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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귀신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새마을운동 구호 속에 사라진 우리나라 귀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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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신들의 연대기─우리가 산 흉가(凶家)들

옛날 시골집에는 수많은 신들이 인간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많은 신들이 어떻게 그 짧은 세월 동안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걸까? 이 질문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답은 경험으로 볼 때 틀린 대답이다.

전통시대에 집에 살던 신들은 의외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6?25 전쟁 중이나 직후에 태어난 세대이다. 포격으로 벌거숭이가 된 산, 6?25 때 파놓은 참호들이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6?25의 폐허 속에서 성장한 셈이다. 그런데 그때에도 시골집에는 여전히 신들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정화수도 떠놓고 조왕신에게 뇌물로 조청을 바치고 있었다. 온 국토를 파헤치고 사람들의 뿌리를 뽑아 피난민으로 유랑하게 만든 6?25 전쟁이 지나고도 그 신들은 의연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6?25라는 극한의 파괴를 견딘 신들이 지금은 감쪽같이 사라져 흔적조차 남기고 있지 않다. 도대체 왜, 어떻게 해서 집에 깃들어 사는 신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 답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자기가 어머니한테 한 일 중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언가에 화제가 미쳤다. 한 친구가 갑자기 술기운에 그랬는지 가슴을 치며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을 들 수 없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때였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동네 무당을 불러 안택굿을 하고 있었다. 안택굿은 연초나 봄에 집과 가족을 축복하고 일 년 동안 액이 끼지 말라고 하는 간단한 굿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당 등의 민속적인 것은 미신이고 버려야 할 낡은 것이라고 배웠고 친구는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놓고 빈다든지 성주신의 몸체를 만들어 걸어놓는다든지 하는 걸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당까지 불러 안택굿을 하고 있으니 몹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무당을 내쫓고 쓸데없이 미신을 믿는다고 어머니를 나무랐다고 한다. 그후로 어머니는 아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집의 신들을 모시고 아들이 없는 틈에 안택굿을 하곤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또 한 번 눈에 띄어서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그 뒤로 어머니는 집 안의 신을 모신다든지 안택굿을 한다든지 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집을 성스러운 것으로 축복하고 가족들이 그 안에서 보호받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만큼 귀중하고 고귀한 것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교회나 성당에서 목사나 신부들이 기도하고 축복하는 거나 무당이 집을 축복하고 기도하는 거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학교에서 들은 서푼짜리 지식을 믿고 어머니를 윽박질렀던 일이 혼자서도 낯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되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집에 살고 있던 그 수많은 신들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순간에 감쪽같이 사라졌는가 하는 이유는 위의 이야기 속에 잘 압축되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휩쓴 과격한 근대화, 과격한 서구화이다. ‘잘살아보세!’라는 박정희 시대 경제 근대화의 구호 속에서 일체의 전통적인 것은 미신이자 낡은 것, 거부하고 파괴해야 할 것으로 공격당했다.

그러한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연결되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좀 과장해서 말하면 잠자는 시간 빼놓고 하루 종일 이루어졌다.

참고로 젊은 세대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스피커란 건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에 집집마다 라디오 대신으로 마루 기둥에 매달아놓던 것이다. 집집마다 있는 스피커는 전기선으로 이장네 집에 연결되어 있어 이장이 틀어주는 대로 동네사람들이 똑같은 방송을 듣는다.

스피커가 처음 방송을 시작하는 것은 해가 아직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새벽이다. 갑자기 군가 투의 노래가 요란하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며 동네사람들을 깨운다. 그리고 이장이 훈화 투로 잠시 뭐라고 떠든다. 프로그램의 일정 부분은 대통령부터 모모한 인사들이 나와 낡은 것들과 낡은 정신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정신으로 경제 근대화에 매진해야 한다는 훈화조의 연설이나 그 말대로 잘했다는 모범사례를 발표하는 거다.

아마 그런 프로그램만 하면 사람들이 스피커에 헝겊뭉치를 처박아두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반 이상은 유행가나 연속방송도 틀어주고 권투나 레슬링 시합 중계방송도 하기 때문에 그 재미로 듣는다.

스피커에서 늘 미신이라고 몰아붙이고 이장과 젊은 자식들이 윽박지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몰래몰래 집 안에 사는 신들을 모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길을 시멘트로 바르고 지붕 개량한다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는 등 그 무지막지하고 과격한 근대화가 집 안까지 쳐들어오는 데야 우리 어머니들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제사장을 잃은 신들은 인간들과의 관계가 끊어져 점점 낯설어지고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은 이른바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들이 무척 많아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잘 안 믿겠지만 우리 식구들은 결과적으로 십여 년 동안 그 흉가들을 찾아다니며 산 셈이다.

물론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아버지가 교직에 계셔서 여기저기로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시골 사람들은 외지 사람이 오면 모른 체하고 흉가를 사택이라고 내준다. 그런데 그 시골 사람들이 내주는 흉가란 게 대개는 보기에는 크고 번듯하다. 그러니 무척 고마워하며 들어가 살 수밖에.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 산 집은 그럴듯한 기와지붕의 한옥이었다. 그런데 집이 꽤 오래되었는지 지붕에 듬성듬성 풀이 자라고 있었다. 이사 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신을 신으려고 하는데 발가락이 들어가는 고무신 안쪽에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끄집어내려고 무심코 집어들고 보니 어른 손가락 굵기의 지네였다.

그 집은 지붕에서 시도 때도 없이 지네가 떨어져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들은 그런대로 그 집에서 잘 지냈다. 그 집에 이 년인가 살다가 다시 이사를 나오는데, 이제 친하게 지내게 된 동네 아저씨가 나타나 씩 웃으며 한마디 했다.

“사실은 이 집이 여기서는 유명한 흉간데 사람 힘이 무섭기는 무서운가봐. 아홉 식구나 돼서 그런지 아무 일도 없네?” 우리 집은 6남 1녀로 아홉 식구였다.

그 기와집에서 나와 이사 간 곳은 초가집이지만 규모가 크고 번듯한 집이었다. 그런데 여름에 홍수가 나니까 지대가 약간 낮아 마당에 물이 찰박찰박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는데 창호지 문에 구멍이 뚫리더니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천천히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형들이 일어나 쫓아내고, 물을 피해서 들어온 거려니 했다.

그런데 그 초가집에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또 동네 사람이 이사 구경 삼아 와서는 씩 웃으며 한마디 했다. 이 집이 이 근방에선 누구나 아는 흉가라고, 식구가 많아서 사람 기운이 집의 음기를 누른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의 말대로 식구가 많아서 그랬는지 우리 식구들은 계속 유명 짜한 흉가에 살았지만 아무 탈이 없었다.

그런데 형들이 군에 가고 대학에 다니느라 집을 떠난 뒤 문제가 생겼다. 나도 형들을 따라 도시에 나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시골집에는 어머니 아버지하고 동생만 살았다.

여름방학이 되어 시골집에 갔는데 한밤중에 시끄러워 눈을 떠보니 동생이 일어나 눈을 희번득이며 허공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거기 뭐가 있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더니 맨발로 밖으로 뛰어나가 집 주위를 빙빙 돌았다. 어머니와 나도 동생을 따라 집 주위를 뛰어 돌았다.

동생은 집 주위를 뛰어다니다가 우물로 가더니 또 우물 속을 가리키며 거기 뭐가 있다고 소리치며 우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어머니와 나는 갑자기 힘이 장사가 된 동생을 억지로 방으로 끌고 들어와 눕혔다. 동생은 한참 동안 허공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거기 뭐가 있다고 두려움에 떨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동생은 밤에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동생은 방학 내내 이틀 걸러 하루씩은 그랬다.

언젠가 우연히 동생이 이유 없이 몽유병을 앓던 그 집이 있는 시골을 지나게 되었다. 문득 그 집이 생각나서 찾아가보았다. 좀 수리를 한 모습이지만 그대로 있었다. 열려진 대문 앞에 서자 가슴이 뭉클했다. 문득 내가 그 집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이 흉가를 왜 그리워했던 걸까? 그것은 흉가의 무언가 낯설고 두려운 것이, 사라져가는 신들의 마지막 모습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살고 있던 신들이 사람들과 연결된 끈을 잃고 점점 낯설어지고 희미해져? 때 곳곳에 흉가들이 나타났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제 동생이 몽유병을 앓던 그런 집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집에 살던 신들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 지상의 어느 곳에도 그런 집과 고향은 없다. 이제 그런 고향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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