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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얄미운 남편에게 안부를 묻다

어찌하여 내 삶이 버겁던 시절만 기억하시는지, 나는 평생 어머니 가슴에 난 대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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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온 길을 되돌아보니 구절양장이 따로 없다. 삶의 구비마다 눈물 자국이다.

 
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는 걸 보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각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역시 남다른 '엄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듯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새벽녘에 어머니 울음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졸린 눈을 비비고 침대로 가서 어머니를 들여다봤다.

“엄마, 왜 울어요?”
“나 어떡해!”
“뭐가요?”
“나 올해도 안 죽나 봐. 느들 힘들어서 어쩌면 좋아. 이게 뭐야!”

나는 어머니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엄마! 우리들 모두 엄마가 계셔서 너무 좋아요!”

어머니가 도리질을 치셨다.
“엄마, 우리 모두 엄마 사랑해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자꾸 우셔서 마당에서 농익은 감을 따다가 숟가락으로 떠 먹여드렸다.
감을 드시느라고 울음을 멈추신 어머니가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갖다 드려라!”
“엄마, 아버진 돌아가셨잖아요.”

잠시 가만히 계시더니 역정을 내시며 대답하셨다.
“돌아가시긴 뭐가 돌아가셔! 그 인간이 혼자서 얄밉게 빨리 죽었지! 그렇게 빨리 가는 인간이 어딨어?”

원망하는 듯 말씀하셨지만 그 말에서 아?지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일기장에 이렇게 쓰셨다.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지내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감을 한 개 다 드시더니 잠시 후, 약기운 때문인지 다시 잠이 드셨다. 신발을 찾아 신으려고 신발장을 여니 어머니 단화가 보얗게 먼지를 쓰고 있다. 먼지를 닦아 제자리에 넣다가 다시는 신으실 일 없다는 생각에 목이 멨다. 문을 열고 뜰로 나서니 간밤에 내린 비에 마당 가득 감나무 잎이 떨어졌다. 빗자루로 쓸려다가 그만뒀다. 아까워서...

지난해 봄, 저 감나무 아래서 육남매가 모여 간장을 달이고 고기를 구워 먹었었다. 여동생 농담에 모두 웃고 어머니도 웃으셨다. 웃음소리는 쟁쟁하게 들리는 듯한데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집 없는 길 고양이가 발 앞에서 얼씬거린다.

깜짝깜짝 놀랄 만큼 세월은 쏜살같이 내빼는데, 변화나 죽음 앞에 순응하지 못하고 왜 이리 당황하는지. 주름진 눈가에 어린 물기를 검버섯 낀 손등으로 닦는다. 아버지가 만드셨던 저 투박한 나무 의자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았을 듯싶다.

이틀 동안의 어머니 간병을 마치고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엄마, 금요일 날 또 올게요!”
“그래, 내 주머니에서 돈 꺼내서 석교 아범 뭣 좀 사다줘라.”
정신이 맑았다 흐렸다 하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기억은 지금도 가끔씩 내가 어렵던 시절로 돌아가신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집은 구했냐?”
“몇 끼나 굶고 다닌 거야?”
어찌하여 내 삶이 버겁던 시절만 기억하시는지, 나는 평생 어머니 가슴에 난 대못이었다. 지나 온 길을 되돌아보니 구절양장이 따로 없다. 삶의 구비마다 눈물 자국이다. 그런 딸 지켜보며 흘리신 눈물이 얼마일지.
이불깃을 여며 드리고 친정집을 나서려니 가슴이 시리다. 지친 몸보다 가슴이 먼저 아프다.

- 어머니와 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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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10,800원(10% + 5%)

"엄마, 나 또 올게"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이름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내 어머니, 내 할머니 그리고 내 외할머니의 이야기. '엄마'라는 말이 가져오는 가슴뭉클함은 누가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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