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급 먹을거리 축제의 비결은 지독한 냄새?!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서 30분씩 두 번 기차를 갈아타면 알바라는 시골 마을이 나온다. 텅 빈 광장에서 할아버지들이 비둘기에게 모이나 주고 있을 법한 조용한 곳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마을이 매년 10월만 되면 터질 듯이 들썩인다. 바로 버섯 하나 때문인데, 볼품없는 돌멩이처럼 못생긴 데다 요상한 냄새도 난다. 그렇다면 입 쓴 환자도 벌떡 일으킬 만큼 맛있어야 하는데 맛 자체는 오히려 밍밍하니.
도대체가 이해 안 되는 이 버섯의 정체는 하얀 송로 버섯(화이트 트뤼프). 구릿하면서도 왠지 끌리는 향을 풍긴다. 알바는 세계 최고 품질의 하얀 송로 버섯이 나오는 곳으로, 가장 많이 채취되는 이맘때쯤 축제가 열린다. 그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지만, 많이 생산되지도 않기에 ‘하얀 다이아몬드’라고 불린다. 호사스런 식재료의 대명사, 검은 송로 버섯(블랙 트뤼프)이 천대를 받는 곳은 아마 세계에서 이곳뿐이리라.
시내에 접어들었는데 입구부터 축제 분위기로 시끌벅적하다. 보송보송 제철 버섯을 구경하다가 이탈리아식 생과자도 살까 말까 망설인다. 꼬들꼬들한 시식용 파스타도 이쑤시개로 날름 집어 먹어 보고, 무슨 종류가 있나 싶어 구릿한 치즈 근처도 서성여 본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참을 신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내가 여길 왜 왔지?’란 존재론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제야 떠올린다.
‘정작 트뤼프는 어디에?
한참을 가다가 ‘Tartufo(트뤼프의 이탈리아 어)’가 보이기에 눈을 반짝거렸는데 자세히 보니 ‘트뤼프 맛 소시지’, ‘트뤼프 맛 타야린’이다. 바나나 안 들어간 바나나 우유보다도 파렴치하다. 정작 그 못생긴 진짜 트뤼프는 어디에도 안 보인다. 여기 오겠다고 석 달 전부터 숙소를 구해 보았지만, 몇 안 되는 숙소는 이때만으로 1년을 버텨 내는지 조기 만실. 근처 산의 산장까지 알아보다가 결국 3킬로미터 떨어진 농가에 방을 잡고, 차편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한탄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갔다.
“도대체 진짜 트뤼프는 어디 있나요?”
이런 질문에 익숙하다는 듯 설명을 쏟아 낸다.
“아, 트뤼프는 장터에 있지 않아요. 트뤼프를 모아 놓은 곳은 따로 있어요.”
워낙 귀한 것이기에 엄격한 심사를 거친 것들로만 한 장소에 따로 모아 두었다고 한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전시회장을 찾아간다. 소피아 로렌 같은 유명인들이 트뤼프를 들고서 활짝 웃고 있는 간판을 지나 입구로 들어갔다. 입장료도 있는데 가장 기본인 2유로 티켓과 와인 부스에서 와인 두 잔을 마실 수 있는 8유로 티켓 두 가지다. 8유로 티켓을 산 사람들은 다들 와인 잔을 목에 걸고 이 기묘한 미각 탐험 채비에 자못 심각하다.
입구에서부터 큼큼, 29년 내 인생에서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기묘한 냄새가 온몸에 배어든다. 이 이상한 냄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땀 배출 안 되는 싸구려 등산복을 입고 비 온 뒤 설악산 대청봉을 등반하고 내려오다 축축한 흙더미에 미끄러져 100미터는 구르다 처박힌 옷에서 날 것 같은 냄새라고나 할까? 습한 땅의 고린내에 묘한 향이 섞여 있다. 거기에 요상한 치즈 냄새가 뒤엉킨, 어쨌든 내 생애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냄새에 코가 저리다.
화이트 트뤼프는 향으로 먹는 것인데 일단 왔으니 냄새라도 실컷 맡아 보자고 코를 가져간다. 중앙 부스에 40여 명의 판매인?이 나란히 모여 있는데 물건이라고 해 봤자 한 부스당 돌멩이만 한 것 스무 개가 고작. 영 볼품없는 모양새다. 구경꾼이 오면 놓칠세라 그걸 코에다 박아 주는데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구경꾼이 사라지면 냄새 날아갈까 재빨리 뚜껑을 닫는다. 아기 주먹만 한 것은 150유로, 호두만 한 것은 50유로 정도. 여기까지 왔는데 전리품인 양 작은 것 하나는 사수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먹을 방법이 없다. 종이처럼 얇게 저며 먹어야 하는데 도구가 없다. 그렇다고 향수처럼 주머니에 넣었다가 한국에까지 들고 갈 수도 없고(그랬다간 왕따 당하기 딱 좋은 냄새다).
트뤼프는 평균 6℃ 정도 되는 습하고 차가운 땅의 10~15cm 아래에서 자라난다. 포자가 헤이즐넛, 참나무 같은 몇몇 나무뿌리로부터 영양분을 주고받으며 자라나게 된다.
어찌 보면 트뤼프는 지구인을 가장 잘 꿰뚫어 보는 외계인이 곳곳에 심어 놓은 음식일지도 모른다. 일단 혀보다도 코를 공략했다는 점. 우리는 혀로 맛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자들은 맛의 80프로를 좌우하는 것은 후각이라고 말한다. 코는 혀와 비교할 수 없이 예민한데 코의 후각 세포는 500만~1000만 개. 입과 코는 연결되어 이어서 음식물을 씹는 중간이나 삼키는 순간에 기체의 분자 상태가 입에서 연결된 코로 올라가기에, 우리가 사실 맛을 보고 있다는 것도 냄새를 맡으며 씹고 있는 편에 더 가깝다고도 한다.
더군다나 트뤼프는 재배가 되지 않는다. 재배를 해 보려는 온갖 노력이 있었지만 항상 실패로 끝났다. 100프로 자연산, 거기가 희귀하기까지 하니 그만큼 사람들을 안달 나게 하는 게 있을까? 어쨌든 트뤼프는 우둔한 생김새나 독특한 냄새와는 달리 영리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옆에는 와인과 치즈, 타야린 등을 함께 팔고 있다. 쿰쿰한 치즈, 또 다른 차원으로 쿰쿰한 화이트 트뤼프, 농익한 와인 냄새까지 진동한다. 그 옆에는 뒤질세라 샛노란 타야린이 물결친다. 다들 화이트 트뤼프 냄새를 맡아 보고, 치즈 한 점 먹고, 와인을 음미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탈리아 북부의 고급 먹을거리 총출동이다. 타야린만 제외하면 모두 오래 묵혀 고린내가 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중 최고는 역시 화이트 트뤼프. 사랑의 묘약, 페로몬이 듬뿍 들어 있어서일까? 이것을 위해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몰려들어 코를 박느라 정신이 없다. 사람의 유별난 기호는 참 끝도 없다.
국제 화이트 트뤼프 알바 축제 Fiera Internazionale del Tartufo Bianco d'Alba이탈리아 알바 지역에서 벌어지는 화이트 트뤼프 축제로, 보통 9월 초에서 11월 초까지 알바 시내에서 매주 토, 일요일에 열린다. 이탈리아 북부 대도시 토리노(Torino)에서 기차로 1시간 30여 분(중간에 한 번 환승) 소요된다. 알바가 워낙 작은 도시라서 축제 기간에는 시내에 숙소를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인근 도시에서 이동하는 방법을 권한다.
홈페이지
//www.fieradeltartufo.or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