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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최고의 악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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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악단은 단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양분하며, 그 전통으로나 유명세로나 오케스트라의 상징과 같은 악단이기도 하다.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박종호 글,사진 | 김영사
예술의 절정을 꽃 피운 오스트리아 빈! 문화여행자 박종호가 전하는 위대한 예술과 인생의 아름다움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건축가 오토 바그너,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빈에서는 그들이 모두 살을 스치고, 말을 섞으며, 살고 사랑하고 창작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치열한 정신과 열정으로 유럽 예술의 절정을 이루어낸 도시 빈! 그 아름다운 역사의 현장에서 문화여행자이며 정신과전문의인 박종호 가 위대한 예술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빈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악단은 단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양분하며, 그 전통으로나 유명세로나 오케스트라의 상징과 같은 악단이기도 하다. 흔히들 줄여서 ‘빈 필’이라고 부른다.

빈 필은 오토 니콜라이라는 지휘자가 창설한 악단이다. 그는 1842년에 음악회를 기획해 임시로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는데, 당시 빈 궁정 오페라극장지금의 슈타츠오퍼의 단원들을 중심으로 새 악단을 만들었다. 이것을 빈 필의 효시로 보고 있으니, 2012년이면 빈 필의 나이는 170세가 된다.

이 악단의 창설에는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첫째, 당시까지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은 왕족이나 귀족 또는 교회에서 만든 악단들이며, 궁정이나 궁정극장에서 귀족들을 위해 연주했다. 이에 반해 이 악단은 최초의 본격적인 대규모 민간 악단이었다. 둘째, 그러므로 시민 계급을 위한 음악 감상, 즉 순수 음악 연주가 주목적이었고, 궁정 악단처럼 궁정의 ‘행사’를 위한 악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악단의 기량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셋째, 악단의 운영을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필하모니 협회’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 즉 ‘악우樂友 협회’로 일본인들이 번역해왔다.가 관장해왔다는 점이다. 이상 세 가지 점에서 빈 필은 최초의 근대적이고 민주적이고 예술적인 시스템을 갖춘 오케스트라였다.


빈 필을 맡았던 상임지휘자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들로는 한스 리히터, 구스타프 말러, 펠릭스 폰 바인가르트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클레멘스 크라우스 등을 들 수 있다. 상임지휘자는 아니지만 빈 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지휘한 사람들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브루노 발터,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이 있다. 이 거장들 중 많은 사람이 비록 빈 필의 상임은 아니었지만 빈 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빈 슈타츠오퍼의 지휘자로서, 이 악단을 자신의 악단처럼 아끼면서 지도, 지휘하여 빈 필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1954년 이후로 빈 필은 공식적으로 더 이상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고 필하모닉 협회가 선정한 객원 지휘자들로만 콘서트를 꾸려오고 있다. 빈 필의 연주는 대단히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름을 제외한 시즌 내내 열리는 정기연주회로서 한 달에 한 번, 연간 약 10회 정도 거행된다. 이 정기연주회는 같은 레퍼토리를 사흘간 연속 연주하는데, 당연히 3회 모두 거의 매진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빈 필하모닉 회원들이 티켓을 선점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좋은 티켓을 구하기는 만만치 않다.

지금 이 정기연주회에 초빙되는 지휘자들은 비록 객원 지휘자이지만 사실상 빈 필의 공동 지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니콜라스 아르농쿠르,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조르주 프레트르, 프란츠 벨저 뫼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발레리 게르기에프, 크리스티안 틸레만, 마리스 얀손스 등 10여 명으로서, 이들의 명단 자체가 세계 지휘계의 지형도를 알려주는 셈이다. 그 외에 빈 필은 매년 여름 잘츠부르크에 한 달 가까이 체류하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호스트 오케스트라 역할을 한다.


빈 필의 중요한 특징은 단원들이다. ‘빈 필 단원’이라는 말은 대단히 특별한 의미로 사용된다. 빈 필 단원들은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아니 있었다. 첫째로 모두 빈 사람이고, 둘째로 모두 남자이며, 셋째로 모두 빈 슈타츠오퍼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단원이라는 점이다. 이 중요한 3대 특징 중 앞의 두 가지는 최근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빈 필의 보수성은 여전하다.

빈 필은 처음에는 ‘빈의 남자’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악단이었다. 그것이 오스트리아의 남자, 그리고 오스트리아나 독일 사람(남자든 여자든)으로 완화되기는 했다. 또한 그들은 여전히 빈 사람 아니면 적어도 오스트리아나 독일 출신을 쓰려고 한다. 그래야만 빈 음악적 전통이 몸에 배어 있어서 전통적인 연주법과 예술적 감각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적지 않은 여성들과 외국 출신들이 들어와 있다.

빈 필에 오디션을 보기 위한 전제조건은 바로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지금도 엄격하다. 즉, 빈 필의 단원이 되려면 먼저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 시험을 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정단원으로 3년 이상 연주 경력을 쌓은 사람에게만 빈 필의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빈 필 오디션에 합격할 만한 경력과 실력이 된다 하더라도 빈 필의 단원이 되기는 쉽지 않다.

빈 필 단원의 정원은 136명이다. 일단 결원이 있어야 사람을 뽑고, 새 단원이 된 사람도 당분간은 인턴 단원으로서 활동한다. 그 기간에 그가 연주를 잘 해도, 자기 악기 파트의 다른 단원들과의 음악적 앙상블이나 인간적 조화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짐을 싸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판단은 기존 단원들이 한다.

빈 필의 단원이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는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함께 진다. 즉, 빈 필의 단원은 모두가 여전히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하지만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라고 모두 빈 필의 단원인 것은 아니다. 이 복잡 미묘한 관계는 빈을 대표하는 두 음악 단체의 유기적인 협조와 발전을 전제로 한다. 또 이런 관계는 두 단체의 공통된 발전을 꾀하기도 한다.

이 두 악단의 단원들 스케줄 관리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힘들다. 예를 들어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단원이 여섯 명이라면, 그들의 스케줄은 모두 다르다. 누구는 오늘 오전에 열리는 빈 필 연주회에 나가고(저녁에는 그들이 오페라극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콘서트를 아침에 많이 하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 누구는 저녁에 오페라 <카르멘> 공연에 나가야 한다. 또한 그 사이에는 며칠 후 있을 <로엔그린> 공연 연습에 나가야 하고, 다음 달에 올려질 <아이다>의 파트별 리허설에도 참석해야 한다. 주말 콘서트의 리허설에 참여할 때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연습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일 일일이 시간표를 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며, 같은 클라리넷 단원이라 하더라도 몇 달이나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듯 전체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그들은 사실 세 개의 공연을 동시에 해치울 인력을, 그것도 같은 수준의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누구는 아침의 콘서트에, 누구누구는 저녁의 오페라에, 그리고 또 누구는 극동 순회 연주에, 다른 또 누구는 녹음에 참석한다. 그 외에도 삼삼오오 앙상블을 만들어서 실내악 연주도 하며, 몇몇은 솔리스트로서의 활동과 교수로서의 레슨이나 강의도 한다. 그래서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공연에 나가보면, 연주 전에 직원이 나와서 스케줄 표를 들고 출석을 체크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또 같은 첼로 주자들끼리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도 보인다. 빈 필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야, 요하네스, 오랜만이야. 2주 전에 <투란도트> 같이 하고는 처음 보는 거 야냐?”
“아냐, 저번 <박쥐>에서 봤지. 나 그 동안 극동 콘서트 투어에 다녀왔어.”
“야, 재미있었어?”
“말 마. 지휘자가 그 영감이잖아? 이제 은퇴해야 할 것 같은데, 내년에는 뽑지 말자.”
“어휴 난 안 끼길 잘 했네. 난 그냥 오페라 할 때가 제일 편한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가끔 콘서트에 나와야 얼굴을 팔지.”
“그건 그래. 하지만 저번에 프랑크가 또 4중주 같이 하자던데 어떡할까 고민 중이야. 음반 녹음할지도 모른대.”
“그래? 그나저나 나 오늘 할 <돈 카를로> 연습을 제대로 안 해서 지금 좀 해봐야 해.”
“무슨 소리야. 오늘 <라 보엠>이야!”
“앗, 그래? 어, 잘 됐다. 놓여 있는 악보를 보니 그러네.”


그들은 악보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너무 많아서 개인이 들고 다닐 수도 없다. 악보계가 다 챙겨 놓으면 그걸 보고서야 자신이 무얼 하는지 안다.

“이거야 카라얀 때부터 하도 많이 해서 눈 감고도 할 수 있지. 그나저나 오늘 지휘자가 프레트르 아니야?” “헉, 그 영감 지난주에 입원했잖아. 몰랐어? 오늘 뭐라고 하더라. 하여튼 나폴리에서 젊은 이탈리아 지휘자가 아침에 도착했대. 그 촌뜨기는 완전히 긴장하겠지만,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어이, 알베나! 더 예뻐졌는걸. 영국 투어 갔다가 잘 돌아왔어? 헤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늘 반갑게 인사하며 내가 못 알아듣는 말로 떠드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죄송합니다. 빈 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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