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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동안 간직한 레시피

독일 정통케이크 ‘아펠쿠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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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라가 여러 가지 케이크 레시피를 적어주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끔 만드는 케이크는 ‘아펠쿠헨’이다. 사과를 케이크 스펀지에 통째로 묻힌 듯 울퉁불퉁하고 버터가 듬뿍 들어간 케이크다. 물론 동독에는 일본의 유명한 품종들처럼 모양이 훌륭한 사과는 없었다. 벌레가 갉아먹은 구멍투성이에 알 크기도 작고 신맛만 나는 사과밖에 없었다.

 
셰프의 딸
나카가와 히데코 저 | 마음산책
『셰프의 딸』은 여러 나라를 삶의 무대로 삼은 한 코즈모폴리탄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택했던 사람. 그는 일상에 파묻혀 꿈을 접어둔 이들에게 ‘안주’와 ‘정체’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의 기쁨,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독일이 분단 국가였던 1988년 당시, 일본에서 다녔던 대학의 교환 유학제도에 동독 대학 몇 개가 후보에 있었다. 물론 서독 대학도 있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발트 해에 접한 동독의 국립 로스토크대학교 독일어과에 지원했다. 독일 정부가 실행하는 어학 테스트와 대학에서 치른 유학 시험, 평소 성적이 합산되어 유학 갈 대학이 정해진다. 당연히 동독 대학을 지원한 학생의 경쟁률은 낮아서 동독 비자를 수월하게 손에 넣었다.

어릴 적 서독의 수도 본에 살았을 때 휴일이면 곧잘 가족들과 서독 사람들만 태운 관광버스로 동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동독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체코나 헝가리로 갈 수 없었는데, 어린 마음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잿빛 공간이 미지의 세계로 보였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나는 주변 어른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일본에서 온 초등학교 1학년짜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었다. 그곳이 동독이었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중학생 무렵부터 이전에 살던 곳 반대편에, 이데올로기는 다르지만 같은 독일인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희망하던 대로 로스토크대학교로 유학이 결정되었다. 1988년 9월, 일본에서 인솔자로 온 교수님과 작별하고 동기들 몇 명과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직행으로 가는 동독 로스토크행 기차를 탔다. 우리를 태운 기차는 얼마간 서독의 질서정연한 거리를 달리더니, 이윽고 동서독 국경 역에서 일단 정지했다. 여권 검사 때문이었다. 기차가 다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자, 창문 밖이 점점 흐려졌다.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는 창밖의 풍경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거리가 거무스레하게 때가 탄 것은 석탄 매연 때문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동독에서는 석탄이 난방 등 생활에 필요한 연료로 배급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당시 나는 현대사 속 동서 대립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동독 사람들과 만나는 것의 어려움 등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반대편의 독일’이 보고 싶어서 유학할 곳을 정했고, 나의 눈으로 본 동독이 나중에 취직 활동이나 대학원 시험에 도움이 되리라고만 생각했다. 함부르크 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독으로 한 걸음 들어서서 지금껏 본 적 없는 풍경을 마주하자, 앞으로 1년간의 유학 생활이 몹시 걱정되었다. 감정적으로 동독을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아, 이런 곳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식생활이 무엇보다 우선인 나에게는, 동독의 식료품 사정이 선배들이나 교수님들께 들었던 것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독일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먹을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식료품 배급제였던 동독에서는 매일 손에 넣을 수 있는 식재료가 한정되었던 것이다. 양파, 양배추, 감자, 고기, 햄과 소시지, 달걀, 버터, 우유, 사과, 빵, 동독 맥주밖에 없었다. 비타민 부족이 염려되는 식재료 배급이었다. 그때까지 가리는 음식이 조금은 있었지만 대부분 잘 먹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영양 밸런스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다.

로스토크대학교에서는 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일본의 대학 기숙사도 마찬가지였지만 학생 기숙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학생들이 쉴 수 있는 안뜰이 있는, 기껏해야 3층 정도의 빌라같이 생긴 건물이다. 하지만 공산 국가의 건물들이 전부 그렇듯 로스토크대학교 기숙사는 무미건조한 20층짜리 건물이었다.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독신이건 아이를 데려온 주부건, 우리 같은 외국 유학생이건 간에 무질서하게 섞여 생활하는 혼란스러운 세계. 일본에서는 남녀 건물이 따로 있고, 밤 10시면 소등해야 하는 등 규율이 엄격한 기숙사에서 생활했었기에 크게 당황했다. 각 층에는 실험실같이 생긴 공동 부엌이 있었지만, 기숙사에 들어간 후 얼마간은 방에서 나오기가 무서워서 공동 부엌까지 가지도 못했다. 동갑이었던 독일인 룸메이트 미하엘라가 머나먼 일본에서 독일 변방까지 온 내 심정을 헤아렸는지 아침과 저녁을 준비해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하엘라의 신세만 질 수는 없었다. 미하엘라 뒤를 따라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공동 부엌의 사용법과 동독의 식량 사정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윽고 혼자서 배급소에서 식재료를 구하여 기숙사 부엌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조리 기구도 요리할 때마다 내 방에서 가져갔다. 넓은 부엌의 한쪽에 구식 냉장고가 놓여 있었고, 자신의 식재료에 이름을 적어 보관했다. 단, 구하기 힘든 토마토나 오이 같은 재료가 손에 들어오면 전부 내 방으로 가져와 보관했다. 공동 냉장고에 두면 도둑맞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하엘라는 동독의 열악한 식료품 사정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어느 배급소에 어떤 물건이 나왔는지 등의 정보도 가르쳐주었다. 밀가루나 달걀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서, 미하엘라는 가끔 나에게 바닐라 슈거 향이 나는 소박한 독일 전통 케이크를 구워주었다. 그 옛날 서독에서 먹었던, 생크림이 잔뜩 들어간 케이크에 비하면 정말로 ‘시골스러운’ 케이크였다. 달걀 럼주 케이크, 신선한 플럼 케이크, 드라이프루트 케이크, 호두케이크…….


미하엘라가 여러 가지 케이크 레시피를 적어주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끔 만드는 케이크는 ‘아펠쿠헨’이다. 사과를 케이크 스펀지에 통째로 묻힌 듯 울퉁불퉁하고 버터가 듬뿍 들어간 케이크다. 물론 동독에는 일본의 유명한 품종들처럼 모양이 훌륭한 사과는 없었다. 벌레가 갉아먹은 구멍투성이에 알 크기도 작고 신맛만 나는 사과밖에 없었다. 로스토크는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고, 10월이 되면 어두침침한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추운 날이 이어지며 해가 점점 짧아지는 북해에 면한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즐거움은 오후 3시경,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미하엘라와 함께 아펠쿠헨을 구워 씁쓸한 홍차와 함께 먹는 일이었다. 행복한 한때였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은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에는 갑갑한 동독에서 벗어나 서독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머물렀다. 나도 서독의 뮌헨이나 파사우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지내거나, 본에 가서 어릴 적 친구들이나 신세 진 사람들을 방문했다. 우리 자본주의 국가의 유학생들은 언젠간 동독을 떠나 자유로운 모국으로 돌아갈 터였지만, 그래도 당장 긴 휴일이 다가오면 서독으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들떠 떠들썩해졌다.

여행하기 위해 서둘러 짐을 꾸리는 내 모습을 보고 미하엘라는 “이 나라에 불만은 있지만 모국이니까. 가족들도 있고. 하지만 언젠가 동서독이 통일되면, 반드시 히데코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거야. 영어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라고 쓸쓸한 듯 중얼거렸다.
동독에서 생활해보고, 동독 대학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난 막연히 생각했다.
‘아, 이 나라가 없어지는 것은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되면 서독과 통일되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일본의 대학으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은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공부가 부족했던 데다 사회 경험도 없어서 그때 느낀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동갑이었지만 언니 같았던 미하엘라와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5년 정도 항공 우편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는 일본에서 쭉 같은 곳에 살았으니 도중에 연락이 끊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내가 이 나라 저나라에서 뿌리 없는 풀 같은 생활을 하는 사이에 미하엘라는 물론 동독의 친구들과 연락이 모두 끊겼다.

미하엘라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만약 연락이 닿는다면 그녀에게 배운 아펠쿠헨을 만들어 사진 찍어 보내고 싶다.
“20년이나 지났지만 변함없이 만들고 있어.”
이런 메시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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