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나를 치유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 <똥파리> - 영화감독 양익준 인터뷰①” 기사와 이어집니다.
인터뷰 일자: 2010년 5월 11일
참석자: 양익준 권지용 구연수 한지훈 양다빈
원고 작성자: 권지용 구연수 한지훈 양다빈
(이우 고등학교 2학년, 영화 동아리 ‘돈까밥’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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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 양익준 | |
이번에 <똥파리>를 만드시고 되게 유명해지셨잖아요? 그럼 다른 작업을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연기라던가.촬영 3분의 2부터 몇십 명분의 일을 혼자 다 감당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차기작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차기작에 대한 제의를 25~30개 정도 받았는데 다 거절하고 연기도 주, 조연급 5~6개 다 거절했죠. 주위사람들은 다 “이럴 때 밟고 올라가야지”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나는 박수라는 걸 받았을 때 추락을 시켜요. 다시 원점으로.다시 일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시작하다보면 되게 힘들 텐데 그게 편하세요?
그게 편해요. 나는 그 기대감 같은 게 불편해요. 본인들을 기대하면 되지 왜 날 기대해요. 그건 나한테 건강한 게 아니에요.
왜 그 명대사 있잖아요. “너나 잘하세요.” 우리 사회는 자기에 대한 고민은 안 하고 항상 상대방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하는 사회예요. 정도 이상의 관심을 들이는 거죠. 그게 그 사람을 옥죄는지도 모르고. 부모도 마찬가지고, 사회도 마찬가지고, 동기도 마찬가지고. 부모의 역할은 뭘 결정해주고 인도해주는 게 아니라 제시를 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이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고 제시를 해주는 거죠. 이걸 해라 저걸 해라가 아니라.관심이 많은 게 부담스러우신가요?불필요한 관심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한테 많은 사람들이 안 좋은 부분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해요. “첫 번째 작품 이렇게 잘 만들었으니까 두 번째 작품도 정말 잘 만들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뭐 이런 얘기들. 왜 그런 얘기를 해요. “두 번째 작품도 기대할게. 넌 잘 만들 거야. 그리고 난 거기에 너의 건강한 생각들을 더 많이 넣었으면 좋겠어.” 정도까지만 얘기해도 되잖아요. 이 세상이 모든 걸 비교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영화는 누굴 이기기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훌륭한 감독이 될 거야.’ 이런 의식도 필요 없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영화에 담고 싶다’가 전제가 돼야지, 잘되는 게 우선순위일까요? 그건 세상이 만들어낸 가짜 욕망이 아닐까요?그럼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할 수가 있어요?아 조금은 하겠죠.ㅋㅋㅋㅋㅋ그게 정말 조금이라고 생각하세요?나는 조금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 관념에 따라갈 것도 없고. 내가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수많은 제의를 거절하지도 않았겠죠. 몸이 더 안 좋아져도 차기작 제의를 다 받아들였겠죠.아버지가 돈을 지원해주시면서 하신 말씀 없으셨어요?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일단 제가 어떤 영화 찍는지 모르셨고.ㅋㅋㅋ아버지 말이 나와서 생각난 건데 영화 속에서 상훈이가 가방에서 돈을 꺼내서 아버지에게 돈을 뿌리는 장면이랑 회수금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럼 되게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가방 안에 돈 넣고 다니는 거 진짜였어요, 가짜였어요?가짜도 있고 진짜도 있고 그래요. 수표 같은 건 진짜였고. 지폐는 가짜를 가져왔는데 색감이 너무 달라서 진짜로 넣었죠. 돈다발 같은 경우는 위에 몇 장만 진짜였고, 안에는 가짜였죠. 아버지한테 돈 뿌리는 장면 있잖아요. 나중에 만 원인가, 2만 원 없어져서 서로 의심하고 그랬죠.ㅋㅋㅋ 아니, 그 안에서 뿌렸는데 왜 없어져요. 돈이 어디로 갔을 리는 없고.ㅋㅋㅋㅋㅋ
흔히 영화를 예술과 기술이 통합된 매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감독이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를 가장 효율적으로 알릴 수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세요? 그러니까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세요?나는 1분짜리를 만들든 100분짜리를 만들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거에 대해서 조금의 거짓도 들어가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 안에 투영하는 마음은 진짜여야 하죠. 여러분의 답답함들 있잖아요, 그걸 깨나가고 싶은 진심을 넣지 않으면 영화는 그냥 생산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죠. 새로운 제품을. 근데 그게 제품이 아니라 핸드메이드라고 하잖아요. 정말 내 진심과 정성이 담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진심을 활용해야 돼요.
네덜란드에 갔을 때 우리를 도와준 친구가 있었어요. 이름이 랜인데 암튼 그 친구들 집에 초대를 받았어요. 그 친구가 중국인 여자친구하고 동거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동거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잖아요. 성에 대한 어떤 잘못된 인식들 때문에.
그 친구의 엄마가 옆 동네 사는데 개를 끌고 와가지고 소파에 앉아서 두런두런 와인 마시면서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근데 엄마가 취하셨어요.ㅋㅋㅋ 그러다 잠드셨는데 초대해준 친구가 갑자기 “아, 나는 엄마랑 자주 싸워.”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아 익준, 그거 이상한 거 아니야. 그냥 엄마하고 나하고 성격이 달라서 조금 싸우는 것뿐이야. 나 엄마 사랑해. 싸우는 건 문제될 거 없어.” 그러는데 진짜 마음에 꽝 박히더라고요. 그 친구들은 답답하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건강히 대화하고 건강히 싸우면서 푸는 거였어요. 근데 우리는 풀 데가 없잖아요. 쌓아두기만 하고 그렇게 쌓아두다가 나중에 팡 터지잖아요.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았다면 <똥파리>를 만들 이유가 없죠. 근데 못 그랬으니깐. 목구멍까지 차오르니깐. 뭐든 쏟아내야 하니까 만들었어요.감독님의 말이 우리 서로를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들까? 영화에는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정말 뭔가 쏟아내고 싶어서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돈 벌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면 그건 영화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잘 만들어서 돈을 벌자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우리가 너무 부끄럽기도 하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것이 답답해서 영화로 쏟아내고 있는 것인가?
부모님이 <똥파리> 보시고 반응이 어떠셨어요?아버지한테 “좀 불편하셨죠?” 하고 물어보니까 하늘 보시면서 “괜찮더라” 그러셨죠. 근데 시선을 잘 못 마주치셨죠. 엄마는 얼굴 빨개져서 “야, 이 새끼야. 그걸 다 보여주면 어뜩하냐.” 이러시고.ㅋㅋㅋ 두렵죠. 자기 얘기를 보여준다는 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픈한다는 게. 전 오픈한다는 전제를 안 가졌어요. 그냥 답답하니까 막 나오는 거였죠. 공개를 하기 직전엔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근데 오픈하고 보여주니까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더라고요. 사랑도 마찬가지잖아요. 짝사랑도 오픈하고 보여줘야지 이뤄지는 거잖아요.짝사랑 경험 있으세요?나는 평생 짝사랑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날 좋아해주는 사람들하고 사귀었어요. 한 번도 좋아하는 여자한테 진심을 내뱉지 못했죠. 짝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 사람도 느껴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러다가 그 사람도 나한테 호감이 생기죠. 그 지점이 어느 순간 딱 맞닿는 때가 있어요. 내 감정이 나와야 할 때인 거죠. 근데 얘기를 안 하고 억눌러버리니깐 그 지점이 사라져버리는 거죠.
짝사랑을 오래 하다보면 상대가 너무 우월해 보여요.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제일 짜증나는 거죠. 나는 그걸 못 이겨낸 거예요. <바라만 본다>라는 내 단편영화에서 내 짝사랑에 대한 걸 43분 안에 다 표현했죠.짝사랑이라! 짝사랑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공감이 갔다. 연애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어느 순간에는 그 솔직한 감정이 나와야 하는데, 그걸 억눌러버리니까‘지점’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없다. 용기가 없으면 지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다. 짝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 양익준 감독의 짝사랑 단편영화도 한번 보는 게 어떨까요? 물론 저도 시간 내서 보고 싶네요.
그러고 보니 내 이야기의 모든 시작점은 중학교 때 기억이네요.
그러면 감독님 인생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부분이 중학교 시절인 것 같아요. 대체 중학교 시절이 어떠셨길래 그러세요?본드, 가스, 가정의 불화, 답답함…….
고등학교 때 단골인 술집에 가서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술을 왜 마시냐면 답답하고 짜증나니깐 아버지 얘기하면서 욕하고 가족 이야기하고 큰소리치고……. 그렇게 밤새 술 마시면서 가족 욕하고. 그게 배설이었죠. 그 당시에는 그것밖에 할 게 없었잖아요. 누가 뭐 건강한 해결책을 제시 해줬나요.
중학교 때 어느 선생님은 개긴다고 푸세식 화장실에서 신발에 똥 발라서 얼굴에 묻히고. 고등학교 때는 반항기가 있다고…… 아 근데 당연한 거잖아요. 자꾸 억누르니까, 답답하니까. 근데 선생님들은 선생님 말씀에 조금이라도 반박을 하면 “일로 나와봐.” 이러면서 20미터, 10미터를 얼굴을 때리면서 가는 거죠. 너무 무서운 폭력인 거죠. 물리적인 폭력이면서도 두렵고.
또,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은 애들이 교실 바닥에 가래침 뱉는 걸 보고 “혀로 끌고 와 여기까지.” 이런 거죠. 그러면 또 그애는 기에 눌려서 혀로 바닥을 쓸면서 앞에까지 끌고 가고. 그런 어떤 폭력들. 이런 얘기를 해줄 수 있는 대상이 없었어요. 단지 친구. 다 비슷비슷하니깐. 증오와 분노에 대한 기억을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치유하고 싶어서 작업을 하는 거죠. 나의 어떤 답답함을 영화 속에 담은 거죠.
다들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다 비슷해요, 오픈해보면. 숨겨서 그래요. 치유는 내 안의 것을 보여줄 때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우리도 돈이 없고 공부도 해야 하는 등 다른 일도 많은데 왜 영화를 찍을까. 아마 그 답답함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생활 속 여러 가지 일들에서 한 번쯤은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요즘 학교가 양익준 감독님 시절의 학교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겠지만, 시대가 변할수록 그에 따른 새로운 답답함이 생기게 마련인 것 같다.
인터뷰가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재밌어요.
재밌죠?ㅋㅋㅋ 내가 불면증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원한 적도 있어요. 난 능력자도 아닌데.ㅋㅋㅋ 그 사람은 나한테 뭐 제의하러 온 건데 난 그런 거 관심 없으니깐 그냥 사는 얘기를 한 거죠. 그렇게 얘기하다보니까 다 해결됐나봐요. 내 영화도 되게 신기한 게, 보통 영화 보고 나면 “잘 봤어요” 하잖아요. 근데 다 나한테 감사하대요. 나는 내 안의 것을 연 건데 그들은 자기 것까지 열어줬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진심이 필요한 거예요.
어떤 단편영화에서 감독하는 대학생이 친구의 얘기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친구가 말했던 게 다 거짓이었어요. 그래서 둘이 싸웠죠. 뭐가 거짓이고 진실이냐고. 근데 제3자인 한 친구가 감독을 끌고 나와서 말해요. 되게 중요한 말. “영화 만들려고 사냐, 사는 거 보여주려고 영화 만드는 거지”라고. 어떤 것이든 어떤 표현을 하든 자기가 산 만큼 그대로 나오는 것 같아요. 내가 산 것들이 그대로.영화는 젊어서 해야 하는 걸까요? 영화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걸???나는 나이가 좀 들어서 하는 것도 늦지 않다고 봐요. 인생을 많이 경험하고 나서. 영화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집착을 해요. 영화, 영화, 영화만을 바라보고 살죠. 그러다가 자기 생계는 놔버려요. 그러면 결국 몇 년 못 가죠. 생계가 안 되니깐. 같이 잘해야 되요. 자기가 먹고살아야 할 걸 자기가 마련할 때 얼마나 행복하고 쾌감이 있는데요.저희한테 하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제일 중요한 말. 학교나 대학교나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누가 자꾸 자극을 줘요. 선생님이 끌어주고 부모님이 끌어주시고 뭐 어떻게든 해주시잖아요. 근데 그 단체에서 나왔을 때부터 제일 중요한 시기가 시작되는 거죠. 그 전에는 계속 남들이 발동을 걸어줬잖아요, 뭘 하라고. 근데 단체에서 나왔을 때는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내 안에 자가발전? 수 있는 발동기가 하나씩 있어야 하죠. 근데 다 있어요. 모든 사람은 다 있는데 그 발동기를 돌릴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스스로 발동을 걸어야 되는 거예요, 안 되면 될 때까지.그를 인터뷰하러 가기 전까지 <똥파리>에서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약간은 무서웠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그에게서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보였다. 양익준 감독님은 여렸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일종의 대화였다. 그냥 숨김없이 모든 것을 말해주셔서, 뭔가 오늘만큼은 교과서적인 세상이 아닌 진실된 세상을 조금 알아간 기분이었다.
감독님은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으셨다. 그 특유의 솔직함과 털털함 때문에 ‘너와 나는 다를 것이 없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셨고, 그 이미지 때문에 내내 편안하고 즐거운 인터뷰가 되었다. 실제로 사람은 파고들면 다를 것이 없다. 서로 힘들고, 서로 답답하고, 세상에 짜증나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고……. 단지 우리는 그걸 너무 숨기려고만 했던 것이다.
뭐랄까, 우리도 영화를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서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우리에게는 발동기와 발전기가 있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에서 똑같이 살아가는 우리들. 몇 년 후 진짜 사회와 세상에 떨어졌을 때, 과연 우리에게는 스스로 발동을 걸 힘이 있을까? 양익준 감독님처럼 집을 뛰쳐나올 힘이 있을까? 세상 온갖 욕을 하면서도 그걸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벌려놓은 일 때문에 좌절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들 마음속에 모두 갖고 있는 답답함, 외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