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아이, 팟 헌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학교 선생님이라는 꿈은 아이를 웃게 하는 힘이다.
돈 벌러 갔다는 엄마는 소식이 없다. 종종 할아버지에게 돈을 보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엄마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팟 헌은 매일 허름한 벽에 걸려 있는 긴 생머리를 한 엄마 사진을 보며 소식을 전한다.
돈 벌러 갔다는 엄마는 소식이 없다. 종종 할아버지에게 돈을 보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엄마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팟 헌은 매일 허름한 벽에 걸려 있는 긴 생머리를 한 엄마 사진을 보며 소식을 전한다.
“엄마,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와서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집에 있었어요. 저는 집에 있다가, 비가 갤 때쯤 학교에 갔다 오는 친구들을 만났어요. 친구들이 이젠 글을 잘 읽을 수 있대요. 저도 글을 읽을 수 있는데, 아직은 느려요. 학교에 갈 수 있을 때까지 매일 책을 읽으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세요.”
여덟 살인 팟 헌은 단 한 달간이었지만 일곱 살 때 학교에 다녔었다. 그러나 발이 불편한 팟 헌의 통학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간 할아버지가 팟 헌의 통학을 도왔다. 그러나 1년 내내 팟 헌을 데리고 다닐 만한 집안 형편이 못 된다는 건 어린 팟 헌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형편도 못 되었다. 결국 글을 읽고 쓰는 법만 배우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할아버지는 팟 헌에게 엄마가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오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다. 할아버지의 약속은 벌써 1년이 지났고, 엄마는 언제 돌아올지 아직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도 팟 헌은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다. 뙤약볕이 한풀 꺾일 때쯤 마을에 들어서면 허름한 주택 울타리 옆에서 공기놀이하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예사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따로 없다. 하나둘 모여들고 자리를 잡으면 그곳이 놀이터가 된다. 공기놀이하는 아이들 틈에서 유독 큰소리를 내지르며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가 보인다.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아이에게서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팟 헌이다. 동네 여느 아이들처럼 행색이 남루하거나 땟국이 흐르지 않는다. 온종일 땅바닥에서 노는 다른 아이들처럼 바지와 옷소매에 털어내야 할 흙이 묻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는 밖에서 놀면서도 깔끔한 체할 줄 아는 감각을 어린 나이에 체득하고 있다. 부모 없이 지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너무 일찍 배워버렸다.
아이와 안면을 튼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팟 헌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마을을 방문했다가 혼자 놀고 있던 팟 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점차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둔 팟 헌, 아빠는 교통사고로 잃고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 친척들 집에 뿔뿔이 흩어진 사남매, 아빠는 에이즈로 돌아가시고 엄마도 에이즈에 걸려 몸이 많이 상해 있는 가정의 두 여자아이 등등, 마을에는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누가 딱히 더 어렵다고 할 수 없고, 누가 딱히 더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고만고만한 처지의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사랑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를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나이에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이 마을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밥을 달라고 생떼를 쓰기 시작하면 목구멍은 무엇인가 들어와 주기만을 고대하며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아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자라며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의 고달픔에 익숙해지고, 꿈을 꾼다는 것은 아주 먼 나라 이야기로 여긴다.
그러나 팟 헌은 다르다. 아이는 꿈을 꾼다. 학교에 갔으면 학급 반장을 도맡아 했을 법한 팟 헌의 꿈은 학교 선생님이다. 엄마가 돌아오기만 하면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비록 친구들보다 늦겠지만 열심히 공부해 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까막눈 소리를 듣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글자를 가르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꾼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학교 선생님이라는 꿈은 아이를 웃게 하는 힘이다. 팟 헌은 그 꿈을 야무지게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이야기하고, 학교에 갔다 온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학교에 가지 않고 같이 노는 마을 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관심을 두고 들어주는 모든 이에게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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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젊은 날 경험했던 해외봉사활동과 (사)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KOVA)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만났던 해외봉사단원들의 소중한 경험들을 재구성한 책으로, 인류애와 인도주의적 의미를 실천하며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경험한 내용들을 솔직담백하게 담아낸 이 시대 청춘들의 싱그러운 이야기다. 이야기꾼을 꿈꾸고 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