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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릉까지 커피 마시러 가냐고? 모르시는 말씀~

청록 바다에 빠진 커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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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으로 가는 길. 실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이다. 요즘 발길에 차이는 것이 카페들인데 굳이 강릉까지 커피를 마시러 가냐며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강릉은 지금 커피와 연애 중이다. 고전적인 피서지인 경포대가 있다거나, 경치 좋은 정자에 올라 문장 짓고 시 읊던 최고의 고전 문학가들이 나고 자란 곳이?는 수식어를 빼고도 강릉은 할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는 뜻이다

 
소도시 여행의 로망
고선영 글/김형호 사진 | 시공사
이 책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을 다독이고 위안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의 ‘소도시’들이다. 그곳에서 푸근한 동네 사람들의 노변정담에 끼어 보고, 맛나는 지역 음식도 맛보고,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둘러보면서 여행자는 일상에서부터 가져온 묵직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놓아 버린다. 녹록지 않은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휴식같은 시간. 여행자는 길 위에서 새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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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커피를 참 좋아하셨다. 환갑이 훌쩍 넘은 지금도 하루에 네댓 잔의 커피를 드시는데, 이런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늘 아침마다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려야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집안에 풍겼던 그 따뜻한 커피향은, 나이 들어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난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유난히 커피향에 집착하셨다. 그는 오랫동안 빵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는데, 문제는 그 빵 공장 바로 옆에 커피 공장이 들어선 후부터 생겨났다. 커피 공장이 들어선 뒤 매일 오후 4시쯤이면 공장 주변의 사람들은 늘 발을 동동 굴러댔단다. 빵 공장에서 갓 만든 포근한 빵 냄새를 솔솔 피울 때 커피 공장에서는 커피 볶는 냄새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오후 4시라면 얼마나 출출한 시간이던가. 가뜩이나 슬슬 허기를 느끼는 시간에 갓 구워 낸 달달한 빵 냄새와 진한 커피 향은 사람들의 코를 콕콕 찔러대며 아주 미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늘 출출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커피를 맛나게 드신다고 했다. 갓 뽑아 낸 블루마운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마치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은 양 ‘크~, 좋다’를 연발하며 아버지는 행복해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요즘은 아라비카 100% 원두라 자랑하는 수프리* 인스턴트 커피 마니아가 됐다는 소식을 얼마 전 들었다.)

강릉으로 가는 길. 실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이다. 요즘 발길에 차이는 것이 카페들인데 굳이 강릉까지 커피를 마시러 가냐며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강릉은 지금 커피와 연애 중이다. 고전적인 피서지인 경포대가 있다거나, 경치 좋은 정자에 올라 문장 짓고 시 읊던 최고의 고전 문학가들이 나고 자란 곳이?는 수식어를 빼고도 강릉은 할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는 뜻이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경포대에서 남쪽 안목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유난히 커피집이 많다. 바닷가 관광지의 그저 그런 커피집이 아니라 질 좋은 원두를 들여와 깊고 훌륭한 향과 맛을 구현해 내는 집들이다. 직접 로스팅하고 블렌딩하는 전문점도 몇 집 된다.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 강릉에 현재 커피 전문점이 200여 개가 넘고, 그 중 로스터리 숍은 30군데에 이른단다. 인구가 적어 백화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도시가 매일 아침 커피 볶는 향과 연기에 휩싸인다니 정말 미스테리한 일. 하지만 어떤 현상이든 원인 제공자가 있으니, 강릉이 커피의 도시가 된 것은 죄다 박이추 선생 때문이다.

강릉 연곡면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외진 산골 언덕에 그의 카페 겸 로스팅 작업실인 ‘보헤미안’이 있다. 선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카페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로스팅룸에서 커피를 볶고 있었다. 타닥타닥 기계 안에서 튀는 콩 소리를 배경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서 있던 그는 마치 요술쟁이 같았다.

“오늘은 주문이 많아 저걸 다 볶아야 해요. 한 50kg쯤 되려나.”

작업실 바닥에 쌓여 있는 생두 자루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박 선생이 권한 대로 로스팅 기계 옆 작은 탁자에 앉아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계에 새 콩을 넣은 뒤 후다닥 밖으로 나갔던 그의 손에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보헤미안 믹스란다. 콩 볶는 소리를 음악 삼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꽤 진했지만 부드러웠다. 세련되진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기품있는 맛이다.

“나는, 커피는 인생의 오아시스라고 생각해요. 에너지 충전소랄까.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납디다. 요즘엔 녹차 대신 커피 마시는 스님들도 많던데요. 우리 집 단골 스님도 꽤 되죠.”


한국 커피의 ‘전설’로 통하는 박이추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청년 시절 일본 전역의 목장을 돌며 ‘공동체 목장’을 꿈꾸던 그가 커피에 꽂힌 건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생활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몰라요. 갑자기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럼 도시에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커피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일본 친바시에 있는 커피 학교에 들어갔죠.”

그런 뒤 그는 일본 전역에서 열리는 세미나와 커피 연구소를 찾아다니며 로스팅을 연구하고 연습했다. 그런데 왜 하필 강릉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1988년 서울 혜화동에 커피숍을 열고 이후 고대 앞을 거쳐 오대산 진고개 휴게소와 경포대의 보헤미안을 지나 지금의 연곡면까지의 커피 로드를 담담하게 들려 주었다.


“내가 이곳으로 온 까닭은 커피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예요. 이곳의 바닷바람과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커피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그저 커피의 심부름꾼이고 전달자일 뿐이에요. 커피는 만드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에 의해 그 맛이 결정되죠. 나는 커피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에요.”

그의 이야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인생의 중심은 커피’라는 그의 진심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보헤미안 믹스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쉴 새 없이 부산했다. 가끔 기계 안을 들여다봤고, 다 볶아진 커피콩을 우수수 떨어냈으며,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나가서 드립을 했다. 그는 보헤미안의 모든 커피를 직접 드립한다. 직원이 두어 명 있지만, 그들 역시 주문이 들어오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보스를 불러낸다. 그러니 이곳에 들른 손님들은 모두 박이추 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여행자의 수.첩.


가.기.
강릉에 도착하면 가까운 관광안내소에 들러 커피 여행 지도를 얻는다. 테라로사는 남강릉IC에서 빠져나오면 금방이다. 강릉 시내에서는 101, 105번 버스를 이용해 학산에서 하차하면 된다. 어단리의 커피 공장 외에 강릉 시내점(033-648-2710)과 경포대 해변점(033-648-2780)도 있다.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은 경포해변에서 북쪽 10분 거리의 연곡면에 있다. 그리고 경포해변 남쪽 10분 거리의 안목해변에 커피커퍼 안목해변점(033-653-0100)이 있고,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커퍼 왕산농장은 왕산면 성산 삼거리에서 임계 방면으로 올라가다 오봉 저수지를 지나 대기리 방면으로 5km 직진하면 닿을 수 있다.

먹.기.
강릉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경포대에서 안목해변 가는 길의 송정해변 막국수(033-652-2611) 집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생전 단골집이었는데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막국수(6,000원)와 곁들여 먹는 메밀전(5,000원)도 간간하니 맛있다. 경포호 인근 초당동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초당동 고분옥 할머니 순두부집(033-652-1897)은 강릉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6?25 한국 전쟁 무렵부터 두부를 만들어 온 고분옥 할머니가 여든의 나이에도 매일 새벽 두부를 만들어 상에 내놓는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묵은지와 버섯을 넣은 얼큰한 두부찌개(7,000원)가 최고 인기 메뉴.

머.물.기.
보헤미안에서 펜션도 운영한다. 5개의 룸이 있고 모든 객실에서 영진해변을 바라볼 수 있다. 2인실에 묵으면 아침 식사로 정식 토스트 세트와 모닝커피를 서비스해 준다(7만 원부터). 매주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숙박을 받지 않는다. 보헤미안의 왼쪽 언덕 너머에는 유럽 어느 작은 마을에 있음 직한 전형적인 B&B 스타일의 펜션 노벰버가 있다.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예쁜 정원을 갖췄다(11만 원부터). 안목해변의 헤렌하우스는 로맨틱한 빈티지풍의 인테리어가 특징인 부티크 호텔이다(7만 원부터).

해.보.기.
2009년을 시작으로 매년 10월 말경 강릉에서는 커피 축제를 연다. 강릉 지역의 커피 로스팅 업체와 안목항 거리의 커피숍을 중심으로 시민 포럼, 커피와 관련된 영화 상영, 커피 세미나와 추출법 관련 강좌, 음악회 등이 열흘간 펼쳐진다. 강릉시청에서 커피 여행 관련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지도에는 로스터리 커피 전문점의 위치와 연락처, 정보가 정리돼 있어 여행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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