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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박성덕 저 | 지식채널 |
무엇보다 갈등이 커지면 회피하려는 남편과 반대로 공격하고 따지는 아내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부부의 잘못된 의사소통방식이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성격 차이나 경제적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배우자와 관계를 맺는 잘못된 방식과 표현 방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 것이다. EBS 화제의 프로그램 [생방송 60분 부모], [남편이 달라졌어요]의 책임 전문가로도 출연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결혼을 ‘성장’의 과정으로 인식할 때, 그리고 불화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혼수품과도 같은 것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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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구 씨네 부부 싸움의 발단은 늘 컴퓨터였다. 남편 형구 씨의 퇴근 후 유일한 즐거움은 컴퓨터 게임이다. 형구 씨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서재 방에 들어가 컴퓨터와 하나가 된다. 처음에 연희 씨는 회사에서 고생한 남편이 잠깐 게임을 하는 것을 이해하고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남편이 게임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연희 씨도 불만이 쌓여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설거지며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전혀 놀아주지 않고 게임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눈에 거슬렸다. 낮 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라도 꺼내려고 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박은 채로
“나 좀 쉬게 내버려 둬!”라고 소리치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이제 형구 씨의 말을 들어보자.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맘 편히 쉬고 싶은데 아내가 불편한 눈치를 보낸다. 게임을 하면서도 편치 않다. 제발 좀 들어달라는 듯 요란하게 그릇을 부딪히며 설거지를 하는 아내의 태도도 불만이다. 무슨 말을 해도 가시 돋친 아내의 말이 귀에 거슬린다. 아내와 마주하는 시간이 점점 부담스럽다. 그럴수록 점차 게임에 몰두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아내가 깨어 있을 때는 게임을 하는 게 영 불편해서 일부러 아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벽까지 게임 삼매경에 빠져든다.
다음은 연희 씨의 불만이다.
“남편이 게임하는 걸 처음부터 반대한 건 아니에요.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게임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만 한 집에 살 뿐이지 남편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힘든 일은 쌓여 가는데 남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연애 시절에는 언제든 달려와서 내 얘기를 들어주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남편에겐 나보다 게임이 훨씬 중요해요. 아이들보다도 게임이 더 중요해요. 처음에는 게임을 하는 자체가 미웠는데, 지금은 내가 남편에게 전혀 무의미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서 괴로워요. 게임을 하러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지금 우리 관계는 서로 알고 지내는 이웃보다 더 어색하고 서먹해져버렸어요.”형구 씨의 속마음을 알아보자.
“처음에는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아내가 고마웠어요. 딱히 다른 취미 활동을 하거나 다른 데 돈을 쓰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게 게임인데, 이제 이것마저 못하게 하니 화가 나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니 아내에게 좋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그리고 요즘은 일부러 아내가 잠든 시간에 하는데도 늘 불만이에요. 다음 날 아무리 피곤해도 회사는 잘 다니고 있잖아요. 아내와 신경전을 벌이고 나면, 회사에 가서도 힘들어요.”형구 씨 부부의 갈등은 ‘애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부부는 정서적으로 위로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거절을 당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갈등이 쌓이기도 한다. 부부 관계에서 문제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서적 유대감이다. 이는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해당된다.
우선 연희 씨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남편에게 위로 받지 못하고 있어. 남편이 나에게 달려와서 내 얘기를 들어주길 원해. 하지만 남편은 나를 전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 남편에게 버림받았어. 난 게임보다도 못한 존재야. 관계가 멀어질까 봐 두려워.’
연희 씨가 게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연희 씨도 남편의 게임을 허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형구 씨와 정서적인 유대감이 있었다. 연희 씨가 남편의 게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유는 점차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형구 씨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
‘아내는 내가 힘든 걸 몰라줘. 게임하는 게 보기 싫다고 해서 일부러 잠잘 때 하는데도 늘 불만이야. 난 가정을 위해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아내는 매일 불만만 토로하고 있어.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두려워. 차라리 게임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위로가 돼. 아내가 내 회사생활까지 힘들게 하고 있어.’ 형구 씨는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화가 나 있다. 위로를 받지 못하고 야단만 치는 아내가 야속하고, 자신의 취미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럽다.
형구 씨 부부는 처음에 게임을 문제 삼아 상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남편의 위로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 아내의 인정과 휴식이었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갈등이 생긴 것이다. 부부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대부분 친밀감의 부재, 즉 애착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애착 관계에서는 상황이나 문제 자체보다도 정서적 유대감의 단절이 문제가 된다. 형구 씨 부부의 사례처럼 부부 관계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갈등을 해소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킨다.
부부가 따지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애초에 결판이 날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옳고,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가 옳다. 내가 만났던 모든 부부들의 사연들도 사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다.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 공방전은 소모전으로 흐르고, 배우자에게 서운한 감정만 커지게 된다.
남편도, 그리고 아내도 옳다. 부부 불화는 어느 한쪽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의 부재, 그리고 정서적 단절에서 불화는 시작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다. 소통을 하면 고통이 없지만, 교류가 없으면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는 부부 관계에도 당연히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