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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사랑이라 말하고, 남자는 섹스라 말한다 배정원 저 | 한언 |
'섹스'에 대해 아직도 부끄러워하고 쉬쉬하는 사람들에게, 또 아직도 테크닉이나 감각에만 집착할 뿐 정작 성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나 인식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섹스'에 대해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성심리와 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서로를 더없이 신뢰하고 지지하는 진정한 인간 관계를 향한 사랑의 시작과 유지방법임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비뚤어져 있는 성문화를 바로 알고, 섹스와 사랑의 의미 또한 제대로 알도록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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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고 유쾌한 vs 부끄럽고 민망한 “그녀를 보면 성욕이 생깁니다. 만지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나의 성욕이 마음 편치가 않습니다. 왠지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요. 음탕한 것 같기도 하고.”“영화를 보다가 진한 애정신이 나오면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흥분이라도 되는 것 같으면 남들이 알아차릴까 봐 걱정도 되고.”요즘은 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정보 탓에 많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성욕에 대해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다. 어떤 여대생은 심지어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느끼는 성욕이 음탕하다며, 그를 만나 키스나 애무를 하고 돌아온 밤이면 회개기도를 하곤 한다는 상담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또 최근에 만난 한 남성도 자신의 성욕을 인정하긴 하지만, 먼저 손을 내밀거나, 키스를 하거나 섹스를 리드하기가 정말 힘든 일이라고 토로해 왔다.
왜 이렇게 자신이 가진 성욕이 부끄러울까?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성을 ‘숨겨야 할 것’, ‘부끄러운 것’, ‘음탕한 것’이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사람의 성욕은 사람이 생물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번성하길 바랬던’ 조물주의 목표대로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를 대대로 전하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그 발화점이라 할 수 있는 성욕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싶고, 애무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우리의 심리적인 욕구이다. 번식이 인간에게 주어진 본능이자 섭리라면 그 발화점인 성욕 또한 신께서 우리에게 심어준 아름다운 본능일 것이다.
또 그 성욕이란 여성이나 남성이나 별 차이가 없다. 성별의 차이보다는 오히려 개인차이다. 우리가 생물인 바에야 성욕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쩌면 그것이 사랑을 더욱 깊게 하는 과정으로 이끈다. 이 점에서 성욕은 적절하게 표현하고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다면 자동차에 기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 꼭 필요한 발화점이기도 한 것이다. 자신의 성욕에 대해 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진다고 해서 신의 요구에 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의 선물인 사랑과 성을 우리들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누려야 하지 않을까?
생물학적 수컷으로서의 남자흔히들 ‘남자는 섹스하고 나서 사랑을 하고, 여자는 사랑을 하고 나서 섹스를 한다’고, 또 ‘남자는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도 섹스할 수 있지만, 여자는 사랑하지 않으면 섹스하기 어렵다’고도 한다. 이 말들은 일반적으로 사실인 것 같다. 성강의와 상담을 오래하다 보니, 남자와 여자의 성차이가 결국은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생활양식이나 사고의 차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남녀의 성기와, 성반응의 다름 등, 생물학적인 차이가 성심리와 성행동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여자가 섹스를 결정하는 것과 남자가 섹스를 결정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 그것은 임신이라는 생식적인 부담과 함께 사회적, 윤리적으로 여자에게 더 엄격한 전통적인 성윤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수컷으로서의 남자가 이 땅에 와서 완수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은 씨를 퍼뜨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365일 동안 365명의 여자와 섹스 한다면 9개월 반 이후엔 적어도 365명의 자기 유전자를 받은 후손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한 남자가 한 여자와 365일 섹스한다면 잘 얻어야 1명의 후손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요즘은 아이들을 사랑이 아니라 돈으로 키운다고 하지만 사회적인 책임이나 양육의 부담 없이 낳기만 해도 원숭이처럼 자란다면 어떤 남자라도 당연히 계속 새로운 여자와 섹스를 할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의 이러한 성행동 특징을 표현하는 말로 ‘수탉효과’ 혹은 ‘쿨리지미국 30대 대통령효과’라고 한다. 닭이나 양은 발정기에 아주 왕성하게 교미를 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발정기에 교미를 50회 이상 한다는 닭이나 양들조차 한 두번 교미한 암컷과는 다시 교미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교미하려 해도 잘 안 된다. 심지어 이미 교미했던 암컷의 털색깔을 바꾸고 향수를 뿌려 냄새를 바꾸어 들여보내도 교미하지 않는다. 수컷들에게는 새 파트너와의 새로운 감각이 섹스에서 무척 중요하다.
그런가 하면 암컷의 사명은 좋은 씨를 받아 잘 양육하는 것이다(이것은 순전히 생물학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암컷들에게는 유전형질이 좋은 씨를 받아 임신해서 새끼를 낳고 독립시킬 때까지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고 부양해 줄 수컷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그 수컷은 힘도 세야 하고, 먹이도 잘 가져와야 하며,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충실해야 한다. 또 알을 낳는다거나, 다른 방법으로 교미를 하고 수정하고 임신하는 다른 생물과 달리 몸속에서 수정을 하는 포유류에게는 ‘관계 맺기’ 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여자는 파트너를 고를 때 좋은 유전형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충실하게 사랑할 것인가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이렇게 상대를 고르는 기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어 내려온 일이다. 이러한 차이는 남자가 섹스에서 왜 ‘새로운 감각과 파트너’에 관심을 가지는지, 여자가 섹스에서 왜 ‘그가 나를 사랑하는가,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그렇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지금은 남자들이 그런 생물학적인 사명을 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인구가 넘치고, 또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물질적, 심리적인 부담이 커졌으며, 남자나 여자도 사회적인 역할이 다양해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남자가 수컷으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바람을 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합리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남자와 여자가 다른 이유를 근본적으로 이해한다면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