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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특파원 중국문화를 말하다 홍순도 등저 | 서교출판사 |
베이징 특파원 13인이 발로 쓴 최신 중국 문화코드 52가지 - 중국 문화를 알면 중국 경제가 보인다! 전ㆍ현직 베이징 특파원이 발로 써낸 책인 만큼 현지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중국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도 술술 넘길 정도로 쉽지만, 준비 없이 앉은 자리에서 독파할 정도로 가볍고 만만한 책도 아니다. 흙먼지 휘날리는 중국 대륙 곳곳에서 건져 올린 특파원들의 오랜 경험이 농축된 만큼 객관적 설득력을 갖는 최신 중국의 문화코드와 묵직한 울림까지 담겨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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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름에는 다 그렇게 불리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금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길이 없는 분례(糞禮)라는 한국식 이름도 재래식 화장실에서 분만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던가. 중국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아니 모국어가 표의 문자인만큼 오히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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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이름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짓는다. 그래서 점술인들의 인기가 높은지도 모른다. 최근 하얼빈에서 열린 점술인 대회 모습. 사람의 이름을 짓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사업에 속한다. | |
진시황, 당태종(唐太宗)과 함께 중국의 3대 명군으로 꼽히는 한무제(漢武帝)는 어릴 때 이름이 돼지를 뜻하는 체(?)였다. 한국인이 들을 때는 무슨 그런 글자로 왕자의 이름을 짓느냐고 할지 모르나 돼지고기를 소고기보다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볼 때는 다르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 경제(景帝)의 은근한 당부를 엿볼 수 있다.
근대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바진(巴金)의 이름 역시 필명이기는 하나 상당한 의미가 있다. 본명인 리야오탕(李堯棠)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이 이름에는 바로 그의 사상이 들어 있다. 무정부주의자로 유명한 바쿠닌과 그로포트킹의 중국어 이름 앞 자와 끝 자를 각각 차용해 필명을 만든 것이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 사실을 반영하듯 그는 덩샤오핑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과 폭넓게 교유는 했으나 공산당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한때 무당파의 신분으로 작가협회 부주석 등을 지낸 것도 그의 이런 사상과 관련이 있었다.
이름에도 시대 상황이 반영된다. 예컨대 공산당이 정부를 세운 1949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보면 젠궈(建國), 리궈(立國), 궈청(國成), 신궈(新國) 등의 이름을 가진 남자들이 많다. 아이궈(愛國), 싱궈(興國)라는 이름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이에 대해 작가 옌롄커(閻連科)는
“1949년 이후 중국에서 태어나서 이름에 ‘궈’(國) 자를 단 사람들을 톈안먼 광장에 다 집합시키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도 주위에 이런 아이들은 엄청나게 많았다.”고 말했다.
궈(國)자는 중국건국, 메이(美)자 이름은 한국전쟁과 연관한국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에 태어난 적잖은 여자 아이들은 본의 아니게 미국의 메이(美)자를 이름의 마지막 글자로 사용해야 했다. 예컨대 성메이(勝美), 캉메이(抗美), 커메이(克美) 등의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그렇다. 각각 미국에 이기고 저항하고 극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상호 방문을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드는 이름이다.
중국과 북한이 한때는 진짜 혈맹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이름도 있다. 바로 중국과 북한을 의미하는 중차오(中朝)라는 이름이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지 않을까 싶다. 기가 막힌 사연도 있다.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에 사는 70대 초반의 전직 관료인 왕중차오(王中朝) 씨가 주인공이다.
원래 그의 아버지는 1949년 이전 만주에서 활약하던 중국인과 조선인의 연합군인 동북항일연군의 저우바오중(周保中) 부대 장교 출신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낳자마자 일본 관동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이때 그의 어머니인 왕위환(王玉環)과 그를 거둔 사람이 다름 아닌 조선인 장교 최용건(崔庸健)이었다. 일제 패망 후 북한으로 들어가 부수상까지 지낸 최는 한국인들에게는 그저 한국전쟁의 원흉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서는 인민해방군의 팔로군(八路軍) 포병사령관을 지낸 무정(武亭)과 함께 전설적 무인으로 유명하다.
아무튼 왕중차오는 계부 최용건을 따라 북한으로 들어간다. 중국과 조선의 영원한 우호친선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으로 계부가 고쳐준 중차오라는 이름을 가진 채. 당연히 그는 북한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다. 학교도 만경대혁명학원을 비롯해 한다하는 명문만 골라 다녔다. 그러나 그 역시 계부가 그랬듯 북한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미련 없이 버리고 60년대 초 조국으로 돌아온다. 이어 자신의 이름대로 산둥성 일대 지방 정부의 고위 관료로 일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친선을 위해 은퇴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름의 의미를 잘 실천한 것이다.
중차오(中朝)보다 더 놀라운 이름은 쑤중차오(蘇中朝)다. 옛소련을 뜻하는 쑤(蘇)라는 성을 가진 군인이 아들을 낳자 그 기념으로 중국과 북한에서 한 글자씩을 붙여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매년 홍수가 많이 나는 나라인 만큼 물과 관련한 이름도 많다. 수이성(水生?물에서 태어나다), 캉훙(抗洪?홍수에 저항하다), 구디(固堤?제방을 튼튼히 하다), 수이푸(水福?물에서 태어났으나 복을 누린다) 등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중국인들의 이름은 출생한 연도를 분명하게 알게도 해 준다. 앞에 예를 든 쑤중차오라는 사람은 아마도 구소련과 중국, 북한이 모두 관계가 좋을 때 태어난 사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직후가 될 수밖에 없다. 3개국이 사이좋게 똘똘 뭉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대항할 때였으니까 말이다.
원거(文革)라는 이름은 1966년부터 10여 년 동안 이어진 문화대혁명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인들의 이름엔 가치관이나 인생관, 관심사 담겨중국인들의 이름은 부모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관심사를 엿보는 창이다. 조상들의 명예를 중시하는 부모는 조상의 정신을 잇는다는 의미의 사오쭈(紹祖)나 지쭈(繼祖), 조상을 빛나게 한다는 뜻의 싱쭝(興宗)이나 셴쭝(顯宗) 을 자식들에게 지어준다. 또 시장경제에 관심이 많은 부모는 첸룽(錢榮), 첸푸(錢福) 같은 이름들을 좋아한다. 반면 교양과 지식, 품위를 강조하는 경우는 자식들에게 우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한다.
자신은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지만 자식은 품위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고 싶어 하는 리진성(李進升) 씨의 말을 들어보자.
“내 아버지는 관리로 승승장구하라고 나아갈 진(進)에 오를 승(升)을 이름으로 나에게 지어줬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식이 그렇게 자라기를 원치 않는다. 재물이나 권력보다는 품위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칭이(淸義)로 지었다. 깨끗하고 의롭게 살라는 의미이다. 다행히 아들은 이름처럼 품위있게 자라고 있다.”덩샤오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2005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당 원로 쑹런충(宋任窮)은 빈궁함이나 어려운 일을 떳떳하게 맡겠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당 원로 중에서는 유독 오래 살아남아 현 당정 최고 지도부를 2선에서 지원하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버지 쑹런충의 은덕으로 최고위층의 집단 거주지인 중난하이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큰 아들 쑹커황(宋克荒)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친 벌판에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와 거의 똑 같다. 두 부자 모두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살았지만 생활 자체는 빈궁함이나 어려움과는 거리가 꽤나 멀었다. 특히 쑹커황은 크게 어려움을 당해본 때가 없었다는 것이 중난하이 소식에 정통한 인사들의 전언이다.
반면 요즘 중국인들은 사회주의 경제보다는 자본주의 경제에 더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자녀도 하나씩 밖에 낳을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금전적 어려움 없이 잘 먹고 잘 살면서도 부르기 좋은 의미를 가진 이름을 선호하는 추세다. 여기에 영화배우 판빙빙(范氷氷)이나 피아니스트 랑랑(郞郞), 다이빙 스타 궈징징(郭晶晶)처럼 같은 글자를 쉽게 겹쳐 부르는 개성 있고 톡톡 튀는 작명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