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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란 허둥거림 같은 것이다

이상권 「날다」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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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살았으니까 다시 희망을 되새김질할 수 있고, 더 이상 절망의 눈빛을 일구지 말자고 번개부리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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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로움이란 허둥거림 같은 것이다

살았다. 살았으니까 다시 희망을 되새김질할 수 있고, 더 이상 절망의 눈빛을 일구지 말자고 번개부리가 소리쳤다. 그들은 파랗게 덤불지고 있는 다래덩굴에 앉아 있었다. 상처 입은 숲 속 곳곳에서는 작은 풀들이 급하게 땜질하듯이 돋아났다.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다시 돌아갈 거야! 아기들이 깨어났을지도 몰라.”

하늘눈은 진저리치면서 소리치더니 다시 튕겨나갔다. 번개부리가 뒤따랐다. 번개부리는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목구멍으로 거슬러오르는 말을 다시 삼켰다. 하늘눈은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집이 있는 벌통으로 내려앉았다. 벌통은 부서지지도 않았다. 땅에 묻히지도 않았다. 그저 쓰러졌을 뿐이다. 그 작은 변화가 그들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하늘눈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야! 아니라고오!”

하늘눈은 벌통 위에 앉았다. 벌통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로 나왔는데 아무리 더듬어도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야 해. 아가들이 깨어났을 거야! 미안해, 아가들아! 미안해, 미안해. 곧 엄마가 들어갈게.”

하늘눈은 헛소리를 하면서 모걸음질쳤다. 약간 들려 있는 틈만 보이면 머리를 들이밀고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늘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벌통 속에 갇혀 있을 때와 정반대로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다. 부리가 깨져나가도록 쪼아보고 머리로 들이박아도 보고 발로 긁어도 보고…… 아, 벌통은 작은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째 지켜보고만 있던 번개부리가 하늘눈을 막아섰다.

“그만해, 제발, 제발…….”

하늘눈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금 맹렬하게 고개를 흔들면서 절대로 알을 포기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을 당해낼 재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시간만이 모든 고통과 아픔을 삭여줄 거라고 믿었다.

번개부리는 새삼 쓰러져 있는 벌통을 내려다보았다. 어처구니없었다. 저 거대한 절벽의 살이 떨어져내릴 줄은 정말 몰랐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몇백 년 혹은 몇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었다. 번개부리는 운명이라는 말을 새김질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상승이었다.

한낮, 정적이 흘렀다. 골짜기를 흐르던 바람이 번개부리의 몸을 높이높이 끌어올렸다. 종일 맺히고 풀리기를 되풀이하는 숲 위로 번개부리가 솟아올랐다. 번개부리는 눈을 감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누군가에게 반항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상대도 없었다. 그냥 이렇게 바람에 몸을 맡기다보면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은 문드러질 것 같았다.

번개부리는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매 한 마리가 자신을 정조준하고서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보통 때라면 여유 있게 피하면서 욕까지 내뱉어주었을 것이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매가 당황할 정도로 위협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번개부리는 매가 코앞까지 다가오도록 알지 못했다. 번개부리는 모든 감각을 닫아버린 채 날고 있었다.

매는 너무도 쉽게 번개부리를 발가락으로 낚아챘다. 번개부리의 입에서 “으악, 아악!” 비명소리가 터져나오자마자 발톱이 조여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번개부리는 축 늘어졌다. 강한 마파람을 헤치면서 거침없이 하늘을 차오르던 한 새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때 하늘눈은 자신이 나왔던 그 구멍을 찾았고, 발로 땅을 파면서 그 밑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번개부리의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꽉 막혔던 귀가 갑자기 뚫리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정신이 맑아졌다. “달아나!” 하는 소리도 같았고 “운명이야!” 하는 소리도 같았고 “으아악!” 하는 비명소리도 같았다.

하늘눈은 급하게 벌통 위로 날아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번개부리를 불렀다. 반대편 산허리 도토리황제네 집 뒤로 사라지는 매가 보였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흔들었다. 하늘눈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 번개부리를 불렀다.

“제발 대답해줘, 제발, 제발, 제발…….”

“당신만 무사하면 돼.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 당신이 없으면 나도 존재할 의미가 없어. 당신은 빛처럼 날아서 알귀신 놈도 혼내줬잖아. 교활한 목도리랑 악마의 발톱도 혼내준다고 했잖아. 당신이 겁쟁이라고 했던 매한테 당했을 리가 ?어. 제발 아니라고 대답해줘!”

하늘눈은 번개부리를 부르면서 골짜기를 날아다녔다. 번개부리의 목소리는 끝끝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하늘눈은 다른 수컷 딱새를 남편으로 착각하고 따라갔다가 “우리 남편이니까, 관심 갖지 마” 하고 매서운 눈초리를 퍼붓는 또 다른 암컷 딱새의 사나운 눈빛을 받기도 했다.

나뭇가지에서 묵은 도토리를 까먹던 도토리황제는 “며칠간 번개부리란 놈이 미쳐서 날뛰더니 이제는 그 마누라가 미친 모양이구먼” 하고 비웃었다. 반면 고물상은 대충 사태를 짐작하고는 혀를 끌끌 찼다. “아무래도 매한테 당한 모양이구먼. 그래, 나도 며칠간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쯧쯧 안됐어. 다 잊고 어서 정신 차리라고. 그래야 사는 거야.” 물론 그런 말이 하늘눈의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늘눈은 맥이 빠져서 근처에 있는 개복숭아나무에 앉았다.

근처에서 “잡았다, 잡았어” 하고 낮은 소리가 들렸다. 박새 속임수였다. 속임수는 부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애벌레들을 물고 아직도 꽃잔치를 벌이고 있는 개복숭아나무로 날아왔다. 오리나무 구멍 속에서 사는 속임수네 집은 무사했다. 오리나무가 뿌리째 옆으로 쓰러졌는데도, 그 옆에 있는 나무에 걸치면서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속임수는 멍하니 쳐다보는 하늘눈을 보면서 다시금 자신들은 운이 좋았다고 중얼거리면서 오리나무로 날아갔다. 하늘눈은 속임수가 너무 부러웠다. 속임수네 집에는 귀여운 아기들이 깨어나서 삶의 열기가 바글바글 끓고 있었고, 그들 부부는 기쁨에 들떠서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고 있었다.

“다들 아기들한테 먹일 먹이를 나르고 있는데, 나만 뭐하고 있지, 나만 뭐하고 있지, 너무 허탈해. 내가 살아 있기나 한 걸까. 이상해. 죽어 있는 것 같아.”

하늘눈은 오리바위로 돌아오면서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번개부리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날개를 다그치지 못했다. 하늘눈은 서쪽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면서 남편의 냄새가 배어 있는 소나무 가지에서 밤을 지새웠다.
달빛이 어둠길을 헤치고 골짜기로 젖어들자 더욱 쓸쓸했다. 번개부리가 그리웠다.
밤새들이 달마중을 하기 위해서 어둠을 박차고 날아갔다.

하늘눈은 숲 바닥에서 살림 차리고 있는 작은 풀잎에 알알이 맺혀 있는 새벽이슬 속으로 햇살이 밑들기도 전에 눈을 떴다. 목이 메었다. 하늘눈은 오리바위로 날아가서 몸을 위아래로 까불어대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이미 눈물주머니는 말라버렸다.

“그리웠던 것들아, 더 이상 원망하지 않을게. 그동안 고마웠어. 이곳을 영원히 잊지 않을게. 소나무야, 생강나무야, 찔레덩굴아, 다래덩굴아, 모두모두 안녕!”

하늘눈은 낯익은 도토리황제하고 마주치자 서둘러 날개를 펼쳤다. 하늘눈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표가 없었다. 숲은 거대한 몸짓으로 출렁거렸다. 오늘따라 숲멀미가 났다. 하늘눈은 고도를 낮춰서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날아갔다. 마음껏 날아다니면서 그 자유스러움을 누리고 싶었으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예전에는 혼자 살았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젯밤 내내 외로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외로움이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때 생겨나는 허둥거림 같은 거였다. 예전에 혼자 살아갈 때는 희망이 있어서 외로움을 타지 않았다. 외로움이란 희망조차 없을 때 몸과 마음을 칭칭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덩굴 같은 거였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9. 영혼이 떠나버린 알은 차갑다

하늘눈은 산머리를 몇 개나 넘었는지 모른다. 인간들이 사는 마을이 눈에 잡혔다. 갈증이 날개의 추진력을 떨어뜨렸다. 하늘눈은 냇버들이 하늘거리는 개울가로 내려갔다. 잿빛으로 변한 냇버들 가지에는 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버들강아지랑 정답게 놀고 있었다.
하늘눈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내려가다가 콘크리트 다리 앞으로 내려앉았다.

애기똥풀꽃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물가에는 다른 풀까지 모여들어 커다란 풀떨기를 이루고 있었고, 그 옆에서 하늘눈은 찬물을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물이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주었다. 하늘눈은 풀떨기 그늘에서 쉬다가 우연히 다리 밑에 있는 작은 구멍 하나를 보았다.

하늘눈은 그쪽으로 날아갔다. 돌멩이춿 돌멩이 사이에서 시멘트가 떨어지면서 생긴 구멍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넓었다. 정성스럽게 지어진 새집이 보였다. 딱새집이었다. 하늘눈은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괜히 긴장되어서 굴 밖으로 나왔지만 이상하게 날개가 펼쳐지지 않았다. 무엇인가 안에서 잡아끌었다. 하늘눈은 주위를 한동안 두리번거렸다. 집의 주인이 의식되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집에 있는 알을 보았다. 모두 여섯 개였다. 자신이 낳은 알 같았다. 하늘눈의 몸은 집 안으로 빨려들었다.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알이 너무 차가워. 이렇게 차가우면 안 되는데. 이상하다.”

하늘눈은 날개를 펼치고 자꾸만 몸을 비벼대면서 차가워진 알을 데우려고 애를 썼다. 알이 따스해지자 하늘눈도 편안했다. 하늘눈은 이런 편안함이 영원하기를 기대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해졌다. 머지않아 집의 주인이 들이닥칠 게 뻔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오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쳤다. 이상한 일이다. 자신을 다그치면 다그칠수록 몸이 무거워졌다. 마음은 떠나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다그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일도 처음이야. 왜 그런지 모르겠어.”

하늘눈은 눈을 감아버렸다. 체념해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알을 세 번이나 부리로 골랐으니까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면…….”

알의 체온이 떨어져서 알 속에 있는 생명이 위험하다.

“그래서 차가웠구나. 아주 멀리 갔나봐.”

하늘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는 집을 오래 비워서는 안 되는데, 자신이 품고 있는 알이 걱정되기도 해서 하늘눈은 어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주인이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해거름녘이 되어도 집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늘눈은 한가슴 알을 품고 어둠을 묵혀냈다. 낯선 집인데도 편안했다. 오랜만에 맛본 단잠이었다. 새벽에서야 눈을 뜨고는 다시 알을 골랐으며 행여나 집주인이 올까봐 다시 긴장했으나, 햇살이 내려오고 세상이 새소리로 가득해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늘눈은 오후가 되어서야 바깥으로 나와서 물을 마시고, 다시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알은 싸늘해져 있었다. 생명이 꿈꾸는 알이라면 이렇게 빨리 식지 않는다. 하늘눈은 알 속에 있는 생명이 걱정되었다. 한참 동안 알을 품던 하늘눈은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 소리를 들었다.

“누구야, 왜 남의 집에 들어온 거야!”

하늘눈은 꼬리를 낮추고 눈을 크게 떴다. 눈이 유독 부리부리한 수컷 딱새가 하늘눈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전혀 화난 눈빛이 아니었다. 하늘눈은 할 말이 없었다. 수컷도 말없이 바라다보기만 하였다. 수컷은 무슨 궁리를 하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있다가 불쑥 나가버렸다.

하늘눈은 멍했다. 집을 침입한 자신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하늘눈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수컷이 개울가 냇버들 가지에 앉아 있었다. 하늘눈은 다시 들어가야 할지 어째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수컷은 그런 하늘눈을 보고도 한참을 뜸들이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놓았다.

“소용없어. 아기들은 이미 죽었어. 곯아버렸을 거야.”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게 말을 한 다음 건너편 산으로 날아갔다.
하늘눈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알을 품었다. 알은 무척 차가워져 있었다. 알이 살아 있다면 용납하지 않을 차가움이었다. 하늘눈은 당황하면서 저도 모르게 부리로 알을 톡 쪼아댔다.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늘눈은 탄식하면서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알 속의 생명은 죽어 있었다. 냄새로 알았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썩은 물이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하늘눈은 물가로 가서 정신없이 물을 마시고 다시금 날개가 원하는 대로 날아갔다. 마을을 질러가자 뒷동산이 보였다. 숭굴숭굴한 무덤 사이마다 할미꽃을 따라 소풍 나온 온갖 제비꽃들이 재잘거리고 있었고, 산허리에는 그곳에서 묵새기고 살아온 밤나무들이 연한 이파리를 빚어내고 있었다. 밤나무 밑에서는 철쭉꽃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도드라지게 화려하지는 않아도 연분홍 볼이 고운 철쭉꽃은 노을빛이 흘러내리자 더욱 붉어졌다. 하늘눈은 멍하니 노을을 바라다보다가 애잔하게 흘러드는 누군가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하늘은 맑다. ?도 밝다. 꽃도 만발했다. 물도 씩씩하다. 산다는 건 타오름이다. 산다는 건 목마름이다. 산다는 건 고통을 버무리는 몸짓이다. 산다는 건 외로움을 등지는 숱한 연습이다. 산다는 건 그리운 얼굴들을 지워가슴 연습이다. 산다는 건 여럿이었다가 결국은 혼자로 되돌아오는 연습이다.”

하늘눈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노래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눈의 앞쪽에는 산밭이 있었고, 길섶에는 뽕나무 몇 그루가 어우렁더우렁 살고 있었다. 하늘눈은 가장 가까운 뽕나무 쪽으로 날아갔다. 다시금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을이 붉다. 꽃도 붉다. 모든 게 타오른다. 나도 타오르고 싶다. 내 생을 바쳐 타오르고 싶다. 다 타서 꽃처럼 지고 싶다.”

수컷 딱새의 노래는 밭 아래 있는 전깃줄 어름에서 날아왔다. 처음에는 딱새뿐만 아니라 박새나 멧새가 같이 합창을 하는 줄 알았다. 가끔씩 박새와 멧새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늘눈은 수컷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한참을 두리번거렸지만 혼자였다. 아까 다리 밑에서 마주쳤던 그 수컷이 전깃줄에 앉아 있었다.

“나도 너처럼 노래를 잘 불렀으면 좋겠어. 노래가 너무 애절해.”

그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노을만 가늠할 뿐이었다. 하늘눈은 그의 깊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작은 우주 속에서 슬픔의 너울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절망이라는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눈빛이었다. 하늘눈은 그가 낯설지 않았다. 번개부리를 마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지난 며칠간 하늘눈은 자신이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다 짊어진 줄 알았고, 번개부리가 그 어떤 말로 위로하여도 슬픔으로 들어찬 가슴이 녹아내리지 않았다. 집 밖에 있었던 번개부리는 자신의 슬픔과 절망을 헤아리지 못할 거라고 단정해버렸다.

집이 뒤집히고, 알이 굴러떨어지고, 예정일보다 먼저 나온 새끼가 어미를 부르다가 죽어버린 그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슬픔을 어찌 알겠느냐고, 얼마나 남편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아, 나는 너무 몰랐어, 몰랐어.”

하늘눈은 제법 큰 소리로 탄식했다. 자기만이 상처를 입은 줄 알았는데, 저 수컷의 눈빛을 보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았다. 남편이 그립다. 미안하다. 하늘눈은 모든 일을 직접 겪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기들을 지켜낼 수 없었던 남편이 더 아팠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컷의 눈에는 그런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하늘눈은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늘눈은 그 옆으로 다가가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도 알과 남편을 잃었어.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 그는 정말 특별했어.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나는 새였어…….”

자신이 겪은 그 끔찍한 악몽을 이렇게 빨리 누군가에게 뱉어낼 줄은 몰랐다.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서 응어리로 담고 살아갈 줄 알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붉은 구름차일 위에서 흘러내리는 저 노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의 문이 열렸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다. 저 낯선 새를 위로하고 싶었다.

하늘눈은 어떻게 상대방을 위로해야 하는지 몰랐으나, 자신의 슬픔을 뱉어내기 시작하면서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고, 상대방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는 걸 느꼈다.

그제야 하늘눈은 알았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그럴듯한 말을 상대에게 건네려는 노력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을 그냥 보여주면 된다고. 하늘눈은 끝없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술술술 흘러나왔다.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냥 듣고만 있었으나 가끔씩 빨간 노을이 들어 있는 눈으로 하늘눈을 쳐다보기도 하였다. 노을이 스러지고 나서야 하늘눈의 이야기가 끝났다. 가슴이 후련했다. 하늘눈은 그가 조금이라도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고마워. 오늘 알 품는 낯선 너를 보자 아내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수컷은 그 말을 남기고 날개를 펼쳤다. 하늘눈도 따라올랐다. 그는 밭두렁을 지나 이파리가 무성한 찔레덩굴숲으로 들어갔다. 며칠간 이곳에서 밤을 보낸 모양이었다.

하늘눈은 낯선 이의 옆에 앉으면서도 낯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둘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아픔들이 서로의 얼굴에 있는 낯설음을 무디게 해주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드러냈는데 그 눈빛이 살가웠다.

“난 항상 자신이 있었어. 나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그 누구보다 먹이사냥을 잘하고, 그 누구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한동안 믿어지지 않았어. 아내랑 나는 행복했어. 우리는 좋은 곳에다 보금자리를 마련했어. 너도 가봤지만 이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우리들의 집도 망하지 않아. 그런 곳이야. 감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곳이지. 나는 다리 밑에서 밤을 새우고, 아내는 알을 품었지. 알 품은 지 사흘째 되던 날이야.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아내가 이상했어. 어지러워하고 토하기 시작하더니, 다음 날 오후에, 내 곁을 떠나버렸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가, 움직이지 않는 아내를 보고는 죽음을 받아들였지. 왜, 왜, 아내가 갑자기 죽었는지 그건 몰라. 다만 뭔가를 잘못 먹은 것 같았어. 내가 알을 품으려고 했지만 이미 알들이 차가워진 뒤라서…….”

수컷은 개울가에서 죽은 아내가 악마의 발톱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대목에서는 더욱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떨렸다. 하늘눈도 매의 부리에 찢겨지는 번개부리를 떠올렸다. 직접 보지 않았으나 매한테 당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늘눈은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는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죽은 뒤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해” 하고 거의 속삭임에 가깝게 덧붙였다.

둘은 더 이상 말이 없었지만, 서로에게 의지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맨 처음 사랑하고픈 상대를 만났을 때의 설렘하고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서로를 절실하게 요구하였다. 그 누구도 상대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나 이미 그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수컷이 먼저 날아올랐고, 하늘눈도 그 뒤를 따라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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