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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200만원 미만의 일자리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上)
그런데도 경총은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한계기업들이 고용을 줄여서 그 피해가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실제로 1988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최저임금은 월급 기준으로 11만 4천 원에서 83만 6천 원으로 7.33배 올랐는데,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44만 6천 원에서 279만 5천 원으로 6.26배 올랐다. 언뜻 보면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최저임금이 더 많이 오른 것처럼 보인다.
전체 노동자 평균 대비 최저임금의 비율을 보면 1988년 25.5%에서 지난해 29.9%까지 늘어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3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과 최저임금의 차이는 195만 9천 원이나 된다. 빈부격차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분위와 하위 10분위의 임금 격차는 2001년 4.81배에서 지난해 5.25배 수준까지 오히려 늘었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최악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노동자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를 저임금 노동자라고 보면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27.6%나 된다. 1위인 벨기에는 이 비율이 6.3%밖에 안 된다.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꼴찌에서 두 번째다. 이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더 낮은 나라는 24% 수준의 멕시코밖에 없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영계는 그나마 안 깎으면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마감시한을 넘기도록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다가,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만들면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에는 2.75% 올리는 데 그쳤는데 이는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3.0%에도 못 미친다. 실질 인상률은 마이너스인 셈이다.
경총은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 영세?중소기업들이 도산하고 근로자들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릴 것”이라면서 “노동계가 진정한 의미에서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바란다면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최저임금연대는 “최저임금제도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미미하며, 오히려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반박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는 “이론적으로 최저임금은 저소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에 위협이 되지만 이러한 현상을 증명할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솔로 교수는 그 이유로 “기업들이 임금 부담 증가분을 생산성 증대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최저임금이 중소?영세 사업체의 생산성 정체를 더욱 심화시켜 경쟁력 향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흔히 임금과 기업의 실적이 상충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가계소득이 줄면 구매력이 줄어들어 내수시장이 위축된다. 임금 인상을 계속해서 억제하다보면 기업들의 이익은 늘어나는데 성장률은 급감하는 딜레마에 빠져들게 된다. 2010년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10%를 웃돌다가 1990년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추락해, 지난해에는 2% 수준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988년 140조 5천억 원에서 지난해 1,063조원으로 7.57배나 늘어났다. 국민총소득(GNI)을 봐도 마찬가지다. 139조 6천억 원에서 1,068조 7천억 원으로 7.65배나 늘어났다. 경제 규모가 늘어난 만큼 소득이 늘어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구조 개편을 계속해왔다. 기업의 이익은 주식시장으로 빠져나갔고, ?동자들의 처우는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2000년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은 철저하게 수출에 의존해왔다. 그나마도 한국은행의 인위적인 환율 조작에 의한 일시적인 쏠림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자본과 노동의 양극화가 곳곳에서 문제를 낳고 있다. 2005년 이후 부동산 거품이 경제를 견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역시 착시현상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고, 성장 잠재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다.
노동계 일부에서는 민주노총 등의 지도부가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기업 노동조합이 중심인 민주노총이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등의 문제와 싸우느라 정작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실제로 최저임금 문제는 늘 노동계의 현안으로 등장하지만 막연한 구호에서 그칠 뿐, 해마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맥없이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공익위원의 구성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노사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에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셈인데, 이들은 노동부장관의 위촉을 받아 대통령이 선임한다. 대개는 정부산하 연구기관 연구원들이 선임되는데 이들은 정부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계에서는 공익위원을 2배수 이상 노사 양쪽에서 각각 추천해서,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공정하게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많지만, 제대로 된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업장이 1만 4,896개로 2007년 4,072개에서 2.7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다가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는데 대부분 경고에 그치는 데다 반복해서 적발되더라도 벌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강제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취업정보 사이트 커리어가 지난해 아르바이트 채용공고 9만 4,010건을 분석한 결과, 17개 직종 가운데 절반이 넘는 8개 직종의 최저시급이 4천 원 미만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경우 최저임금이 3,570원에 지나지 않았다. 홀서빙이나 행사보조, 매장관리, 주유, 세차 등의 일도 최저임금 미만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개인사업자들인데다가 5인 미만의 사업장도 많아서 노동법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지난 4월에 설립된 청년유니온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청년유니온은 비정규 단기 노동자들과 아르바이트생, 청년백수와 예비백수들의 노동조합이다. 청년유니온은 사업장 중심의 기업노조가 아니라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일반노조의 형태를 띤다. 이 단체는 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노동부가 노조 설립 요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계속 반려하고 있다.
조합원의 대부분이 이른바 ‘88만 원 세대’인 청년유니온은 특히 최저임금 투쟁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이미 안정적인 직장을 확보한 기득권 노동자들이 아니라, 예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예비 백수들이 최저임금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당사자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노조의 인가를 받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연대해 단체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더 이상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 시급 3천 원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4,110원을 받아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자들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인 1만 3,369원까지 세 배 이상 올려받아야 한다. 이 기준은 아르바이트생이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거나 백수거나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모든 기업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신나는 상상을 해보자. 전국의 88만 원 세대들이 단결해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과 주유소, 통닭집, 피자집, 대형할인매장을 공격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의 최대 무기는 불매운동이다. 노동을 착취하는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개선되지 않을 경우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우리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
최저임금 4,110원의 불편한 진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