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 식모 세경의 월급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식모 세경 기억하죠? 세경이 한 달 동안 일하고 받은 첫 월급은 얼마였을까? 바로 50만 원! 한 달 후 올려준 월급 역시 고작 60만 원. “너무 적다” “그렇게 부려먹고 고작 10만 원 올려주냐” “그 돈으로 세경이 어떻게 대학 가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이다” 등 시청자들 반응으로 인터넷이 뜨거웠었지. 그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출퇴근 없이 하루 종일 일하는 세경의 한 달 월급이 적어도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어. 우리나라에는 ‘최저임금법’이 있어. 이 법은 일하는 사람들이 생활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었어. 이 법에 따라 1988년 처음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지. 최저임금은 일하는 사람들의 생계비, 노동자의 평균임금, 노동생산성 등을 고려해서 매년 다르게 결정되고 있어. 올해는 4,110원, 내년에는 올해보다 5.1% 오른 4,320원이야. 최저임금이 매년 조금씩 오르고 있긴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21개국 중 17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59개국 중 48위에 불과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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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에서 신세경이 월급봉투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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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간당 최저임금액 추이(자료: 고용노동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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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 기준 세계 최저임금과 한국의 최저임금 비교(ILO, 2008~2009) /단위: US$ | |
최저임금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세경이가 하루 8시간씩 하루도 쉬지 않고 30일 꼬박 일했다면 한 달에 98만 6,400원을 받아야 맞는 거였지. 그런데 세경이 손에 쥔 월급이 고작 60만 원이었으니 최저임금과 많은 차이가 있지? 물론 최저임금을 받는다 해도 1년에 천만 원이 넘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려면 1년 동안 받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둬야 가능한 일이야.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3인 가족의 최저생계비인 111만 910원도 마련할 수가 없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일하면서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Working Poor)의 한 단면인 것 같아.
‘초’저임금 헐값 노동!청소년 알바의 임금 수준이 세경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다들 짐작할 것 같아. 2년 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cafe.daum.net/nodongzzang)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의 임금 수준을 조사한 적이 있었어. 전국의 1,458명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52.3%가 최저임금(2008년 당시 3,770원)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더라구. 최저임금은 최저의 기준을 정한 거라 했잖아? 그런데 ‘초’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청소년에게는 이 최저임금이 최고 수준의 임금이 되는 것이 현실이었어.
일하는 청소년의 임금 수준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뭘까? 지난 호에도 이야기했듯이 청소년의 노동은 ‘용돈벌이’라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식이 한몫하는 것 같아. 일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청소년도 일하는 동안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노동관계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야.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청소년은 학업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잠시잠깐 용돈 벌러 나왔다’는 이유로, ‘미숙련’이라는 이유 등으로 저임금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 같아.
“일단 알바하려는 애들은 많고 일자리는 별로 없잖아요. 청소년 시켜주는 데가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깐 점점 시급이 싼 애들을 쓰려고 하는 거 같아요.” ─ 민서(가명, 18세)
민서는 시급 2,500원을 받으며 PC방에서 알바를 했어. 민서가 PC방에서 일을 했던 작년의 법정 최저임금은 4,000원이었어. 민서가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청소년이 일할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어. 이런 현실이 청소년의 낮은 임금 수준을 당연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같아.
어느 지역 순대촌에서 중학생 알바에게 시간당 2,500원(2008년, 당시 최저임금 3,770원)의 시급을 줬던 한 사업주에게 이것이 정당한가를 물은 적이 있었어. 그 업주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이야기하더라구.
“내가 최저임금 같은 거 다 줘가면서 알바 쓰려면 대학생이나 성인들 쓰지 뭐하러 어린애들 쓰겠어~! 그리고 어린애들은 어른만큼 일을 못하니까 그 정도 줘도 법적으로 별 문제 없다는데 뭐가 문제야!”
이 사업주는 청소년을 고용해서 헐값으로 부려도 아무 문제 없다는 태도였어. 알바를 고용하는 사업주의 시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최저임금이 현실적으로 오른다고 하더라도 일하는 청소년의 저임금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것 같아. 사업주 말대로 “어린애들은 어른만큼 일을 못하니까” 최저임금법에 따라 정한 최저임금보다 적게 줘도 되는 걸까?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이 법의 기준에도 맞지 않지. 최저임금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도록 되어 있어. 그런데 이 법은 ‘정신 또는 신체의 장애가 업무수행에 직접적으로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 있어. 또, 수습기간을 정한 경우 그 기간(최고 3개월)은 10%를 깎아서 줘도 되고,경비원이나 24시간 설비를 단속하는 사람(‘감시?단속적 업무’를 하는 사람)은 20%를 깎아도 된다고 정하고 있지. 바로 이런 규정들 때문에 청소년, 장애인을 포함해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오히려 최저임금이 제대로 안 지켜지는 것 같아. 최저임금이라면 말 그대로 최저의 기준인데 왜 적용이 아예 안 되는 사람이 있고, 깎아도 되는 대상이 있는 걸까? 이건 정말 빨리 바뀌어야 할 부분인 것 같아.
청소년이 일하면서 많이 겪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수습기간과 관련된 거야. 청소년들이 주로 하는 알바 중에 수습기간이 필요한 일들은 많지 않아. 그런데 사업주들은 최저임금보다 적게 준 게 문제가 될라 치면 수습기간이었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있지. 허드렛일을 시키고 헐값으로 막 부려먹다가 문제가 생기면 수습기간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우기는 건 좀 우습지 않아? 그러니까 이것만은 알아두길 바랄게. 일을 하기 전에 수습기간을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업주가 최저임금에서 10% 깎는 것은 불법이야. 그리고 아무리 길어도 3개월을 넘는 수습기간은 정할 수가 없어.
장시간 노동의 주범, 저임금일하는 청소년의 저임금 문제는 단순히 최저임금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것 같아. 임금이 적다보니 장시간 일을 하게 되고, 쉼없이 장시간 일한 결과 건강과 사회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지.
충북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수민(가명, 19세)이는 학교가 끝나면 종종 택배물류센터로 알바를 하러 가. 같이 일하는 사람이 30명쯤 되는데 그중 청소년이 15명 정도 된다고 했어. 택배물류센터에서 수민이가 하는 일은 전국으로 보낼 물건을 분류하는 일이야. 이 일은 밤새 하는 거야. 일을 마치면 오전 8시를 넘기기 일쑤야. 등교하려면 일을 다 못 마치고 아침도 거른 채 바로 가야 하지. 쉬는 시간 짬짬이 잔다 해도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지 못해 선생님한테 혼나는 일이 많다고 해. 그래도 수민이가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충북 지역에는 수도권처럼 알바할 기회가 많지 않고 임금도 적기 때문이래.하루 밤샘하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5만 원은 수민이의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정말 큰돈이기 때문에 몸이 고단해도 달려가게 되거든.
치킨집 오토바이 배달을 했던 가람(가명, 19세)이 역시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가 5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일했대. 주말에는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했다고 해. 그러면서 받은 시급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4,000원. 가람이는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일한 것뿐 아니라 휴일, 야간(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 사이), 연장(청소년의 경우 하루 7시간, 한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 노동을 했기 때문에 가산수당(휴일, 야간, 연장 노동을 하면 더 받는 임금)까지 환산하면 굉장한 임금의 손실을 보면서 일을 한 셈이야(임금 계산과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게 될 거야).
수민이와 가람이는 임금이 적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고. 수민이는 밤샘 알바를 시작하면서 수면부족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어. 가람이는 빨리빨리 배달해야 하다보니 늘 교통사고나 찰과상 같은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았다고 해. 청소년 알바를 고용하는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이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청소년이 밤샘 노동에 시달리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임금을 보충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또 다른 형태의 임금 갈취, ‘꺾기’혹시 ‘꺾기’라고 들어봤어? 지금까진 사업주가 불법으로 알바의 임금을 갈취한 사례였다면 이건 합법(?)으로 갈취하는 방법이지.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적절하게 쉬어야 하잖아? 그걸 법으로 정한 것이 ‘휴게시간’이라는 거야. 휴게시간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데 하루에 4시간 일하면 30분 ‘이상’, 8시간 일하면 1시간 ‘이상’ 보장하도록 되어 있어. 그리고 휴게시간 동안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지. 보통의 사업장은 휴게시간을 점심시간으로 보장하고 있어.
이렇게 일하는 도중에 보장하고 있는 휴게시간이 30분 ‘이상’ 혹은 1시간 ‘이상’이라고만 정해져 있어서 악용되는 사례가 있는데 이게 바로 ‘꺾기’야.해외 브랜드인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먼저 시작된 잘못된 사례지만 현재는 많은 사업장에서 이를 악용하고 있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써야 하는 게 근로계약서라고 했지? 이 근로계약서에 일하는 시간이랑 휴게시간을 정할 때 “근로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휴게시간: 오후 2시~오후 5시” 이렇게 정하는 거야.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 중에 휴게시간을 3시간으로 정하고는 그 시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주질 않는 식이지. 이렇게 되면 휴게시간 3시간 동안 별다른 일을 할 수 없어 대기하면서도 임금은 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지. 이렇게 법의 허점을 악용한 사례에 대해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노동부에 실태파악과 근로감독이 필요하다는 권고안을 내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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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올려올려”, 지난 6월 최저임금 심의가 열리고 있는 최저임금 심의위원회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청소년 노동자 | |
근로감독 취약하면 최저임금은 종이호랑이이렇게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많고 법을 악용하여 청소년 알바의 노동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많은데 행정감독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야. 노동부(고용노동부)와 지방노동청에 청소년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으니 실태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
노동부는 2009년 겨울방학 동안 청소년 알바 고용 753개 사업장을 근로감독한 결과 77.3%가 노동법을 위반한 사업장이라고 발표했어. 그중 최저임금을 알려주지 않은 경우가 371건(21.7%)으로 가장 많았다고 해. 그런데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은 고작 30건(1.8%)에 불과하다는 거야. 이상하지? 다른 조사결과(2008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최저임금 미만 52.3%,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최저임금 미만 63.7%)와 너무 큰 차이가 있지? 이런 차이가 있는 이유는 뭘까? 이런 차이는 근로감독 대상과 방법, 시기의 문제에서 생기는 것 같아.
청소년이 주로 일하는 사업장은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인데 근로감독을 주로 하는 사업장은 대형 프랜차이즈나 임금대장이 잘 갖춰져 있는 규모 있는 사업장이 대부분이야. 그리고 청소년 알바는 방학 때만 이뤄지는 게 아니어서 상시적인 근로감독이 필요한데 방학 때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근로감독이 적절하게 이뤄진다고 보기 어렵지.
그리고 근로감독을 하러 가기 전에 알리고 가기 때문에 사업장은 미리 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 또한 근로감독의 허점이라 할 수 있지. 근로감독을 할 때도 사업주에게 질문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래. 알바를 하면서 근로감독관을 봤다는 청소년이 거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그리고 청소년 노동자에게 질문할 때에도 사업주가 보는 앞에서 “사업주가 최저임금을 지키고 있냐?” “부당한 일을 당한 적은 없냐?”고 묻는다면 정확한 사실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지. 근로감독을 할 때는 사업주와 청소년 노동자가 독립된 상태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제대로 된 답변이 가능할 거야.
근로감독의 미비한 점과 함께 근로감독 후 솜방망이 처벌도 큰 문제라 할 수 있어. 2009년 겨울방학 동안 점검한 결과 77.3%의 사업장이 법을 위반했는데 사법처리결과는 고작 1건이었거든. 대부분 시정조치나 주의 정도로 그치고 마는데 같은 사업장을 3년 사이에 다시 하지 않는 이상, 법 위반 사업장이 사법처리되기는 쉽지 않아. 사업주들이 안이하게 대처하는 이유지.
국제노동기구(ILO)는 2008년 「세계임금보고서」에서 “근로감독행정이 취약하고 벌칙 수준이 낮으면 최저임금은 종이호랑이가 된다”고 강조한 적이 있어. 근로감독행정이 필요한 곳에 제때 이루어지고, 사후 엄격하게 법 적용을 한다면 적어도 연우(가명, 18세)의 바람처럼 청소년 알바의 최저임금이 지켜지는 날이 가까이 오지 않을까?
“최저임금 올려도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지키는 데가 없으니까요. 이런 건 이렇게 저런 건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하나도 안 지켜지니까요.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 연우(가명, 18세)
최저임금의 현실화, 청소년 노동자 권리회복의 시작청소년 노동자 외에도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210만 명(2010년 3월, 전체 임금노동자의 12.8%)이나 되는 것이 현실이야. 그리고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활용하는 주요 법률은 14개, 사안별 제도는 20개로 모두 34개의 법 제도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는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최저임금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지. 이렇게 중요한 기준이 되는 최저임금이 매년 형식적인 줄다리기 끝에 몇백 원 올리는 식으로 결정되는 건 매우 유감이야.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제대로 적용하는 것은 청소년 노동자의 권리회복을 위한 시작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