장이 소지품 검사를 실시한다. 훈련소 생활에 불필요한 물건은 모두 수거하여 고향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안경, 지병(고혈압이나 당뇨 등) 때문에 평소에 복용하는 약 등이 아니면 사실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이란 거의 없다. 모든 의류며 세면도구 일체는 부대에서 제공한다.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 등을 미리 사들고 들어오는 장정들이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훈련소에서는 흡연이나 일체의 개인적인 군것질이 허락되지 않는다. 부대 안에는 당연히 PX가 있지만, 훈련병들은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돈을 지참해야 할 이유도 없다.
훈련소는 말하자면 군인들의 유치원 같은 곳이다.
군사 훈련 이전에 전투복 입는 방법부터 훈련소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일일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배울 준비가 된 장정들은 자식만큼이나 귀엽고 사랑스런 존재들이다.
이렇게 불필요한 개인 소지품들을 모두 내려놓고 나면 부대에서 필요한 보급품들을 지급하게 된다. 각자의 체형에 맞는 전투복과 전투화는 물론이고 세면도구에 개인용 휴지까지 모든 것을 지급한다.
이어서 신체검사와 인성 및 적성검사가 실시되고, 저녁이 되면 입고 왔던 옷을 벗어 각자 상자에 포장하여 편지와 함께 고향의 부모님께 보내게 된다. 저마다 집에서 연무대까지 오는 동안, 그리고 입소대대에서 입영행사를 하는 동안 ‘내가 드디어 군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진짜 군대에 왔다는 생각을 가장 절실하게 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사회에서 늘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포장할 때, 사회에서 누리던 모든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포장되어 집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이제는 자의로 선택할 수 없는 옷을 똑같이 입고,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부모와 가족의 품을 떠나서도 외로움에 지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한 침상에서 자고 한 식탁에서 먹고 함께 훈련받는 동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옆 사람의 코고는 소리조차 자장가로 들리는 고단한 훈련병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위 ‘짬밥’으로 불리는 군대 밥을 먹어보고, 입고 왔던 옷을 포장해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난 뒤에 맞이하는 군대에서의 첫날밤은 누구나 단잠을 기대하기 어렵다. 함께 왔던 부모님은 잘 돌아가셨는지, 여자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친구 녀석들은 얼마나 신나게 놀고 있을지, 오만가지 상념과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게 마련이다. 이때부터 제대할 때까지 남은 날짜를 헤아리는 장정도 있고, 미처 끊지 못한 담배로 몇 시간이고 입맛을 다시는 장정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고민과 걱정을 무시한 채 밤은 어김없이 깊어가고, 난생 처음 겪어보는 군대식 행정에 지친 병사들은 하나둘 코를 골기 시작한다.
입소대대에서의 2일차와 3일차에는 개인별로 군사 특기를 부여하기 위해 특기 분류 심사를 받게 된다. 요리, 운전, 중장비, 용접 등 특기 분류 심사는 전문 요원에 의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며, 이때 입영 장정의 적성과 능력을 최대한 고려하여 적합한 특기를 부여하게 된다.
마지막 4일차에는 입소대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신병 훈련을 받게 될 교육연대로 이동하게 된다. 이제부터 정예 강병이 되기 위한 본격적인 신병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신분도 입영 장정에서 훈련병으로 바뀌게 된다. 입영 장정이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이라면, 훈련병은 비록 계급은 없으나 엄연한 군인의 신분이다.
이렇게 4일간의 입소대대 생활을 통해 입영 장정들은 우선 군대식 질서와 생활을 맛보기로 경험하게 되고, 단체생활에 필요한 규율과 자기 절제도 익히게 된다. 본격적인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군대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 곳인지는 대강 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 있던 훈련병들은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훈련소의 첫날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에 길게 사로잡혀 있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체력적 한계를 이겨내야 한다. 그렇게 훈련소에서 바쁘고 정신없고 힘겨운 5주를 보내는 사이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바뀌고, 정신적 한계와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내심과 성취감도 배우게 된다. 이런 5주간의 훈련을 통해 훈련병들은 어엿한 대한민국 육군의 정예 병사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농부에게 삽이 필요하고 어부에게 그물이 필요하듯, 군인에게는 총이 필요하다.
난생처음 소총을 받아 들면 누구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누구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총을 받아 드는 순간, 그 총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단박에 머릿속을 채운다.
입소대대를 떠나 훈련소로 이동한 훈련병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개인화기, 저마다 지급되는 소총이다. 훈련소 첫날, 소총을 받아 들게 되면 누구나 새삼 자신이 군대에 왔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하게 된다. 누군가의 목숨을 단박에 빼앗을 수 있는 살상용 무기, 전투에서 나의 생명을 보장해줄 유일한 무기가 군인의 소총이다. 목수가 대패에 익숙해져야 하고 주방장이 칼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처럼, 모든 군인들은 소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난생 처음 소총을 받아 든 훈련병들에게 총은 아직 무겁고 낯설기만 하다. 군인에게 총이 필수라는 사실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도무지 컴퓨터나 게임기, 볼펜처럼 손에 익숙해질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쥐거나 메어야 하는지, 이동할 때는 어떤 자세로 잡아야 하는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나흘째 입는 군복도 아직 어색하기만 한데, 한시라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총은 여간 버거운 존재가 아니다. 이처럼 낯선 총기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육군훈련소에서는 24시간 동안 총기 친숙 훈련을 별도로 실시하고 있다. 잠을 자든 밥을 먹든, 혹은 화장실에 가든 세면장에 가든 반드시 총기를 휴대하도록 하는 훈련이다. 총이 몸의 일부로 느껴질 때라야 참다운 군인이 되는 것임을, 그래야 사격을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임을 배워가는 과정인 것이다.
다행히 요즈음 신세대 훈련병들은 예전 훈련병들에 비해 총기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덜 느낀다고 한다. 전쟁과 전투를 소재로 한 각종 게임이며 오락에 친숙한 덕분일 수도 있겠고, 기계나 장비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때문일 것이다.
“총을 들고 있으니 진짜 군인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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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 아름다운 젊음은 없다 김환기 저/김상훈 KISH 사진 | 플래닛미디어
창설 60주년을 맞은 논산 육군훈련소 이야기. 지난 60년 동안 육군훈련소는 수많은 변화와 굴곡, 발전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훈련에 대한 열의와 열정만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설이 열악하든 말든, 외부의 상황이 좋든 나쁘든, 육군 최고의 정병 육성을 위한 육군훈련소의 땀과 노력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다. 과연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6.25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육군훈련소의 60년 역사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