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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맑은 새가 살고 있었다 - 이상권 「날다」①
강하면서도 순수한 눈빛 - 이상권 「날다」②
새들은 모두 자기 집을 짓는다 - 이상권 「날다」③
4.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제 집이 완성되었다. 하늘눈은 설레는 마음으로 바위옷이 오목하게 들어간 집에 앉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집은 본 적이 없어. 오목눈이들 집보다 더 근사해. 다른 새들이 본다면 우리 집이 오목눈이들 집보다 더 잘 지어졌다고 할 거야! ‘이제 보니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숲 속의 예술가군요’ 하고 감탄할 거야.”
번개부리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움찔하였다. 하늘눈이 앉아 있는 오목한 집에 자신도 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럴 거야. 오목눈이가 지은 집보다 훌륭하다고 할 거야. 오목눈이가 지은 집은 비를 맞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집을 비울 수가 없어. 알을 보호하려면 온몸으로 비를 막아야 해. 하지만 우리 집은 비 한 방울 맞지 않아. 그야말로 완벽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우리 집은 끄떡없어. 그 어떤 놈들이 해코지하려고 해도 끄떡없어. 우리 집이 최고야.”
번개부리는 몸을 떨면서 소리치고 싶은 충동까지 꾹 눌렀다.
“네가 도와줬기 때문이야. 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어.”
하늘눈은 애써 모든 공을 번개부리에게 돌렸다.
“아니야, 나는 그냥 재료를 물어다 주었을 뿐이야. 집을 꾸민 건 너야. 너야말로 오목눈이보다 빼어난 예술가야. 최고야.”
번개부리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절벽으로 날아가던 번개부리의 눈에 붉은 꽃구름이 가득 찼다. 진달래꽃이 엄청난 아름으로 피어 있었다. 꿀 동냥을 나온 꽃등에며 벌 무리가 진달래꽃 잔치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삭막하던 바위가 좁은 틈을 내주어 진달래나무를 애지중지 아낀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꽃 사태가 나자 바위의 존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러났다. 바위의 품이 넓어 보였고, 그 고집스럽고 완고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의 근사한 집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서 햇살도 눈부시고 진달래꽃도 활짝 피었구나. 아하하하, 우리는 집을 지었다. 비 내리는 날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우리의 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하늘눈도 오리바위에 앉아서 진달래꽃을 바라보았다. 허기가 밀려왔다. 하늘눈은 땅으로 내려앉아 작은 풀잎 사이로 기어가는 딱정벌레를 부리로 쪼았다. 번개부리도 옆으로 내려앉았다. 하늘눈은 딱정벌레를 삼키다가 찔레덩굴 가시에 한 움큼 붙어 있는 산토끼 털을 보았다.
“가만, 산토끼 털을 물어다가 집에다 깔아야겠어.”
“맙소사, 이제 그만해도 되는데…….”
“신경 쓰지 마. 그냥 눈에 띄어서 물어가는 것뿐이야.”
어느새 하늘눈은 산토끼 털을 물고 집으로 날아갔다. 번개부리도 따라갔다. 하늘눈은 집에다 산토끼 털을 깔면서 부드러운 재료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았어. 여기 잠깐만 있어. 내가 좋은 것을 가져올게. 여기서 나가면 절대 안 돼.”
번개부리는 하늘눈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집을 나온 번개부리는 골짜기 위로 날아갔다. 군부대 철조망이 보였다.
“누구냐, 누구냐, 가까이 오지 마라!”
철조망에 앉아 있던 딱새가 소리쳤다. 번개부리는 꼬리를 내보이면서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얼른 철조망을 넘어 군부대 막사로 날아갔다. 번개부리는 이곳을 잘 알았다. 이 골짜기로 처음 들어왔을 때, 바로 이곳에서 일주일을 묵었기 때문이다. 취사반 뒤에 있는 창고에 가면 인간들이 쓰는 하얀 보온덮개가 많았다. 번개부리는 그 보온덮개만을 떠올리면서 취사반 뒤쪽 창고로 들어갔다.
“웬 놈이야, 어서 꺼져!”
누군가 어두운 창고 안에서 피할 틈도 없이 아랫배를 공격했다. 번개부리는 얼른 뛰쳐나왔다. 암컷 딱새였다. 번개부리가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서 혼내주려고 하자 아까 마주쳤던 놈까지 소리치면서 날아왔다. 취사반 어디쯤에 그들의 집이 있는 게 분명했다. 번개부리는 굳이 무리하게 맞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번개부리를 기다리던 하늘눈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번개부리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대체 어디를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떨?져 있어본 적이 없었다. 하늘눈은 번개부리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오리나무에서 사는 박새 속임수를 보았다. 속임수는 입에다 뭔가를 가득 물고 있었다. 척 보기만 해도 따스해 보였다. 바위옷도 아니고, 인간들이 버린 비닐도 아니고, 마른 고사리도 아니었다. 이 골짜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늘눈은 욕심이 났다. 빼앗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그것만 알아내면 된다. 속임수는 하늘눈을 피하면서 곧장 오리나무로 날아갔다. 속임수는 나무구멍으로 들어갔다가 얼마 뒤에 나왔다. 속임수는 힘차게 날개를 펼쳐서 절벽 위로 날아갔다.
하늘눈도 따라붙었다. 진달래꽃물이 굽이치는 산등성이를 넘어 아래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산밭이 보였다. 햇살이 비닐하우스 위에서 놀고 있었다. 속임수는 맨 위쪽에 있는 비닐하우스 쪽으로 사라졌다. 하우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속임수는 금세 부리 가득 하얀 것을 물고 나왔다.
하늘눈은 속임수가 날아가자마자 하우스 안으로 날아갔다. 바닥에 하얀 보온덮개가 깔려 있었다. 하늘눈은 부리로 보온덮개의 솜털을 뽑아냈다. 신이 났다.
“이런 솜털이라면 아무리 추워도 아기들이 추워하지 않겠어.”
하늘눈은 중얼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몸이 뚱뚱한 수컷 인간이 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하늘눈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방이 비닐로 막혀 있어서 날개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간은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딛으면서 안쪽으로 걸어왔다. 인간은 하늘눈 옆을 지나쳤으나 알아보지 못했다. 인간은 하우스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하늘눈은 인간의 기척이 사라지자 조심스럽게 날아서 하우스를 빠져나오다가 허둥대기 시작했다. 문이 닫혀 있었다. 하늘눈은 머리로 문을 들이받았다.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천장을 받아보았다. 두 겹으로 덮여 있는 비닐은 하늘눈의 가속도를 탄력 있게 받아서 튕겨냈다. 하늘눈은 부리로 비닐을 찢어보려고 하였다. 비닐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아무리 쪼아도 구멍이 나지 않았다.
해가 떨어졌다. 하늘눈은 마음이 급해졌지만 그만큼 머리는 먹통이 되어버렸다. 하늘눈은 바닥에 앉았다.
“비닐을 찢어낼 수 있는 날카로운 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두더지처럼 땅을 팔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유롭게 하늘을 날 때는 그 어떤 동물보다도 날개 달린 자신의 존재가 자랑스러웠는데, 이 안에서는 날개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늘눈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번개부리를 불러보았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째 불렀을 때 무슨 메아리가 돌아왔다. 누군가 인간이 닫아버린 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악마의 발톱이었다.
하늘눈은 간신히 날아올랐다. 악마의 발톱은 한참을 말이 없더니, 하늘눈이 천장에 매달리자 그 밑으로 와서 특유의 목소리를 뽑아냈다.
“오~늘으은 어~쩐지이 새~고기가 먹고 싶더라아.”
악마의 발톱은 다른 고양이들보다 목소리가 더 높았고, 첫 마디를 길게 늘어뜨리는 버릇이 있어서, 더 소름끼치게 들렸다.
하늘눈도 악마의 발톱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부들부들 떠는 이들이 많았다. 쥐나 다람쥐, 청설모들은 악마의 발톱을 저주하면서 살아갔다. 새들도 그를 두려워했다. 하늘눈의 가슴도 떨렸다. 하늘눈은 악마의 발톱이 들어온 쪽으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날아가서 문을 들이받았다.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하늘눈은 잠깐 의식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악마의 발톱은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하늘눈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너~어어 악~마에 바알톱이라고 들어어~ 보~아았지? 내가아~ 바로 악마에 발톱님이시다. 흐으~흐흐~으…….”
아, 소름이 끼쳐서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말로만 듣던 그 악마의 발톱을 여기서 만나다니, 하늘눈은 아닐 거라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러면서 까만 악마의 발톱을 내려다보았다. 눈이 유독 파랬다. 그놈의 등에는 커다란 흉터가 발톱 문양처럼 남아 있었다. 살과 살이 스스로 꿰매지면서 아물기는 했지만 저렇게 눈에 띌 정도로 흉터가 남아 있는 걸 보면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흉터가 거대한 발톱으로 보였다. 악마의 발톱임을 증명하는 흉터였다.
하늘눈은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겁먹으면 안 된다고 얼마나 속으로 부르짖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악마의 발톱이 들어온 문 아래를 부리로 쪼아도 보고, 머리로 밀어도 보고, 발로 밀어도 보았다. 아,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악마의 발톱은 머리로 문 사이를 들이밀고 들어왔는데, 하늘눈은 아무리 부리를 들이밀어도 발로 밀고 잡아당겨도 소용없었다. 울음이 나왔다. 하늘눈은 울부짖으면서 날아올랐고, 이내 머리를 부딪치면서 떨어졌다가 다시 날아올랐고, 그러다가 다시 부딪쳤다.
“소~요옹어없다. 너~어는 저~어얼대 못…… 나~아간다아아…… 여어~기서 이 악~마에 바알~알톱님의 살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라~아.”
그럴수록 하늘눈의 심장은 빨라졌고, 조급해졌다. 하늘눈은 다시 파닥거리면서 비닐을 들이받았다. 그러다가 땅에 떨어졌을 때는 다시는 날아오를 힘조차 없었다. 악마의 발톱이 다가오자 간신히 날았다. 하늘눈은 악마의 발톱을 저주했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악마의 발톱의 소리가 고막에 박히자마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늘눈은 맨 귀퉁이로 가서 다시 철재에 매달렸다. 악마의 발톱이 화를 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하늘눈은 다시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악마의 발톱은 더 빠르게 쫓아왔다. 하늘눈은 또다시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악마의 발톱도 달려왔다. 악마의 발톱은 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하늘눈은 점점 힘이 떨어졌다. 하늘눈은 이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하늘눈이 굳게 닫혀 있는 문 위의 철재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덜컹 흔들렸으나 열리지는 않았다. 하늘눈은 더 이상 날 힘이 없었다. 이제는 끝장이라고 절망하고 있었다.
그때 찬바람이 하늘눈의 등을 어루만졌다. 바깥에서 들어온 바람이었다. 하늘눈은 천천히 두리번거렸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문 위쪽에는 작은 새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닐이 찢어져 있었다. 옆으로 찢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비닐은 제법 틈을 벌려주었다가 다시 움츠러들었다.
하늘눈은 그곳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날아갔다. 밤기운이 콧속으로 밀려들자 자신이 그 지옥 속에서 탈출했음을 알았다. 악마의 발톱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하우스 앞에서 하늘눈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하늘눈은 “아~악마의 발톱 놈아! 악마들에게 저~어주나 받아라!” 하고 악마의 발톱 말투로 놀려주었다.
번개부리는 간신히 군부대 막사 뒤에서 인간들이 버린 휴지를 입에 물고 돌아왔다. 솜털하고 비교할 수는 없으나 부들부들하고 따스해 보였다. 번개부리는 곧장 벌통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하늘눈이 보이지 않았다. 번개부리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디 있는 거야! 대답 좀 해봐!”
번개부리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으나 하늘눈의 목소리는 고막에 잡히지 않았다. 온갖 불길한 생각만이 바글바글 끓어올랐다.
“빌어먹을, 내가 미쳤지.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정말 미치겠군. 그래,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번개부리는 갑자기 보온덮개를 떠올린 자신을 타박했다. 하늘눈을 혼자 두고 군부대까지 날아간 자신의 행위를 비난하면서 위아래로 몸을 흔들어댔다. 아무리 숲을 뒤져보아도 하늘눈은 보이지 않았다. 번개부리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증발해버린 느낌이었다.
해가 산을 넘어갈 때까지도 하늘눈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번개부리는 거만하게 바람을 타고 있는 매를 보자 불길한 잡념이 불쑥 치밀어올랐다. 번개부리는 그 불길한 잡념을 떨치려고 마구 소리쳤다.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라고!”
번개부리의 메아리는 깊고 처량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짚어보면서 냉정해지려고 애를 썼으나, 그럴수록 매의 날카로운 부리만 뇌리에 가득 찼다. 몸이 떨렸다.
“제발 돌아와줘. 근사하게 지어놓은 우리의 집이 기다리고 있잖아. 나는 어떡하라고 혼자 가버린 거야!”
아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때문에, 번개부리는 새로운 생을 개척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까치 고물상네 집 반대편 산등성이 단풍나무 가지에다 집을 지은 ‘도토리황제’ 어치는 번개부리를 보고는 “번개부리가 왜 저러지? 저놈이 돌아버렸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토리황제는 스스로를 늘 “나야말로 이 숲의 황제야!” 하고 떠벌렸으나 다른 새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까마귀는 도토리황제를 “내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작은 새들을 잡아먹는 사기꾼, 사기꾼황제!”라고 했고, 허풍쟁이는 “저놈은 이 숲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한다는 말씀. 늘 도토리를 훔쳐놓고도 ‘내가 안 했어. 까치들이 했어’ 하고 거짓말하는 저놈이야말로 거짓말황제라는 말씀!” 하고 말했다.
그래도 번개부리는 도토리를 유독 좋아하는 그 어?? “도토리황제!”라고 나름대로 예우를 해주었다. 어쨌든 그 어치는 거짓말황제든 사기꾼황제든 도토리황제든 황제라는 말만 들어가면 좋아라 하였다. 게다가 그 어치의 머리꼭대기에는 특이하게도 붉은 머리깃털이 쫑긋 솟아 있어서 영락없이 황제의 관으로 보였다. 다른 어치의 머리에서는 볼 수 없는 깃털이었다.
도토리황제는 번개부리를 따라서 오리바위 근처까지 왔다. 그래도 번개부리는 공격하지 않고 꼭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멍하니 하늘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도토리황제는 하늘눈이 보이지 않음을 알았고, “끙, 번개부리 아내가 무슨 일을 당했군” 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 날아갔다. 괜히 번개부리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번개부리는 일찌감치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 낮달을 보았다. 아직도 햇살의 꼬리가 남아 있었지만 달은 급했다. 그 달이 번개부리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번개부리는 달에게 물어보고 싶어서, 달이 있는 곳으로 온 힘을 다해 날아올랐다가 이내 지쳐서 떨어졌다. 번개부리는 절망하면서도 이제는 무슨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까맣게 물든 숲을 보며 마지막으로 하늘눈을 불렀다. 그 메아리와 함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했다. 번개부리는 아내의 메아리가 들려오는 절벽 위로 날아올랐다.
“내가 헛들은 게 아니지? 꿈이 아닌 거지. 어디 있어!”
참나무 위에서 까만 점이 커지면서 내려왔다. 하늘눈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번개부리는 너무 급하게 날다가 나뭇가지에 부딪혔다. 아픈 줄도 몰랐다.
“어디 갔었어? 나 죽어버리려고 했어. 너 없이는 못 살아.”
둘은 발 디딜 홰 하나 없는 허공에다 날개로 몸을 고정한 다음 서로의 부리를 비벼댔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싶은 본능이 몸을 흔들어대자 격렬하게 서로의 몸을 부딪쳤다. 날개와 날개로 서로의 몸을 때렸고, 머리와 머리를 비벼댔으며, 높이높이 솟구치면서 서로를 불러댔고, 계곡으로 내려와서 찬물을 들이켜면서 뜨거운 몸을 식혔다.
“다시는 널 못 보는 줄 알았어.”
“이제 됐어. 네가 무사하니까 됐어.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해.”
“너무 끔찍했어. 너무 무서웠어.”
그들은 물가에서 몸을 비비고, 서로의 깃털을 부리로 골라주었다.
집으로 들어가서야 하늘눈은 오늘 있었던 그 끔찍한 이야기를 울먹울먹 풀어놓았는데, 악마의 발톱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그때마다 번개부리는 아내의 목을 부리로 문질러주었다. 그러면서 번개부리는 언젠가는 그 악마의 발톱을 혼내주겠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