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다 보면 편애하려는 것은 아닌데도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데이지가 꼭 그런 아이다. 데이지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계기는 부활절을 앞둔 성금요일에 무료급식을 나눠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나무 아래서 200인분의 빵과 음료, 삶은 계란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슬리퍼 바닥이 다 헐어서 새까맣게 변한 발뒤꿈치가 눈에 띄던 한 아이가 다가왔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먹을 것을 받아 들고 나무 아래에 앉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서 먹지 않고, 윗옷 아래를 들어 그것들을 싸고 있었다. 아이가 하도 정성스레 윗옷에 음식을 둘둘 말아 싸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 이유를 물었다가, 순간 명치끝이 울컥, 눈 밑이 뜨거워지며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말았다. 시청 앞 공터에서 장사하는 엄마와 함께 있는 동생과 나눠 먹기 위해서란다.
시청 앞 공터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필리핀 사람이면서도 외국인보다 더 이방인 취급을 받는 산지족인 아에타족 사람들이다. 그들은 20여 년 전에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할 때, 삶의 근거지를 잃고 도시와 산을 오가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낮에는 잔디가 나 있는 공터 주위에 심어진 가로수에 플라스틱 비닐을 엮어 볕을 가리고 자리를 잡아, 산에서 캐온 고구마와 파파야, 바나나 등을 팔고, 밤에는 공터 주위에 짓다 만 흉물스런 건물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빵 한 조각과 음료수 한 병, 계란 한 개를 윗옷에 싸들고 동생에게 들고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그 광경이 너무 쉽게 그려졌다.
나는 지금까지 빵 한 조각, 음료수 한 병, 계란 한 개를 배곯는 누군가와 나눠 먹기 위해 정성껏 포장해본 기억이 없다. 내 자신이 사랑을 나눠주러 왔다고 하지만, 오히려 사랑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있음을 데이지를 통해 확인한 셈이었다.
무료급식을 나눠줄 때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데이지는 그 후 천사의 집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아이였다. 부활절이 지난 5월 첫날, 비가 오는 덕택에 천사의 집에 들른 아이들은 땟국이 줄줄 흐르는 옷을 질퍽거리며 하하 호호 깔깔대며 놀기에 바쁠 때였다. 늘 그렇듯이 아이들에게 나눠줄 간식 준비를 마치고, 수건 하나를 꺼내들고 작은 의자를 화장실에 들여놓았다. 그러고는 화장실에서 차례로 손발을 씻게 하거나 씻어주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스스로 씻고 나면 물기를 닦을 때만 도와주고, 코흘리개들은 직접 손발을 씻기고 머리도 빗질해주면 금세 얌전한 천사가 되곤 한다. 물론 손발을 씻은 녀석들은 간식을 먹고 나서 실내 활동이 지루해지면 금방 맨발로 밖으로 뛰어나가 놀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손발을 씻기며 아이들과 살을 맞대다 보면,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날도 아이들 손발을 씻겨주고 간식을 나눠주고 나자 비가 긋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때를 만난 듯 맨발로 하나둘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데이지는 영어로 된 얇은 동화책을 한 권 들고 와서 같이 읽자고 청하더니, 옆에 자리를 잡고 더듬더듬 먼저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사의 집에서 로마자 알파벳을 아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노래로 알파벳을 아는 아이들은 많아도, 실제 읽고 써보라고 하면 배시시 웃기만 할 뿐, 선뜻 손을 놀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천사의 집에서 위생교육과 만들기 등의 예술교육을 담당하는 터라, 아이들 얼굴은 알지만, 인근 대학교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영어반에서 어떤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는 잘 모른다. 데이지가 천사의 집에서 알파벳을 배우고 나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동화책을 들고 선생님에게 같이 읽자고 청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데이지에게 후원자가 생겨서 천사의 집에서는 드물게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가 똑똑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서 천사의 집에서 추천했다는 것이다.
데이지를 보며 엄마 무릎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는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데이지에게는 굳이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아기 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열 살도 안 된 데이지가, 외국인 선생에게 다가와 앙증맞게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비록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하지만, 거리에 내몰린 또래 아에타족 아이들과 진배없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사치일 수밖에 없어, 나를 더욱 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