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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연재] 박영란 「나의 고독한 두리안나무숲」②
내가 데니슨 아줌마에게 높은 점수를 준 이유는 아줌마가 한국 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데니슨 아줌마는 딸 둘을 보살피기 위해 여기 와 있는 사람이다.
생활비와 엄마, 둘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둘은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주 다른 성질의 어떤 것이다. 물론 쓸모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생활비가 없으면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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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독한 두리안나무숲」①
「나의 고독한 두리안나무숲」③
「나의 고독한 두리안나무숲」④
시인아저씨네 집에서 두 집 건넛집인 데니슨 가 14번지에는 이 산타로사 빌리지 안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점수를 높게 준 한국사람이 산다.
내가 데니슨 아줌마에게 높은 점수를 준 이유는 아줌마가 한국 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데니슨 아줌마는 딸 둘을 보살피기 위해 여기 와 있는 사람이다. 제임스와는 다르다. 집도 넓고 방도 많은 집이라서 아줌마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한국인 유학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줌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굉장히 품위 있어 보인다. 돈말고 다른 가치가 데니슨 아줌마에게는 있는 것 같다.
데니슨 아줌마는 독일산 승용차 볼보와 두 딸을 가졌다. 아프리카 북부의 사막모래처럼 아주 멋진 색을 가진 승용차 볼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줌마의 두 딸인 대학생 언니들에 대해서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두 대학생 언니는 필리핀 국립대학 ‘UP’에 다니며 치과의사가 될 거라고 했다. 이 언니들은 너무 바빠서 잘 만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나는 데니슨 아줌마의 차에 타본 적도 있다. 내가 아직 라구나 벨 에어에 다닐 때다. 하루는 스쿨버스를 놓치고 말았는데 아줌마가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주었다. 스쿨버스를 놓치면 제임스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제임스는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데다 아침식사 중인 필리피노 운전기사를 귀찮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임스에게 야단맞는 일을 피하게 해준 아줌마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아줌마의 차에 탄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회색 가죽이 얼마나 부드럽고 냄새가 좋은지를 알았다. 은근한 광채가 나는 가죽의자에 앉아서 살펴본 아줌마는 볼보보다 더 멋지면 멋졌지 덜하지는 않았다. 특히 피부는 굉장했다. 정말 기막힌 색이었다. 어려 보인다거나 투명하다거나 하는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광채가 도는 피부였다. 대학생 언니들 식으로 말하자면 바로 ‘물광’ 피부다. 사실 나는 어린애들의 보송보송한 피부보다 데니슨 아줌마처럼 노력으로 얻은 피부를 더 좋아하기는 한다.
나는 그 아줌마가 쓰는 화장품이 어느 회사 제품일까 물어볼까도 했다. 그래서 그 화장품을 엄마에게 알려줄까도 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은 이렇게 멋진 아줌마에게 너무 몰상식한 짓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기도 하고, 만일 유명회사 화장품이라면 엄마가 읽는 여성잡지 광고에 나올 것이니 엄마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결정은 옳았다. 하여튼 그날 아줌마한테서 풍기던 화장품 향기는 내가 맡아본 화장품 향기 중에서 가장 근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 세상에 데니슨 아줌마처럼 사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처럼 싸구려 미용사 딸이나, 제임스처럼 죽자고 돈을 버는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이나, 그런 제임스를 믿고 한집에 열 명씩 우글거리면서 유학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품위 있는 삶인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데니슨 아줌마네 현관문을 열리게 했는지, 현관문이 활짝 열리면서 아줌마가 나타났다. 나는 아줌마와 눈이 딱 마주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아줌마는 내가 아줌마가 후원하는 케냐의 한 소녀라도 되는 양 친절하게 웃어준다. 활짝 웃는 것 같으면서도 이는 하나도 안 보인다.
게다가 데니슨 아줌마는 날씬한 허리와 작은 엉덩이를 아주 약간씩 비틀면서 걷는데 나는 이런 걸음걸이를 세상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아주 섹시하다.아줌마의 고난도로 세련된 태도에 짓눌린 나는 손에 든 초콜릿 우유통을 뒤로 감출 수밖에 없다.
아줌마가 자주 들고 다니는 악어아랫배무늬 백에서 뭔가를 꺼낸다. 초록색 알 두 개가 반짝거리는 선글라스다. 검은 초록색 유리알 두 개가 아줌마 얼굴 절반을 가려버린다. 아줌마는 좋은 역할만 맡아서 하는 영화배우 같다. 어쩌면 아줌마는 서울에서 진짜 영화배우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선글라스가 저렇게 잘 어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줌마가 영화배우였는지 아닌지 꼭 물어볼 생각이다.
“학교 안 가니?”
아직 내 소문을 듣지 못했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줌마가 묻는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언제 과자 먹으러 올??”
“언제요?”
“아무 때나.”
“이따가 밤에 가도 돼요?”
“그래, 여덟 시쯤이 좋겠다.”
“만일 오늘 못 가면 다음에 언제라도 저녁 여덟 시에 가도록 할게요.”
드디어 아줌마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초대까지 받았다. 여기 산타로사 빌리지에서 데니슨 아줌마의 초대를 받은 아이는 내가 처음일 것이다. 어쩌면 아줌마의 초대를 받은 마지막 아이도 나일지 모른다. 아줌마가 보는 앞에서 기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이 정도 초대쯤이야 나에게 별다른 일도 아니라면서 서 있으려 했지만 힘들다. 나를 초대해준 것에 대한 답례로 아줌마의 볼보 자동차가 데니슨 가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랜만에 생긴 ‘약속’을 잊지 않으려면 빨리 방에 들어가서 뭔가 표시를 해두어야겠다.
그런데 막상 내 방이 있는 모넷 가 28번지에 들어오니 이런 시간에 집 안에는 아떼 로자와 청소를 도와주러 온 아떼 실리와 나, 뿐이라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가슴속에 쌓여 있던 벽돌들이 허물어져 내리기라도 하듯 맥이 풀린다. 나는 더위에 지친 고릴라처럼 걸어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냉장고에는 사모님이 매직으로 아이들 이름을 꼼꼼히 써놓은 초콜릿 우유병들이 줄줄이 꽂혀 있다. 어떤 병은 반쯤 마셨고, 어떤 병은 아직 뚜껑을 따지도 않았다. 그 옆에 내 우유병을 꽂아넣는다. 냉장고에 무언가 내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약간 우쭐해지는 느낌이 든다. 조금 전처럼 아주 죽을 맛은 아니다.
문제는 기분이 아니라 시간이다. 죽을 맛이 드는 기분쯤이야 냉장고에 든 내 초콜릿 우유를 생각하면서 달랠 수 있지만, 내 또래의 아이들은, 아니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도 세계 어디서나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문제라는 말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두려운 이유는 엄마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아주 훌륭하게 키우고 싶어했다. 이건 정말이다. 만일 엄마가 나를 잘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더라면 유학까지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말했다시피 엄마는 동네 미용실 미용사였다. 동네 미용실의 미용사가 자기 딸을 다른 나라로 유학 보낼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헤어 쇼’ 같은 대회에 나가는 창의적인 미용사가 아니라 배운 대로밖에 할 줄 모르는 아주 평범한 미용사다. 이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엄마는 미용사를 하기에는 아까운 측면이 있다. 그것은 엄마의 독서집중력을 보면 그렇다. 엄마는 미용실에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여성잡지를 읽었다. 엄마가 잡지를 읽는 법은 다른 사람들처럼 슬슬 넘기면서 대충대충 사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꼼꼼히 읽었다. 특히 잡지에 나오는 유명인사 인터뷰 기사들은 아주 집중해서 읽었다.
엄마가 잡지를 펼쳐들고 진지하게 읽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학교수처럼 보인다. 그렇게 신중하게 읽은 잡지의 기사들이 엄마의 사상을 만들어주었다. 엄마는 잡지에 나오는 유명인사들이 가르쳐준 대로 살았다. 아무래도 유명인사들이 보통사람들보다 뭔가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유명인사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아줌마건 나이 많은 아줌마건 파마 끝마무리는 꼭 엄마가 만져주어야 만족하는 것을 보면 엄마에게 영향을 미친 유명인사들이 괜히 유명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다시 말해, 동네에 미용의자 다섯 개에다 보조 두 명을 둔 미용사의 딸인 내가 영어를 배우러 유학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잡지에 출연하는 유명인사들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로서는 사회에 유명인사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그 많은 말을 어떻게 다 믿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엄마는 그 점을 도리어 엄마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 것 같다.
엄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잡지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엄마가 곗돈을 떼였거나, 주식사기를 당했거나 해서 한 푼도 없는 상태라 해도 나에게 전화해줬으면 좋겠다. 만약에, 이건 정말 만약이지만, 엄마가 밤이면 찾아오던 그 아저씨와 둘이서만 살고 싶어서 나를 버린 것이라 해도 전화를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런 시간에 엄마 생각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엄마가 나를 버릴 마음이 있다고 해도 나는 엄마를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나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말았?면 좋겠다. 그냥 나를 친구 정도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엄마가 경솔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유명인사들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가 언제까지고 기다리라면 기다릴 것이고, 온갖 말썽을 피워 제임스가 진절머리를 친 나머지 내 보호자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나를 영종도 공항에 내다버릴 수 있도록 유도하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제발 엄마가 읽는 잡지 속 유명인사들이 도움이 되는 말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엄마 생각만 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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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영어공부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각자 개인 가정교사와 붙어앉아 두 시간씩이나 영어책을 뒤적이는 아이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나의 ‘룸메’ 연서블랑카도 영어보다 생활비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올지 모르겠다. 어쩌면 연서블랑카에게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서블랑카네 아버지는 서울 목동에서 굉장히 큰 갈비집 사장이라고 했다. 갈비집은 미용실만큼 위험한 장사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엄마도 처음부터 직종 선택을 더 신중하게 해야 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연서블랑카는 갈비집 딸답지 않게 생겼다.
책상에 붙어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하얀 얼굴이 공부하는 건지 슬픔에 빠져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탈색된 나뭇잎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서의 영어식 이름을 블랑카라고 지어붙인 것은 아주 잘된 선택 같다. 한국식 이름 연서보다 영어식 이름 블랑카가 더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연서블랑카라 하지 않고 블랑카라고만 할 것이다. 어쨌든 블랑카가 포유류처럼 보일 때는 다른 한국인 하숙집에 사는 미키윤수를 만날 때뿐이다.
미키윤수는 잘생겼다. 미키윤수가 잘생겼다는 것을 설명하다가는 도리어 미키윤수의 얼굴을 망칠 것만 같아서 그만둔다. 다만, 미키윤수가 어떤 못된 짓을 한다고 해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잘생겼다는 사실은 말해둔다. 게다가 음료수 캔을 집어들 때 손가락이 길어 보이게 하는 ‘스킬’도 알고 있다. 여자아이들 중에는 미키윤수의 얼굴보다 그 길고 흰 손가락에 미쳐 있는 애들도 꽤 된다. 언젠가 사라인선 언니가 헐리웃 대표미남이라는 남자배우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미키윤수에 비하면 하이에나와 다름없는 마구잡이식 얼굴이다. 머리칼을 금빛으로 물들이지 않았지만 곱슬곱슬한 금발인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미키윤수를 싫어하는 여자아이는 없다.
물론 나도 미키윤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뿐이지 미키윤수를 만져보거나, 미키윤수와 키스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꿈을 꾸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블랑카는 바로 그렇게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 중 하나다. 블랑카는 미키윤수가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자기 차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가정교사 미란다와 마주앉아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미키윤수만을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블랑카는 세 달 전에 생리를 시작했기 때문에 남자아이와 키스도 할 수 있고 서로 만져볼 수도 있고, 잠을 자볼 수도 있다. 미키윤수의 입장에서 보면 블랑카는 사귈 만한 자격이 되는 셈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키윤수가 못생긴 여자아이와는 사귀어도 아직 생리를 시작하지 않은 여자아이와는 만나지 않는다는 소문 때문이다. 미키윤수는 여자아이와 단둘이 있게 되면 먼저
“너 생리 시작했냐?”
라고 묻는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니 미키윤수는 블랑카에게는 실제 인물이고 나에게는 아직 브로마이드 속의 인물에 불과하다. 미키윤수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건 나는 첫 생리가 터진다 해도 미키윤수와 키스해볼 마음은 없다. 아무리 잘생겨도 예의 없는 바람둥이는 질색이다. 미키윤수는 그냥 심심할 때마다 그 잘생긴 얼굴이나 떠올려보는 상대로 족하다. 그것도 지겨우면 브로마이드나 보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실은 다 쓸데없다. 지금 내 입장에서는 미키윤수나 브로마이드 속의 배우들이 생활비만큼 절실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활비와 엄마, 둘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둘은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주 다른 성질의 어떤 것이다. 물론 쓸모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생활비가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렇지만 나 같은 나이의 아이에게 생활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생활비만 가지고 살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엄뚸라는 존재는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무척 중요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외할머니도 외할머니의 엄마가 찰밥을 좋아했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무덤에 가서도 한참 동안 앉았다가 오는 것을 보면 엄마라는 존재는 생활비와는 다른 차원에서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다. 그러니까 당장 급하다고 해서 엄마보다 생활비를 더 중요한 존재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엄마와 생활비 때문에 잔뜩 신경을 쓰다보면 전화가 하고 싶어진다. 물론 엄마가 쓰던 휴대폰 번호는 이제 죽은 번호가 되었지만 엄마가 하던 미용실 전화번호는 아직 살아 있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받는다. 지난번에도 통화한 적이 있어서 안다. 그런데 엄마가 하던 미용실에 전화를 걸 때는 발신자부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걸어야만 한다. 생활비도 오지 않는 처지에서 발신자부담으로 전화하는 것은 도둑질이나 마찬가지다. 생활비가 밀리지 않고 제 날짜에 맞춰 오는 아이들도 엄마에게 전화 걸 때는 꼭 수신자부담으로 전화하는 것이 이곳 규칙이다. 내가 몰래 발신자부담으로 전화한 것을 제임스가 알게 되더라도 쫓겨나지는 않겠지만 신뢰에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전에 외할머니가 그랬었다.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할수록 정직해야 한다고.
꼭, 쫓겨나거나 제임스에게 잔소리 듣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외할머니 말을 들어서도 아니다. 내가 발신자부담 전화를 쓰지 않으려는 이유는 순전히 엄마 체면 때문이다. 자식을 맡겨놓고 생활비도 안 보내고 연락도 끊어버린 엄마를 두고 사람들은 도둑년이나 사기꾼이나 파렴치한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와중에 내가 도둑전화를 쓴다면 정말 그 엄마에 그 딸이 될 것이기에 발신자부담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엄마 이미지를 관리해주기 위해서라도 도둑전화 같은 것을 쓰면 안 된다. 그래야지만 나중에 엄마가 지금 내 생활비를 안 보내고 연락처를 끊은 행동들이 도둑년, 사기꾼이라서가 아니라 말 못 할 사정이 생겨서 할 수 없이 한 행동으로 이해받을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수신자부담 전화는 편리하다. 받는 쪽에서 돈을 낼 의향이 있으면 받으면 되고 그럴 마음이 없으면 안 받으면 될 일이다. 지난번에 받았던 것으로 봐서 이번에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내 전화를 귀찮아 했던 것으로 봐서 이번에도 귀찮아 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안다. 내 전화를 귀찮아 하던 그 아줌마는 어떻게 생긴 아줌마인지 궁금하다. 우리 엄마처럼 생겼을 수도 있고, 엄마 친구 당산동 미용실 아줌마처럼 머리칼을 빨갛게 물들인 아줌마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긴 아줌마든 미용실 아줌마는 모두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데니슨 아줌마네 집에 가봐야겠다. 어쩌면 아줌마는 밤 여덟 시쯤만 되면 시계를 몇 번씩이나 올려다보면서 졸음을 참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밤 여덟 시쯤에 가겠다고 했으니 그 시간은 꼼짝 못 하고 갇혀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오늘 밤을 위해서 나는 아침에 사라인선 언니에게 밤 외출 허락까지 다 받아두었다. 확실히 하고자 사라인선 언니가 데니슨 가 14번지 아줌마네 집까지 가서 나를 아줌마 앞에 데려다주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한 번 밤 외출을 하려면 이렇듯 절차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사라인선 언니가 데니슨 아줌마에게 나를 넘겨주면서 아홉 시까지 돌려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나는 약간 체면을 구겼다. 아줌마와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사귀어볼 생각인데 사라인선 언니는 나를 철모르는 어린아이라도 맡기는 것처럼 하니 말이다.
데니슨 아줌마 쪽에서는 사라인선 언니의 태도를 환영하는 눈치다. 남의 집에 유학 와 있는 아이를 잘못 집에 들여놓았다가 자칫 받게 될 오해나 위험을 사라인선 언니가 정리해준 측면이 없잖아 있는 것이라서 그렇다. 사라인선 언니의 당부에 대한 답으로 아줌마는 아홉 시에 나를 모넷 가 28번지 현관문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한다.
내가 보기엔 예의범절이나 말투나 어느 것 하나 잘못된 것이 없는 아줌마인데 사라인선 언니는 지나치게 쌀쌀맞게 구는 것 같다. 이건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아마도 사라인선 언니의 외교관계가 원래 부드럽게 되지 않는가 보다. 사라인선 언니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데니슨 아줌마는 내 친구이지 사라인선 언니의 친구는 아니니까 내가 이해해야 한다. 아줌마가 먼저 나에게 저녁 먹었냐고 물어본다. 이건 인사치레이기 때문에 나 역시 대충 대답한다.
“네.”
그러자 아줌마가
“피자 시켜 먹을까?”
한다.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피자 시켜 먹자는 말이 마치 엄마한테 연? 왔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긴, 나에게 피자 시켜 먹자고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엄마밖에 없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싫다, 좋다, 대답하기도 전에 데니슨 아줌마는 전화기를 들고 주문을 시작한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점은 우리 엄마와 다르지만 나는 아줌마의 딸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친구가 되려고 찾아온 손님이기에 아줌마가 하자는 대로 맡겨놓으려 한다.
데니슨 아줌마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보기도 전에 피자가 왔다. 아줌마는 피자가 올 때까지 계속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했다. 피자가 오자 한 손으로 받아서 내 앞에 펼쳐주고 다시 통화를 계속한다. 어른과, 더구나 데니슨 아줌마처럼 멋쟁이 어른과 조금이라도 사귀어보려면 이런 일쯤은 참아야 한다.
내가 피자를 세 조각이나 먹을 동안 데니슨 아줌마는 계속 통화 중이다. 데니슨 아줌마가 통화하는 내용을 시시콜콜 떠들어대고 싶지 않다. 이건 아줌마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친구인 내가 보호해주고자 하는 뜻에서다. 돈 이야기라는 것만 밝혀둔다. 아줌마처럼 생활비 따위는 걱정 없이 살 것 같은 사람도 돈 문제로 이렇게 오래 전화통화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다.
드디어 아줌마가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맥주를 한 캔 들고 나온다.
“나는 피자 먹을 때 맥주 마시는 습관이 있단다.”
나는 아줌마가 나를 아이가 아니라 친구로 생각하고 솔직하게 대해주어서 고맙다. 하긴 우리 엄마도 미용실 일이 끝나면 맥주를 마시곤 했었다.
“맥주 많이 마시면 배 나와요.”
아줌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픽, 웃으면서 내 볼을 톡, 건드린다.
“너는 아는 것도 많구나.”
“언니들은 다 어디 갔나요?”
아줌마가 식은 피자 한 조각을 들어올리면서,
“그러게, 아직 안 오네?”
한다.
“이 시간에는 주로 아줌마 혼자 있어야 해요?”
“이런, 어린 손님이 별 걱정을 다 해주네?”
하면서 아줌마가 다정하게 웃어주는데, 치아가 꼭 우리 엄마를 닮았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아줌마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질문을 고르느라 애쓸 수밖에 없다. 어떤 질문을 해야 아줌마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어서 다음에 또 초대해줄까? 아줌마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맥주만 마시고 있다. 조금 지루해진 나는 일어서서 벽걸이 대형 평면 텔레비전 밑에 세로로 몇 줄 벽돌처럼 쌓인 책들 앞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낡은 과학전집 같은 것들과 시기가 지난 과학잡지들인데 아줌마네 세련된 집 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버리려고 내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것 있으면 가져가라.”
“아니요, 빌려갈게요.”
“그러든지.”
나는 별들에 관한 특집기사가 실린 <과학 사이언스> 한 권을 골라서 내 애완견인 양 옆구리에 끼고 소파에 앉아 다리를 조금 흔들어본다. 약간 지루해지려고 한다.
“너는 어디서 왔니?”
아줌마가 묻는다.
“서울이요.”
“서울 어디?”
“독산동이요.”
“독산동?”
“거기서도 유학 보내는 사람이 있네?”
데니슨 아줌마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데니슨 아줌마 같은 사람은 독산동에 있는 우리 엄마 미용실 같은 데서 머리를 손질해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줌마는 우리 동네에 한 번도 안 가봤는지도 모른다.
“아줌마는 어디서 오셨어요?”
“나?”
“네.”
“동부이촌동.”
“서울에 그런 동네도 있어요?”
아줌마가 나를 보면서 웃는다. 아줌마와 나는 비긴 셈이다. 나는 아줌마가 살던 동네를 모르고 아줌마는 나와 우리 엄마가 살던 동네가 어떤 곳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니까.
“아줌마는 머리 어디서 하세요?”
“파세오 상가 미용실에서 하지!”
“우리 엄마는 미용사예요.”
아줌마가 나를 아주 자세히 쳐다보면서,
“어디 미용실에 있으시니?”
묻는다.
“독산동 동네 미용실 원장이에요.”
나는 사람과 사람이 친구가 되려면 무엇이든지 정직하게 말해야지 멋지게 꾸며서 근사하게 말하면 뒤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데니슨 아줌마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게 힘들다.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도 데니슨 아줌마가 깜짝 놀랄 만한 근?한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거짓말은 더 싫다. 이래서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아줌마도 나에게 뭔가 하나쯤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런 벌써 아홉 시네!”
집주인이 시간을 말하는 것은 이제 그만 손님이 돌아가주기를 바란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나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아줌마에게 빌린 과학잡지를 안고 아줌마보다 앞서 현관을 나선다. 이 과학잡지 한 권이 다시 아줌마네 집으로 올 수 있게 해줄 이유가 될 것이다.
아줌마는 나를 모넷 거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생각할 것도 있고 해서 혼자 걸어가겠다고 우겼다. 사라인선 언니와의 약속은 걱정하지 말라고 잘 설득도 했다. 데니슨 아줌마가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자 에스파냐 시인아저씨와 필리피나 아줌마가 사는 집 쪽으로 걸어간다. 일층 거실에서 푸른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필리피나 아줌마와 시인은 지금 텔레비전을 보는 모양이다. 내가 ‘나의 고독한 숲’으로 지정해둔 데니슨 가 12번지 마당은 조용하다. 사나운 닭들도, 세탁기 위의 고양이도, 두리안나무도, 모두 잠들어 있는 것만 같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집들은 그 안에 필리피노 워커들이 있지만 무섭지 않다. 빌리지 안에 일하러 들어온 워커들은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거리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별들은 어쩐지 반짝일 기분이 나지 않는 날인 것 같고, 뾰족하기만 한 초승달은 빛을 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도 쓸쓸한 기분이 든다. 어두운 밤에 혼자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까만 거미가 된 기분이다. 아마도 내가 데니슨 아줌마에게 뭔가 기대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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