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연재 바로가기
눈 맑은 새가 살고 있었다 - 이상권 「날다」①
2. 강하면서도 순수한 눈빛
해는 겨우내 움츠리고 살았던 모든 것들에게 햇살대접을 융숭하게 하였고, 파릇파릇 살 오른 풀들이 고맙다고 손짓하는 논둑이 눈에 시렸다. 논배미는 바글바글 잔풀들의 웃음판이었다. 논배미 아래로 산밭이 펼쳐져 있고, 쑥이나 냉이를 캐는 몇몇 인간들이 밭두렁에 웅크리고 있었다. 마실 나온 작은 곤충들이 잔풀들 사이에서 고물거렸다.
하늘눈은 거미를 날쌔게 낚아챘다. 정신없이 거미들을 잡아먹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고욤나무 가지에 수컷 딱새가 앉아 있었다. 짙은 황톳빛 뱃가죽이 또렷했다. 하늘눈은 당황하면서도 고욤나무 쪽으로 날아갔다. 수컷 딱새는 생강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누구야, 숨어서 보지 말고 나와. 왜 달아나는 거야!”
아무리 소리쳐도 상대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늘눈의 가슴만 더욱 두근거렸다. 하늘눈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하얀 나방이 날아갔다. 하늘눈의 부리는 무의식중에도 목표를 정확하게 조준하고 나방을 낚았다. 부리에서 나방이 바동거렸다. 하늘눈은 나방을 이리저리 내리쳐서 기절시키고 발로 날개를 떼어냈다. 날개는 꽃잎 되어 뱅글뱅글 떨어졌다. 하늘눈은 나방을 삼키면서도 아무런 맛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직 머릿속에는 수컷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누굴까? 왜 나를 훔쳐보고 있었을까?’
인간들이 쓰던 비닐 조각 하나가 나뭇가지에 붙잡힌 채 고쟁이처럼 팔락이면서 반짝반짝 손짓하고 있었다. 햇살은 어제보다 더 눈부셨다. 이 세상 모든 사금파리 조각이 태양 속으로 모여들어서 빛을 쏘아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번개부리’는 개복숭아 가지에 숨어서 하늘눈을 훔쳐보고 있었다.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꽃버무래기가 덕지덕지 묻은 생강나무 가지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던 하늘눈이 불쑥 뒤돌아보았다. 맞은편 산비탈에 사는 진달래나무가 흔들렸다. 망울망울 몽우리가 부풀어오르고 있어서 더 눈에 잘 띄었다. 누군가 훔쳐보고 있다가 달아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하늘눈은 꼬리를 들어 힘차게 내리쳤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누구야, 대체 누구기에 날마다 나를 훔쳐보는 거야!”
가느다란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개복숭아 가지가 흔들렸다. 하늘눈은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날아왔다.
“넌 대체 누군데 숨어서 날 보는 거야? 어서 나와. 다 알아, 숨어서 본다는 거.”
번개부리는 당황했다. 더 이상 달아날 수가 없었다. 막상 하늘눈이 쏘아보자 수줍어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번개부리는 더듬더듬 말했다.
“미, 미안해, 너를 놀라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럼 어제는 왜 도망쳤어? 어서 말해!”
번개부리는 자신이 퉁바리맞은 줄 알고 당황했다.
“네가, 놀랄까봐, 네가, 놀랄까봐……. 말하고 싶었어. 너를 좋아한다고. 근데 거절당하면 어쩌나 해서…….”
하늘눈이 가만히 있었다. 번개부리는 용기를 내어 하늘눈 앞으로 날아갔다. 막상 번개부리가 옆으로 오자 하늘눈은 정신이 멍해졌다. 하늘눈은 듬직해 보이는 번개부리가 마음에 들었으나 더 신중해야 한다고 머리를 흔들면서 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번개부리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하늘눈을 부리나케 따라붙었다.
“오래오래 정말 오래오래 생각했어. 쉽게 정말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야. 나를 믿어줘.”
그 한마디 한마디가 하늘눈의 심장을 두드렸다. 하늘눈은 며칠간 여유를 달라는 말을 하려고 뒤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또 다른 새가 따라오고 있었다.
“저건 또 누구지. 어떻게 된 거야!”
하늘눈은 날개에 힘을 주면서 솟구쳤다.
번개부리도 당황하고 있었다.
“너, 너, 넌 대체 누구냐! 어서 말해, 어서!”
아무리 소리쳐도 낯선 딱새는 대꾸가 없었다.
하늘눈은 초록 융단이 깔린 논두렁 위로 낮게 길을 잡았다.
낯선 딱새가 어느새 하늘눈을 따라잡았다. 하늘눈은 낯선 얼굴을 보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낯선 얼굴은 암컷이었다.
“누구냐니까, 어서 말해. 왜 이러는 거야!”
번개부리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자신은 고욤나무에서 사는 하늘눈한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였는데, 갑자기 또 다른 암컷이 나타났다. 이제는 누가 누구인지 가려낼 수 없었다.
암컷 딱새들이 비탈진 산밭으로 날아갔다.
참깨들이 살았던 밭 가운데는 깨끗하게 설거지가 되어 있었지만 밭두렁에는 뱀허물 같은 비닐이 어지럽게 바람에 흩날렸다. 밭머리 끝자락에 자그마한 풀막이 웅크리고 있었다.
“다들 멈춰. 대체 어찌된 일이야!”
낯선 암컷이 풀막을 돌아서 눈앞으로 날아오는데, 번개부리는 다시금 누가 누군지 혼란에 빠졌다. 낯선 암컷이 번개부리의 날개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소리쳤다.
“어서 나를 따라와, 어서!”
번개부리는 저도 모르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몸을 돌렸다가 그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번개부리가 속도를 늦추자 이번에는 하늘눈이 지나갔다.
“야, 서! 서란 말이야!”
번개부리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암컷 딱새들은 논으로 날아갔다가 고욤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가 생강나무와 진달래나무 그리고 개복숭아나무 사이를 지나 다시 논으로, 다시 밭으로, 다시 풀막으로, 높게 낮게, 쉴 새 없이 날아다녔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정말 모를 일이군.”
번개부리는 풀막 지붕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암컷들이 돌아오자 그제야 쫓아갔다. 그들은 싸우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재미로 하는 놀이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을 걸고서 한판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야, 거기 멈추라니까! 멈추란 말이야!”
하늘눈은 지쳐갈수록 화가 났다. 낯선 암컷은 풀막을 십여 차례 돌고 나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좋아해, 나도 그를 좋아해. 나도 좋아할 권리가 있어!”
하늘눈은 어처구니가 없었고 오늘 번개부리한테 사랑의 고백을 받았으니까 이쯤에서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낯선 암컷은 거짓말이라고 대꾸했다. 하늘눈은 눈을 부릅뜨고 낯선 암컷을 쪼아대려고 했으나 상대가 워낙 빨라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번개부리는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이제야 누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번개부리가 자신이 사랑을 고백한 하늘눈에게 다가가려고 하였으나 그때마다 낯선 암컷이 방해하였고,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엉키면서 요란하게 날아다녔다.
풀막 옆, 잔가지가 유독 풍성한 뽕나무 품에 앉아 있던 어치들은 벌써 더운지 입을 크게 벌리고 딱새들의 묘한 놀음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날씨도 더운데 쟤들은 왜 저래?”
“혹시 사랑싸움하는 거 아냐?”
“그런 것 같군. 이야 재밌다.”
하늘눈은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지쳐버렸다. 지독했다. 아무리 쫓아도 낯선 암컷은 달아났다가 다시 날아오고, 쫓아가면 달아났다가 어느새 돌아와서 번개부리 옆에 가 있었다.
번개부리는 떨떠름한 눈빛으로 화를 내면서 낯선 암컷을 따돌리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낯선 암컷은 절대로 번개부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번개부리는 짜증이 나서 발로 머리를 긁어댔고, 옆으로 따라붙는 낯선 암컷을 보자마자 갑자기 몸을 틀어 낯선 암컷의 등을 물어뜯었다. 번개부리는 지금까지 다른 새들하고 싸워서 꼬리를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비록 낯가림이 심하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지만 한번 화가 났다 하면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나웠다.
낯선 암컷이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다. 그제야 번개부리는 하늘눈을 불렀다. 하늘눈은 낯선 암컷이 작은 점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날아가면서도 계속 두리번거렸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이 살았던 고욤나무를 지나 골짜기 위로 빠르게 날아갔다. 하늘눈도 낯선 암컷이 따라올까봐 정신없이 번개부리를 따라갔다. 하늘눈은 자신이 살아온 숲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골짜기가 낯설었다. 편안하게 눈을 둘 곳이 없었다. 그 서먹서먹함이 하늘눈을 긴장시켰다. 바람이 숲을 한타령으로 태질하자 나무들은 그 흐름에 순응하면서 묵은 옷을 벗어던졌다. 하늘눈의 깃털도 세차게 나부꼈다. 정신이 아득했다. 꿈이 아닐까. 마음을 정리할 틈도 없이 고향을 떠나오고야 말았다. 이게 옳았는지, 꼭 이래야만 했었는지 혼란스러웠다. 하늘눈은 이런 식으로 고향을 떠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가 어디지? 왜 여기로 나를 데려왔지?”
“내가 사는 곳이야. 근사한 곳이야.”
번개부리는 애써 안심시켰으나 하늘눈의 눈에서는 불안한 빛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늘눈이 횃대 삼아 앉은 소나무는, 고향에 있는 고욤나무만큼이나 나이든 품이 느껴졌다. 이파리 숱이 워낙 많아서 어지간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사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번개부리는 골짜기 맞은편에 있는 바위로 날아갔다. 하늘눈이 따라오자 번개부리는 그 바위에 앉으면서 오리바위라고 농담했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넓적하게 튀어나온 바위가 오리부리를 닮았고, 작은 구멍까지 있어서 영락없는 오리 모양이었다. 오리바위 뒤에는 절벽이 바람을 막아주었다. 그 누구와도 더불어 살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것처럼 깎아지른 바위절벽 곳곳에는 진달래나무와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서 애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번개부리는 오리바위 밑에 살짝 낀 길쭉한 벌통에 앉아서 두 발로 중심을 잡고 몸을 까불어댔다.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인간들이 나무판자에 못을 박아서 벌통으로 썼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들이 쓰다가 버렸는지 골짜기 어디에서 굴러왔는지 그 내력을 알 수 없었으나, 번개부리는 벌통이 마음에 들었다. 벌통은 위아래가 단단하게 막혀 있었고, 위쪽에 새가 간신히 드나들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여기까지 굴러오면서 날카로운 돌에 부딪혀서 구멍이 났을 거라는 추측이 들었다. 번개부리는 이 벌통이야말로 집을 짓고 아기들을 키우기에 완벽한 곳이라고 자신했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이 보는 앞에서 구멍으로 들어갔다.
하늘눈도 따라갔다. 근사한 곳이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의 눈치를 살피다가 박새랑 싸우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두 달 전에 이 골짜기에 왔어. 그냥 며칠간 머무르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이 벌통을 보고 마음이 달라진 거야. 그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벌통에 들어가서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어.
그날도 눈을 뜨자마자 벌통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어. 안에 누가 있더라고. 박새야. 이 골짜기에서 나랑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박새였는데, 다른 새들이 그 녀석을 ‘속임수’라고 부르더군. 하여간 그녀석처럼 다른 동물들 흉내를 잘 내는 새는 처음 봐. 대단해. 그 녀석은 온갖 동물들 흉내를 다 내. 그러면서 상대방 눈을 홀리는 거야. 상대방이 겁먹고 도망칠 만한 동물들 흉내를 내면서, 그 속임수로 살아가니까 한마디로 마법이라고 할 수 있어. 하여간 녀석을 알아보고는 조용히 나가라고 했지. 그러자 오히려 속임수 놈이 큰소리를 치는 거야.
“여긴 내가 집을 지을 곳이다! 어서 방해하지 말고 나가라!”
그래도 나는 꾹 참았어. 좋은 말로 해서 문제를 해결할 작정이었지.
“속임수 놈아, 너야말로 어서 나가라. 여기는 내가 먼저 찍어두었어.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다시는 날아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말재주가 없는 데다가 흥분까지 해서 더욱 참기 힘들었어. 속임수는 지난가을부터 이 벌통을 찜해두었다고 억지를 부리더니, 비장의 무기를 하나둘 보여주기 시작했어. 먼저 자기 머리를 뱀머리 모양으로 돌려댔지. 아마 다른 새라면 “으악, 뱀이다!” 하고 도망쳤을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안 통해. 녀석은 방법을 바꿔 입을 크게 벌리고 머리를 돌려댔지. 영락없는 고양이로 보였어. 다른 새들이라면 까무러쳤겠지만 그것도 나한테는 안 통하지. 그러자 이번에는 매의 소리를 성대모사하면서 내 귀까지 홀리려고 하는 거야. 역시 다른 새라면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을 거야.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그러면서 화가 났지. 나는 매를 가장 싫어하거든. 순간 홱 돌아버렸어. 나는 그대로 속임수 놈을 부리로 물어뜯었어. 그놈은 내 상대가 아니었어.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거의 모든 새하고 붙어봤어. 어치나 까치는 물론 까마귀나 매도 두려워하지 않아. 그 이야기는 또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테고. 아무튼 그 녀석이 달아나지 않았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라. 그 뒤로도 다른 새들이 몇 번이나 왔었지. 그때마다 내가 다 쫓아버렸어. 그만큼 이 벌통을 노리는 놈들이 많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
하늘눈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번개부리의 눈동자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수줍음이 많아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다보지는 못했지만 잔잔한 그 눈에서는, 누구에게도 덜미를 잡혀본 적이 없는, 그 누구에게도 비굴하게 타협해본 적이 없는 강하면서도 순수한 빛이 우러나오고 있었다. 날개 근육도 다른 새에 비해서 딱 벌어져 있었다. 하늘눈은 그가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하늘눈은 자신의 생가가 그리웠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날개를 파닥거렸다.
“갑자기 왜 그래! 어딜 가려는 거야?”
하늘눈은 대답하지 않았고 곧장 자신이 살았던 고욤나무까지 날아갔다. 이곳에 오면 편안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불안했다. 이곳을 떠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서름서름해지다니……. 하늘눈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조심조심 고욤나무 구멍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아무? 없었지만 이미 멧새 허풍쟁이가 집을 제법 고쳐놓은 상태였다. 하늘눈은 망설였다. 이 안에 머물고도 싶었고, 이미 남의 집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압박하기도 하였다.
“누구야! 어서 나오라는 말씀!”
허풍쟁이가 바깥에서 소리쳤다.
하늘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풍쟁이가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다시금 윽박질렀다.
“하늘눈이잖아! 이제 여기는 우리 집이라는 말씀! 너희 집이 아니라는 말씀!”
하늘눈은 싸울 정도로 이곳이 절실하지 않았고, 빠르게 날개를 퍼덕이면서 구멍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허풍쟁이가 고욤나무 높은 가지에서 한판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나는 위대한 마법사라는 말씀. 하늘눈아, 잘 들으라는 말씀. 네가 다시 한 번만 우리 집에 침입하면 그때는 너를 두꺼비로 만들어버릴 거라는 말씀! 눈물 흘리면서 엉금엉금 느릿느릿 기어다니는 우스운 두꺼비로 만들어버릴 거라는 말씀!”
그 목소리는 인간들이 사는 마을까지 울려퍼질 정도로 크고 맑았다.
“하늘눈아, 너도 ‘교활한 목도리’를 잘 알 것이라는 말씀. 쥐들이 ‘이 교활한 족제비 놈아, 어서 죽어서 인간의 목도리나 되어라!’ 하는 뜻으로 교활한 목도리라고 부른다는 것도 잘 알 것이라는 말씀. 늘 엉뚱한 곳을 보는 척하다가 느닷없이 덮치는 그놈의 무서운 발톱을 너도 잘 알 것이라는 말씀. 쥐뿐만 아니라 우리 새들도 그놈을 보면 부들부들 떤다는 말씀. 며칠 전에는 인간들이 온갖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굿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바위 아래로 수백 마리의 쥐들이 모여서, ‘교활한 목도리를 없애주소서. 교활한 목도리를 없애주소서. 교활한 목도리를 없애주소서……’ 하며 밤새도록 소원을 빌었다고 하더군. 근데 바로 그놈도 내가 혼내주었다는 말씀. 요새 그놈이 안 보이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는 말씀. 닷새 전에 내가 두꺼비로 만들어버렸다는 말씀. 마법이 풀리려면 앞으로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한다는 말씀. 그래서 요새 나는, 쥐들의 인사를 받느라고 고개가 아프다는 말씀. 내 말을 겉으로 듣지 말라는 말씀.”
어제도 이 골짜기에서 교활한 목도리를 본 적이 있는 하늘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 대꾸해주려다가 그놈의 허풍을 더 이상 듣기 싫어서 그냥 웃어버렸고, 천천히 그동안 정들었던 것하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고욤나무 집을 포기하는 순간, 이제는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중얼거렸다. 하늘눈은 자신의 냄새가 밴 고욤나무를 비롯하여 생강나무, 개복숭아나무, 다래덩굴, 진달래나무를 훑어보고는
“안녕, 고마운 것들아. 그동안 너무너무 고마웠어. 잘 있어.”
골고루 눈빛을 보냈다. 그런 다음 홰를 치고 힘껏 날아올랐다.
붉은 구름바다가 된 서쪽으로 물오리들이 날아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이곳은 골짜기 아래보다 해의 심지가 짧았고, 그만큼 햇볕도 빨리 스러졌다. 하늘눈은 번개부리를 따라 소나무 품으로 들어갔다. 번개부리의 체온이 하늘눈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이런 기분을 맛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하늘눈은 번개부리와 살을 맞대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살짝 떨어졌다. 혼자서 살아왔기에 다른 누가 옆에 있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왠지 어색했다. 혼자서 비바람을 이겨냈고, 혼자서 추위도 이겨냈으며, 혼자서 외로움도 이겨냈다. 어치니 까치니 하는 새들도 겨울에는 친척들이 다 모여서 살았으나 하늘눈은 혼자서 겨울을 났다.
“참, 나도 바보야. 아직까지 이름도 안 물어보다니…….”
번개부리가 거의 혼잣말에 가깝게 소리죽여 말했고, 하늘눈도 꼬리를 내리치면서 “나도 그 생각을 못했네” 하면서 말을 이었다.
“난 하늘눈이야.”
“하늘눈이라고?”
번개부리가 하늘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하늘을 살아 있는 눈이라고 생각해. 언젠가는 저 눈 속 끝까지 날아가고 싶어. 나무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나무가 하늘의 눈에다 뿌리박고 사는 것 같아. 그때마다 나무가 부러워. 외롭다거나 힘들 때마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해가 떠 있는 하늘을 보면 마냥 날고 싶고, 달만 있는 하늘은 더 신비스러워 보이고, 눈 오는 하늘은 다른 세상 같고, 비 오는 하늘을 보면 막 노래하고 싶고……. 살아 있는 눈이 아니라면 그렇게 다양한 표정을 드러내기란 불가능해. 나는 그런 하늘눈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었어. 그래서 하늘눈이라고 한 거야.”
번개부리는 슬쩍 하늘눈의 눈길을 피하면서 낮게 입을 열었다. 엷은 미소가 입가로 번?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지난 며칠간 엄청난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아. 꼭 꿈을 꾸는 기분이야. 난, 우연히 고욤나무 옆을 지나가다가 널 봤어. 너를 보는 순간 가슴이 흔들렸어. 네 눈은 너무 맑았어. 하늘보다 맑고 깊어 보였어. 난 네 눈을 보면서 며칠간 숨어 있었는데, 용기를 내려고 하면 가슴이 떨려서 도망치고야 말았지. 까마귀도 무서워하지 않는 나인데, 나도 내가 이렇게 소심한 줄을 처음 알았어.”
하늘눈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냥 들어주고 싶었다. 더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다 알 것 같았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네 눈을 처음 보고 반했어. 네 눈이 하늘처럼 맑았어. 하늘에 눈이 있다면 네 눈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름이 하늘눈이라니…….”
번개부리는 ‘왠지 너와 나의 만남이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킨 다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하늘눈도 속으로 놀랐다. 상대의 입에서 “하늘에 눈이 있다면 네 눈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는 말을 는 순간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하늘눈은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번개부리라고? 강한 이름이구나.”
“난 혼자서 컸어. 골짜기 바위틈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알을 낳자마자 독극물이 든 먹이를 먹고 죽었고, 아버지가 우리를 키웠어. 형제들은 여섯이었는데 둘은 집에서 죽었고, 아버지마저 매한테 당해버렸어. 우리는 너무 어렸고 먹이사냥도 서툴렀어. 결국 세 형제도…… 나만 살아남았어. 동생들 둘은 굶어서 죽었고, 누나는 역시 매한테 당했어. 그때부터 나는 강해지기 시작한 거야. 나를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걸 알았어. 누구든 나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았어. 어치? 그놈들하고도 많이 싸웠어. 한번은 내가 까치들하고 싸우는데 구경하던 까마귀 놈들이 그랬어.
- 이야 조그만한 놈이 번개 같네. 번개같이 달려들어 부리로 찌르고 달아나는군.
또 한 번은 바위에 앉아 있는 매를 보고 아버지랑 누이의 원수를 갚겠다며 공격을 한 거야. 매는 너무 당황해서 중심을 잃고 날아가버렸어. 아니 딱새가 공격하다니, 그놈도 놀랍고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야. 근데 매란 놈은 공격은 잘하지만 방어는 잘 못 해. 그래서 나는 매를 ‘겁쟁이’라고 불러. 그놈들이야말로 겁이 많아. 본능적으로 ‘매는 무섭다’라고 생각하면서 도망치는 것들한테는 강하지만, ‘매도 별것 아니다’ 하고 조금만 반항하면 오히려 겁을 먹어. 겁쟁이들이야, 그놈들은. 하여간 그런 내 모습을 본 꾀꼬리 놈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더군.
- 허허 조그만 놈이 겁도 없이 덤벼드는군. 덤벼드는 놈 앞에 장사 없군. 매란 놈이 쩔쩔매다니, 번개 같았어. 번개같이 달려들어 부리로 공격해댔어. 저놈은 번개부리야.
그 말을 듣는데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언제부턴지 주위의 새들이 나를 번개부리라고 했어.”
“감동적인 이름이야.”
하늘눈은 저도 모르게 번개부리의 몸에다 살을 비벼댔다.
바람이라고는 기척도 없는 밤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