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 |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는 걸 보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각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역시 남다른 '엄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듯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 | |
|
2008년 봄, 얼마 전, 한글학교 교사가 보낸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오래전 어머니가 쓰신 책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구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문맹인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데, 어머니의 책을 교재로 쓰고 싶다고 했다. 나도 가지고 있는 책이 딱 두 권밖에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책이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에게 혹시 용기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선뜻 보내드렸다.
그러고 나선 잊고 있었는데, 한글학교 선생님께서 어머니의 주소를 알고 싶다고 다시 전화를 하셨다. 그동안 할머니들이 한글을 겨우 쓰시게 되었고, 그 솜씨로 어머니께 편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었다. 매주 어머니께 가니 우리 집으로 보내시면 전해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계신 곳 주소를 알려드려도 되겠지만, 밭에 나가 계시면 집배원 아저씨가 어머니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며칠 후, 우리 집으로 편지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겉봉에 쓰인 주소들이 초등학생들 글씨 같았지만, 정성들여 쓴 글씨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편지 꾸러미들을 잘 챙겨 어머니께 갖다드렸더니, 부끄러워 하시면서도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 편지들을 읽고 또 읽으셨다. 맞춤법은 많이 틀렸어도 글씨들을 또박또박 얼마나 정성들여 썼는지 옆에서 보는 나도 감동을 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할머니들이 쓰신 편지를 어머니가 못 알아볼까봐 선생님이 한 장 한 장 워드프로세서로 다시 쳐서 동봉해 보내주신 거였다. 대개가 육칠십 대인 할머니들이 이제 뒤늦게 한글을 배우려니 얼마나 힘이 드실지…… 가르치시는 선생님이나 할머니들이나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할머니들의 편지는 내용도 아주 다양했다. 외국으로 떠난 딸이 너무 그립다는 글, 수녀가 된 딸이 저세상으로 갔다는 애달픈 사연, 젊어서 고생한 이야기…… 그중에 나를 웃게 한 편지가 있었는데,
“경화가(내 이름) 무럭무럭 자라주니 얼마나 흐뭇하시겠냐.”는 거였다.
‘암~! 난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구 말구! ㅎㅎㅎ’어떤 할머니는 어머니의 책 내용 중에 어려서 돌도 지나지 않아 죽은 내 동생 ‘무남이 이야기’를 읽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적었다. 그 이야긴 어머니의 책을 읽는 사람들마다 눈물을 흘리는 대목이다.
할머니들은 모두 어머니를 한 번 꼭 만나고 싶다고 적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보러 오는 분들을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으니 옥수수가 익을 때쯤이나 아니면 가을에 고구마 캘 때, 혹은 알밤이 떨어질 때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한글학교 할머니들을 초대하기 전에 어머니가 다치셔서 오랫동안 입원을 하시게 되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병환에 계시는 바람에 끝내 시골집으로 초대하지는 못했다.
다만, 어머니께서 입원해 계시는 동안 할머니들이 병문안을 와주셨는데,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콩국을 손수 만들어 오시기도 하고 음료수를 사다주시기도 하셨다. 어머니의 책이 인상 깊으셨던지, 수년 전 어머니가 출연하신 < 인간극장 > ‘그 가을의 뜨락’ 5부작을 방송국에 주문해서 모두 함께 보셨다고도 했다. 어머니가 다치지 않았다면, 그 가을에 할머니들을 초대해서 어머니가 심어놓은 고구마도 캐고 30년 묵은 밤나무에서 떨어진 굵은 알밤도 주웠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어머니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신 고마운 할머니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