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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땅값, 집짓기는 땅 구입부터

좋은 집 그리기:살구나무 윗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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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 볼만한 집터의 요건이 많고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땅값이다. 땅값이 내 예산에 맞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땅도 좋은 집터가 아니다. 부암동에서 집터 찾기를 시작할 때는 아주 막연하게 예산을 헤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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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윗집 ⓒ (주)솔토건축


내가 살았던 ‘집’들

갈현동 2층집에서 3년 가까이 살다가 첫 아이 돌을 앞둔 1989년 이른 봄에 불광동 미성아파트 28평 복도식아파트 1층으로 옮겼다. “자고로 내 집 마련은 빚을 져서라도 서둘러야 한다”며 내 집 마련의 셈이 나보다 훨씬 빨랐던 아내의 종용으로 1987년 가을에 당시 미분양 천지였던 아파트 중 하나를 분양 계약했다. 계약 당시 1층과 최상층인 15층은 모두 미분양이어서 마음대로 동호수를 골라잡을 수 있었는데 “높은 곳에서는 절대 못 산다”는 아내의 뜻을 따라 1층 중에서 거실 앞 외부공간이 1층보다 한두 층 높이 낮게 조성되어 사생활 침해 걱정이 없는 집을 골랐다.

아내 덕에 운 좋게도 1980년대 말 집값 폭등 국면을 무사히 피하고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이후 한국사회의 여느 중산층 가구들처럼 ‘아파트 평수 늘리기’ 과정을 밟아 갔다. 첫째 목표는 방 3개짜리 아파트. 1992년 홍제동 한양아파트 33평형으로 집을 옮겼다. 이때에도 아내의 ‘높은 층 절대 불가’ 원칙 때문에 층수는 2층이었다. 낮은 층은 집값도 싸니 별로 나쁠 게 없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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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꾸민 홍제동 한양아파트 1층 ‘진짜 마당’


아파트 한 채로 다 돼!

따져 볼만한 집터의 요건이 많고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땅값이다. 땅값이 내 예산에 맞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땅도 좋은 집터가 아니다. 부암동에서 집터 찾기를 시작할 때는 아주 막연하게 예산을 헤아리고 있었다. 땅은 100평쯤에 2억 내지 3억 원, 공사비 평당 400만 원으로 60평 정도 지으면 2억5천만 원, 합해서 5억에서 6억 원 정도.

부암동 땅값을 생각하면 어림없는 예산이었지만 어쩌리요, 당시 내 아파트 팔아 만들 수 있는 돈이 그 수준인걸. 내심으로는 ‘아직 예산이 많이 모자라니 집짓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진행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집터를 알아보던 중 점차 내 계산이 달라지고 있었다. 용인 일대 동백, 구성 등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 용지들 중에서는 분양가가 평당 350만 원 안팎인 것이 적지 않았다. 대지 규모가 대개 70~80평 정도이니 땅값은 3억 원 정도. 내가 어림잡던 예산과 비슷하다. 특히 도시계획상 용도지역이 제1종 주거전용지역이고 2층 이하로 건축이 제한된 땅은 값이 덜 나가기 마련이다. 나같이 내 집 지어 살려는 사람에게는 환경 좋고 값도 싸니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살고 있던 분당 아파트값이 점점 올라서 9억 원을 웃돌고 있었다. 이런 계산이라면 땅이 100평이 넘어도 문제없다. 집 규모를 넉넉하게 잡고 작업실을 크게 지을 여유도 있다. 어림잡아 땅값 4억 원에 공사비 4억 원, 합계 8억 원.

“이거 뭐야, 아파트 팔면 다 돼!”


집짓기는 땅 구입부터

아내는 아직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내가 땅을 둘러보고 온 얘기를 해도 건성으로 듣는 표정이다. 기껏해야 “거기서 분당이나 서울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데? 버스나 지하철은 있어?”라고 묻거나 “그런 곳에서 불편하고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라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설마 이 사람이 진짜로 일을 벌이겠어?” 하는 속내와 “그렇게 먼 곳으로 가면 애들 학교는 어떻게 다니고 나는 학교를 어떻게 다니란 말이야?”라는 불만을 깔고 있는 것이 뻔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면 평생 아파트에서 살 거야?”라고 내가 짜증내듯이 내뱉는 말에는 대답이 없다. 아파트가 좋다는 건 아니지만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으니 쉽게 내 장단에 맞장구를 치지 못하겠다는 것이리라.

딱히 아내의 이런 태도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분당과 거리 조건에 큰 차이가 없는 판교나 죽전이 첫 번째 후보인 것은 분명했으므로 이 두 곳이 집중적인 탐색 대상지였다.


예산 헤아리기

여기에서 나의 소위 예산 대책을 좀 더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이 살고 있던 아파트를 덜컥 팔아 예산을 마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집짓는 기간 동안에도 어디엔가는 살아야 하지 않는가.

아파트 팔아 땅 사고 집짓는 데에는 약간의 행동 계획과 얼마간의 이자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방법 1. 살던 아파트를 팔아 예산을 마련하고 한 동안 셋집 살이를 한다.
방법 2. 빚을 내서 초기 자금을 융통하고 새집이 준공될 시점에 맞추어 아파트를 판다.

이 중 아내와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당연히 첫째 방법이었다. ‘살고 있던 분당 아파트에서 1년쯤 전세를 사는 조건으로 아파트를 팔아 초기 자금을 조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아파트 값이 하강 곡선을 긋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 전이었지만 불과 1년 전까지 10억 원을 호가하던 분당아파트 시세가 땅 구입 계약을 저울질하던 2009년 봄에는 8억 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더 큰 문제는 거래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 사는 조건으로 집을 팔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아파트를 내놓은 지 한두 달이 지나도 적당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외관에 힘준 작품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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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눈종이에 그려 본 내 집

 

건축가들의 주택 작품집 몇 권과 인터넷에서 검색한 주택 이미지들에 대한 감상과 품평이 늦은 밤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주말에는 볼만한 주택 사례들을 직접 보기 위해 단독주택지를 순방하는 일이 아내와 나의 중요한 일거리가 되었다. 분당 구미동, 동백지구에서부터 일산, 평창동, 양지 전원주택지까지 여러 건축가들의 작품이 비교되고 품평 당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짓고 싶은 집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사항은 아주 쉽게 합의되었다.
붉은 벽돌 외벽, 박공지붕, 덩굴식물로 반쯤 덮인 낮은 담장.

한마디로 나와 아내는 “집은 집다워야 한다”는 데에 합의하고 있었다. 복잡한 형태로 매스를 분절하고 이를 서로 다른 재료 덩어리들로 조합한 소위 ‘작품주택’들을 볼 때마다 아내는

“아하! ‘아키텍춰’였지, 집이라고만 생각했어!”

를 연발하고는 했다. 외관에 힘준 버거워 보이는 작품은 싫다, 편안한 집이 좋다는 얘기였다. 작업실과 별채 서재, 그리고 대문 마당과 앞마당을 따로 만들자는 데에도 쉽게 동의했다. 쉽사리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검소, 절제를 내세우면서 은연중에 질박한 단순미를 이야기하고 있는 데에 비해 아내는 따뜻함, 부드러움, 아기자기함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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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바꾼 집 박인석,박철수 공저 | 동녘

대학에서 주거건축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문화센터를 비롯한 전문가 혹은 비전문가 대상의 크고 작은 강좌에서 아파트 관련 강의를 하는 박철수ㆍ박인석 교수. 두 사람은 소위 말하는 ‘아파트 전문가’다. 이들이 살던 아파트를 팔고 죽전에 단독주택을 짓고 이사했다. “나만의 작업실을 갖고 싶어서”, “두 딸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을 주고 싶어서”와 같은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박철수ㆍ박인석 두 교수의 단독주택 이주기와 이주 후 1년 동안 지내면서 겪은 생활을 기록한 도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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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인석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주택문제에 대한 인식’을 주택연구소에서의 연구와 명지대학교에서의 주거건축 전동 교수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사회를 읽는 주요한 키워드로 ‘아파트공화국’은 ‘단지공화국’으로 교정해야함을 지적하는 일, 공공 공간 환경 개선 없이 사유 단지개발 장려 전략으로 일관하는 정부 도시ㆍ주택정책을 비판하고 바른 정책의 실천을 제안하는 일이 최근의 주된 관심사이다. 주택 수요가 아파트단지에 편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경제성ㆍ편리성ㆍ쾌적성에서 아파트단지와 경쟁할만한 주거유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당 딸린 집에서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동기로 시작한 집짓기에 단지공화국 극복이라는 실천적 의미를 부여하여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이름을 책의 제목으로 붙였다.

아파트와 바꾼 집

<박인석>,<박철수> 공저14,400원(10% + 5%)

대학에서 주거건축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문화센터를 비롯한 전문가 혹은 비전문가 대상의 크고 작은 강좌에서 아파트 관련 강의를 하는 박철수ㆍ박인석 교수. 두 사람은 소위 말하는 ‘아파트 전문가’다. 이들이 살던 아파트를 팔고 죽전에 단독주택을 짓고 이사했다. “나만의 작업실을 갖고 싶어서”, “두 딸에게 언제든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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