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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여행의 로망 고선영 글/김형호 사진 | 시공사 |
이 책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을 다독이고 위안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의 ‘소도시’들이다. 그곳에서 푸근한 동네 사람들의 노변정담에 끼어 보고, 맛나는 지역 음식도 맛보고,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둘러보면서 여행자는 일상에서부터 가져온 묵직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놓아 버린다. 녹록지 않은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휴식같은 시간. 여행자는 길 위에서 새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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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블루스 시즌 2
봄이면 마음이 설렌다. 아니,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결국 고속도로를 달린다. 대전과 통영을 잇는 고속도로가 열렸다고 했을 때 나만큼 기뻐한 도시 사람이 또 있을까. 한결 가까워진 탓에 1년에도 서너 번은 꼭 통영을 찾게 된다.
통영은 어느 계절이든 늘 아름답지만 봄날의 통영은 더없이 근사하다. 찬란함을 품은 그 바다 앞에 하루 종일 서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달아 공원도 좋고 산양읍의 해안 도로도 좋으며 북포루가 있는 여황산 꼭대기도 좋지만, 통영의 바다를 제대로 보기에는 동피랑 마을이 제일인 듯싶다. 크고 작은 고깃배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강구안을 끼고 있는 짙은 블루빛 바다가 펼쳐지니까. 그리고 한국에서 제일 예쁜 벽화 마을인 동피랑을 함께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언제 적 동피랑이냐며 실망할 수도 있겠다. 3, 4년 전 동피랑 마을이 처음으로 벽화 마을로 조성된 뒤, 이 바닷가 언덕 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 중 하나가 됐다. 거의 모든 언론매체에서 동피랑 마을을 소개했고, 이후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 벽화 마을을 탄생시킨 모태가 됐다. 그렇게 새로 생긴 벽화 마을로 관심이 옮겨진 뒤 동피랑은 한동안 잠잠했다.
다시 동피랑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은 바로 이번 봄이었다.
지난 봄, 그러니까 꼭 1년 전 찾았던 마을과는 달리 많이 변해 있었다. 새로운 그림들이 대거 등장해 벽을 채웠고, 바닷바람에 희미해졌던 그림들은 설탕물을 쪽 빨아 먹은 상추처럼 다시 싱싱해져 있었다. 한때 이야기가 오갔던 마을 철거 방침은 취소됐다. 동피랑 마을의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 집 담벼락에는 흰 매화꽃이 활짝 피었고, 강구안 바닷빛을 닮은 하늘과 구름이 펼쳐졌으며, 사막여우부터 보아뱀까지 <어린왕자> 소설 속 주인공이 총출동한 거대한 그림도 새로 그려졌다. 그리고 동피랑 마을의 원조 구멍가게인 ‘태인 카페’ 앞 담에는 하늘을 가득 메운 연 그림이 들어앉았다.
“낸 밸루 마음에 안 든다. 이전 그림에는 꽃도 있고 얼라도, 새 그림도 있어 사람들이 마이 왔는데, 연 그림이 생긴 다음엔 인기가 음따.”
연 그림 집 할머니가 태인 카페 앞 노천 테이블에 앉아 계시다 그림을 구경하는 우리에게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이전 그림보다 사진 찍는 사람이 적다며 서운하시단다.
“애고, 그래도 옛날에는 다 초가집 아이었는교. 신작로 내면서 집도 새로 짓고는 마, 맨 할매들만 살다 이리 젊은 사람들이 놀러 오니께 좋지예. 아인교?”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던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섭섭한 표정의 할머니를 위로한다. 나 또한 할머니 집 연 그림이 마을에서 최고로 멋지다고 맞장구를 치고는 일부러 사진기를 펑펑 터뜨린다. 셔터 소리에 흡족해진 할머니는 그제서야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당부하신다.
“저그, 몬당(산을 넘어가는 꼭대기를 뜻하는 방언)에도 댕기 보거로! 좋은 그림 많이 생겼데이. 길 댕길 땐 단단히 살피그라!”
새로 그려진 그림을 구경하며 좁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니 금세 정상에 닿는다. 네모지고 세모진 지붕을 얹은 집들이 다닥다닥 오밀조밀 붙어 있다. 길은 끊어질 듯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마을 꼭대기에 있던 이층집은 허물어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동포루 정자가 세워질 예정이라고 했다. 그 아래, 마을 입구에서부터 눈에 띈 지독히도 짙은 파랑색 집이 있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동피랑 마을 구판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그리고 구판장 앞집은 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이곳에서는 동피랑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아이들은 재활용 재료로 이것저것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구판장 주인아주머니께 달달한 냉커피를 주문한 다음 빨간색 파라솔이 펼쳐진 테이블에 앉았다. 실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는데 아래쪽 태인 카페의 장사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아이스크림은 팔지 않는단다. 어쨌든, 구판장은 동피랑 마을에서도 강구안이 제일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다. 저 아래,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의 단골집이었던 통새미집 골목길도 보이고 통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뚱보할매 김밥집도 보인다. 일제 강점기 때 통영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였다는 항남동도 보인다. 그리고 동피랑 언덕을 둘러싸고 있는 시민탕, 충무탕, 태평탕, 대성탕 등 오래된 목욕탕 굴뚝이 비쭉 솟아나 있어 재미있다. 바람이 솔솔 기분 좋게 불어온다.
- 본문 中에서
여행자의 수.첩.가.기.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면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전 비룡 분기점을 지나 진주?무주 방면으로 가다 대전을 지나면 통영 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북통영IC나 통영IC에서 나가면 된다. 강남권에서 4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김포공항과 사천공항을 잇는 항공은 최근 폐쇄됐다. 동피랑 마을은 통영 시내를 지나 여객선 터미널, 강구안 방향으로 가면 보인다.
먹.기.통영의 맛집므 모두 돌아보려면 3박 4일도 부족하다. 일단 봄에는 도다리쑥국을 맛본다.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 앞 분소식당(055-644-0495)이 제일 유명하다. 강구안 해안도로를 따라 서로 원조라 우기는 충무 김밥집이 줄지어 서 있다. 가장 유명한 집은 ‘국풍 81’에 참가해 충무김밥을 세상에 알린 이두이 씨의 뚱보할매 김밥(055-645-2619). 한일식당(055-648-2645)은 포장만 할 수 있는데, 통영사람들은 이곳 김밥을 더 좋아한다는 평이 있다. ‘하모’라 불리는 자연산 바닷장어는 통영대교 밑 쫂오야 숯불장어구이(055-649-9292)가 유명하고, 술값에 안주가 포함되어 있는 독특한 통영식 술 문화는 미수동 통영다찌(055-649-5051)에서 경험할 수 있다.
머.물.기.동피랑 마을 바로 아래 강구안을 배경으로 선 나폴리모텔은 영화 ‘하하하’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특히 주인공이 묵은 503호는 칸영화제 이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치고 호텔급으로 변신했다(4만 원부터). 지난해 오픈한 통영ES리조트(055-644-0069, //escondo.co.kr)는 지중해풍의 건축 양식으로, 통영의 바다와 잘 어울리는 특급 리조트다. 미륵도에 위치했다.
알.아.두.기.통영시청 관광과 경남 통영시 무전동 376-1, 055-650-4610, 055-645-0101
통영시 관광안내소 055-650-4680~1
동피랑 쌈지교육장 //www.dongpirang.co.kr
나폴리모텔 경남 통영시 동호동 160-3번지, 055-646-0202, //www.tynapol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