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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박종호 글,사진 | 김영사 |
예술의 절정을 꽃 피운 오스트리아 빈! 문화여행자 박종호가 전하는 위대한 예술과 인생의 아름다움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건축가 오토 바그너,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빈에서는 그들이 모두 살을 스치고, 말을 섞으며, 살고 사랑하고 창작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치열한 정신과 열정으로 유럽 예술의 절정을 이루어낸 도시 빈! 그 아름다운 역사의 현장에서 문화여행자이며 정신과전문의인 박종호 가 위대한 예술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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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중앙묘지는 유럽에서도 가장 큰 묘지들 중의 하나다. 가기가 쉽지는 않다. 이름처럼 빈의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철을 타고서 거의 교외 종점 가까이까지 가야 한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기가 귀찮아진 나는 결국 오늘도 그곳까지 가는 데 돈이 많이 든다. 이른 아침부터 택시를 잡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저에게 성실함을 주소서.
한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세르비아 출신의 기사가 모는 택시는 벨베데레 궁과 남역을 지나 교외로 달린다. 몇 개의 변두리 시가지를 지나고 거의 30분 이상을 달려 택시는 묘역의 제2문 앞에 선다. 돌아가는 길이 걱정스러운 나는 세르비아 기사에게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습니까? 기다리는 요금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희색이 만면해
“얼마든지. 천천히 보고 나오세요. 기다리는 요금은 필요 없습니다. 미터기는 끄고 편하게 기다리지요”라고 대답한다.
차에서 내리자 꽃 가게가 두 곳 보인다. 으레 그러하듯 나는 꽃은 보지도 않고 대신 두 여주인의 얼굴을 먼저 본다. 나이가 더 든 할머니에게서 꽃다발 두 개를 산다. 많이 사면 더 좋겠지만 손이 두 개밖에 없다.
양손에 꽃다발을 든 나는 아직 해도 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중앙묘지의 큰길을 천천히 걷는다. 겨울의 키 큰 가로수들이 드러낸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아침 하늘이 서서히 드러난다. 걸어가면서 주변의 크고 작은 무덤들, 엄밀히 말하자면 비석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길 저 끝에는 커다란 예배당이 있다. 중앙묘지의 가운데에서 망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천국행을 기원하는 자리다. 교회를 향해 가다가 중간쯤에 이르면, 왼편으로 작고 소박한 나무 팻말이 눈에 뛴다. ‘음악가들.’
아마 베토벤의 묘가 먼저였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빈에서 동시대를 살면서 그를 흠모했지만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채 짝사랑으로 일생을 마친 슈베르트가
“내가 죽거든 베토벤 선생님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다. 그래서 슈베르트의 묘가 베토벤의 묘 옆에 자리했다. 너무나 불행했던 그의 인생에서 소망이 실현되었던 유일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죽어서 말이다.
모차르트는 전염병으로 죽은 뒤 생석회 가루와 함께 커다란 구덩이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묻혔다. 그리하여 그는 변변한 무덤조차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모차르트의 추종자들이 그의 무덤, 아니 묘비만을 여기에 세웠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허묘墟墓다. 그의 묘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 사이에 세워졌다.
이리하여 가장 위대한 세 음악가들의 트라이앵글이 만들어졌다. 모차르트는 죽어서 오른편에는 베토벤, 왼편에는 슈베르트를 거느리게 되었다. 모차르트를 사랑한 베토벤은 그 옆에 묻혀 있고, 베토벤을 흠모한 슈베르트는 또 그 옆에 묻혀 있다. 세 명의 위대한 음악가들은 죽어서 영원히 존경하고 흠모를 받는 관계로 이렇게 남아 있다.
그 이후, 브람스가 죽자 그 역시 슈베르트 옆에 묻혔다. 이제 점점 음악가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그들 주위로 그들을 사랑하던 후배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생전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고 가까이 갈 수도 없었지만, 귀신이 되면 다들 격이 없어지나 보다. 우리는 귀신이 되기 전에 보다 허심탄회한 말들을 나누어야겠다.
브람스 옆으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있다. 살아서 평생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지 못했고 결국 독신으로 일생을 마친 브람스는 비석도 고독해 보인다. 반면 생전에 인기가 높았던 빈의 스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죽어서도 아름다운 여인들의 환대를 받고 있다. 그 뒤로는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 그리고 그의 동생들인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등 일가가 포진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묘지 뒤를 돌면서 주변을 살펴본다. 이름 찾기 게임이 시작된다. 옆으로 잘 뒤져보면 요제프 라너, 후고 볼프 등등이 곳곳에 있다. 이렇게 하여 ‘음악가의 묘역’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음악의 개혁가 쇤베르크는 죽어서도 그들과는 떨어져 홀로 누워 있다. 빈의 오랜 음악적 전통을 부인하고 개혁했던 그는 묘비도 정말 개혁적이다. 다른 이들 저편에서 또 무언가를 구상하고 있나 보다.
나는 들고 간 두 개의 꽃다발을 슈베르트와 브람스 앞에 하나씩 놓는다. 그들은 둘 다 자손도 없다. 베토벤도 독신이었지만, 죽은 이후로 인기가 좋아서 그의 묘비에는 늘 꽃들이 즐비하다. 굳이 내가 꽃을 놓지 않아도 그의 묘비는 풍년이다.
버스가 도착했나 보다. 일본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온다. 그들에게 중앙묘지는 필수 관광 코스다. 그들은 빈에 도착하면 바로 다음날 중앙묘지를 먼저 찾아 ‘음악가의 묘역’에 헌화한다고 한다. 첫 아침에 중앙묘지를 찾은 그들, 음악회에서 나와 마주치게 될 그들은 벌써 진지한 결의에 찬 듯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음악 여행에 감동이 함께하기를 빈다.
어쩌면 나도 언제부턴가 그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빈에 오면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중앙묘지를 찾곤 하니까. 그리고 만나는 것이다. 늘 갈증에 시달렸고 방황했던 내 청춘 시절을 순간이나마 감동과 격정으로 휘몰아치게 해주었던 브람스와 슈베르트를……. 나는 그들에게 헌화하고, 나의 빈 일정 동안 최고의 연주를 접하는 행운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