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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딸 나카가와 히데코 저 | 마음산책 |
『셰프의 딸』은 여러 나라를 삶의 무대로 삼은 한 코즈모폴리탄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택했던 사람. 그는 일상에 파묻혀 꿈을 접어둔 이들에게 ‘안주’와 ‘정체’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의 기쁨,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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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은 일본의 외할아버지가 만들어주는 디저트를 무척 좋아한다.
“엄마, 내 생일에 딸기 시럽 뿌린 요구르트 케이크 만들어달라고 외할아버지한테 전화하자.”이런 부탁은 귀여운 일본어로 말하는 작은아들. 하네다 공항에서 외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면 아무리 밤이 깊었고 오느라 지쳤어도 아이들은 먼저 냉장고 문에 손을 뻗는다.
“손부터 깨끗이 씻어야지.”외할머니가 말할 틈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연다. ‘나 여기 있어’ 하듯 냉장고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인 디저트. 외할머니가 슈퍼에서 사 온 요구르트, 색색의 젤리, 플라스틱 컵을 뒤집어 바닥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누르면 컵 아래에 있던 캐러멜 부분이 위로 가서 예쁘게 흘러내리는 캐러멜 푸딩, 우유 푸딩 등 마치 슈퍼의 디저트 코너 같다. 게다가 안쪽에는 랩에 싸인 외할아버지의 수제 푸딩과 진짜 자몽을 잘라 만든 새콤달콤한 자몽젤리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아이들은 곧바로 자기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꺼내어 하나씩 먹는다.
“애들이 다 먹기 전에 나도 하나 먹어야지.”“너도 이제 엄마인데 아직 애 같은 소릴 하니.”어머니께 엄마로서의 자각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나도 여기선 딸인데 뭐’ 하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몽젤리를 꺼낸다. 아이들은 일본 외할아버지 댁에 있는 동안 언제든지 자기가 좋을 대로 냉장고에서 디저트를 꺼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입이 짧은 둘째는 식사를 거르게 된다. 서울 집에 있을 때는 “밥부터 먹지 않으면 푸딩은 안 줄 거야. 안 돼, 안 돼!” 하고 아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지만, 일본 친정에서는 아무래도 좋다.
서울 집에서도 자주 만드는, 캐러멜이 듬뿍 들어간 푸딩. 스페인 요리에서도 푸딩은 ‘플란(Flan)’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디저트고,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디저트다.
깊은 소스 팬에 설탕과 물을 넣고 약불에서 보글보글 10분 정도 끓인다. 냄비 속의 설탕과 물이 살짝 탄 듯한 달콤한 냄새가 가볍게 풍기면서 갈색의 캐러멜로 변한다. 불을 끄면 그때부터 긴장되는 순간이다. 물을 살짝 넣으면 얼굴이나 손에 튈까 봐 걱정되는, 하지만 상쾌하게 들리는 치이이익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캐러멜이 완성된다. 캐러멜을 직사각형 내열유리 용기에 옮기고, 캐러멜을 끓이는 동안 만들어둔 바닐라에센스 향의 푸딩 달걀 액을 그 위에 붓는다. 예열해둔 오븐에서 35분간 가열하면 아이들이 좋아할 푸딩이 완성된다. 그런데 수강생들의 반응은 요구르트 케이크만 못해서 조금 슬펐다.
우리 아들들의 평가는 더 냉정하다.
“역시 엄마 푸딩보다 외할아버지 푸딩이 더 맛있어.”아부를 모르는 아이들이다. 아버지의 레시피를 보면서 똑같이 만들었건만, 아버지가 만든 푸딩의 깊고 진한 맛은 나지 않는다. 재료라고 해봤자 달걀, 우유, 설탕뿐인데, 역시 아버지처럼 요리의 정도를 걸어온 프로 중의 프로에게는 이길 수 없다.
요리 교실을 시작한 뒤 최근 몇 년간 일본 친정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맛’을 전수받는다. 머무르는 짧은 기간 동안 필사적으로 아버지와의 요리 수행에 힘쓴다.
“그렇게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배워서야 언제 몸에 배겠니.”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으면서, 너무 늦었다고 후회하면서 아버지께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우자고 다짐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리스토랑테 에노테카’의 오너 셰프 애니 페올데(Annie Feolde)는 1945년생이다. 얼마 전 우연히 일본TV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는데, 지금도 피렌체 본점에서 수많은 셰프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미슐랭 별 세 개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셰프다. 집안이 호텔업에 종사했고, 할머니도 요리사로 요리 DNA를 이어받았다는 애니. 요리는 독학으로 배웠으며 어릴 적 꿈은 스튜어디스였다고 한다. 서적을 통한 철저한 연구를 토대로 하는 그녀의 열정과 상상력이, 오랜 파트너와 함께 시작한 작은 레스토랑을 세계적인 유명 레스토랑으로 키웠다. 많은 스태프를 거느린 애니는 아마도 하루 중 몇 시간만 주방에서 보내겠지만, 식재료는 전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산다.
애니 페올데는 예순일곱. 1934년생인 아버지는 올해로 일흔여덟. 아버지의 스승인 고故 무라카미 노부오 셰프는 백 살 가까이 될 때까지 거의 매일 임페리얼 호텔의 부엌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사람의 인생이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겠지만, 인생을 백 살로 놓고 보자면 나도 지금부터 유럽 요리 학교에서 공부를 새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예순이 되어 환갑을 맞이하면 말쑥한 레스토랑을 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금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꿈을 실현하자. 요리하는 행복, 누군가 내 요리를 먹는 행복을 앞으로도 계속 느낄 수 있다면 꿈은 실현될 것이다. 요리 교실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배우고, 만들고, 먹는 일.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맛있는 음식과 만난 행복을 맛보여주는 기쁨. 남편과 아이들이 나의 요리를 정신없이 먹을 때의 즐거움. 다섯 시간을 들여 묵묵히 만든 요리가 5분 만에 없어질 때. 이런 일들이 지금의 내게는 요리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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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나는 일본계 한국인도, 재일교포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21세기 한일관계의 신종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국제결혼 정도로 국적까지 바꿀 필요 있어?” 하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지만, 내심 코즈모폴리탄으로 살아가기를 바랐던 내게 국적은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다만 어릴 적부터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뿌리 없는 풀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한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이런 나에게 아버지가 프랑스 요리 셰프라는 사실은 든든한 정신적 기둥이었다. 어디를 가든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의 요리가 있었다. 아버지의 레시피와 함께. 그 덕분에 나는 뿌리 없는 풀이 아닌, 보잘것없긴 하지만 코즈모폴리탄으로서 여러 나라를 오갈 수 있었다.
연희동 요리 교실에서는 학생들과 그날의 수업 메뉴인 요리를 같이 만들고 먹는다. 함께 만들면 레시피에 적힌 것보다 훨씬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만든 후에는 다 같이 요리를 먹으며 미각으로 느껴지는 맛을 체험하고 감상을 공유한다. 첫 숟가락을 떠서 입속에 넣는다. 음식을 씹어서 목구멍과 식도를 거쳐 위로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맛본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배웅할 때면 행복을 느낀다.
아버지가 만든 요리 한 접시에 기뻐하던 나는 그 기쁨을 내 가족들에게도 맛보여주기 위해 요리를 만든다. 한 접시 한 접시를 요리 교실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또 그 행복이 다음 사람들에게로 전해진다. 요리를 통해 사슬처럼 연결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 책은 탄생했다. 요리하고,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고, 웃고, 때로는 눈물도 흘려가며 쓴 이 책은 한국 생활에서 얻은 귀중한 만남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