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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까지 찾아온 빚쟁이, 결국 찾아간 곳은… - 절망의 나락에서 구해준 어머니의 한마디

학생들 보는 앞에서 빚쟁이에게 별별 수모를 겪었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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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겨울, 남편이 하던 사업이 망해서 빚만 남게 되었다. 채권자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찾아왔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복도로 불려 나가 별별 수모를 다 겼었다.

 
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는 걸 보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각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역시 남다른 '엄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듯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1983년 겨울, 남편이 하던 사업이 망해서 빚만 남게 되었다. 채권자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찾아왔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복도로 불려 나가 별별 수모를 다 겼었다. 다달이 내 월급을 몽땅 다 내놓아도 빚을 갚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주변 어디서도 돈 한 푼 마련할 곳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채권자가 보낸 빚을 대신 받아주는 무서운 해결사가 내가 사는 사글세 단칸방으로 찾아왔다. 아예 세면도구까지 챙겨와 돈을 해줄 때까지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며칠 후면 갚을 수 있다는 다짐을 하고 돌려보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이라야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동생들과 어렵게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넋이 다 나가다시피 한 딸을 보신 어머니는 “아이구, 이것아, 정신 차려라. 너 이러다 죽겠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 밤 어머니와 나는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안양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살고 있는 왕고모님을 찾아가 보자며 길을 나섰다. 밖에는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변변한 코트 하나 없이 허술한 스웨터에 낡은 목도리를 두르고 앞서 걸어가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죄송스럽던지 가슴을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성북에서 전철을 타고 청량리에서 다시 수원행으로 갈아탔다. 옆에 앉은 어머니는 틈틈이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낙심하지 말고 기운을 차리라는 무언의 격려였다.왕고모님 댁뫀 안양 시내?서 좀 떨어져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들판을 한참 걸어서 가야 했다. 오랜만에 찾아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다며 어머니는 과일 한 봉지를 사셨다.

소가 도살장 끌려 들어가듯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친척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얼굴이 비칠 듯이 반들반들한 노란 장판이 깔린 안방에 자개장이 번쩍이는데, 더욱 주눅이 들었다. 쟁반에는 비싼 과일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우리가 사간 과일 봉지가 더욱 초라해 보였다.

찾아간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만 한참을 오갔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머니가 돈 이야길 꺼내셨다. 그 얘길 꺼내실 때,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아마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셨을 게다. 나도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은 듯 화끈거려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그나마 돈이 마련되었다면 무안함이 덜했을 텐데, 고모님 말씀이 “돈에 관한 한 고모부가 주관하시기 때문에 나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갔는데 부끄럽기 짝이 없고 왜 찾아갔나 싶었다.


잠시 더 앉았다가 그 집 대문을 나섰다.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어찌 그리 멀던지……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그 먼 들길을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걷던 중에 어머니가 목도리를 풀어서 내 목에 둘러주시며 말씀하셨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마음 단단히 먹고 정신 잃지 마라! 넌 이제 괜찮다.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으니 더 이상 나빠질 게 뭐 있겠니.”

그때는 그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어머니랑 헤어지는데, 몇 걸음 걷다 뒤를 돌아다보니 어머니가 눈을 맞고 그 자리에 서 계셨다. 나를 향해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시며…….
걷다가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서서 내리는 눈을 오롯이 맞으며 손을 흔들고 계셨다. 그때 어머니 마음이 오죽했으랴. 빈손으로 돌아가 빚쟁이한테 닦달을 당할 딸을 생각하며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리셨으리라!

그 후, 살아가면서 너무 힘들고 막막해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그날 눈 속에서 나를 배웅하며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 해보는 거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두 주먹을 쥐고 이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다 보면 새로운 용기가 생겨서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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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10,800원(10% + 5%)

"엄마, 나 또 올게"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이름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내 어머니, 내 할머니 그리고 내 외할머니의 이야기. '엄마'라는 말이 가져오는 가슴뭉클함은 누가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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