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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인연일 수 있는데...

<원스>, 지음知音의 연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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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여자로 인해 남자는 모든 것을 ‘쉽게’결정한 다. 대출업자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녹음실을 빌리고, 거리의 악사들을 모아서 밴드를 만든다. 그는 기타를, 그녀는 건반을, 그는 주음主音을, 그녀는 코러스를 연주하는 녹음실.

<원스>, 존 카네이 감독, 2006

문득 길에서 스쳤는데,
그들은 지음지간知音之間

그들은 서로의 음악이 돈으로 환산되지는 않고, 길거리에서, 뭇사람 사이에서 방전放電되는 것을 알아본다. 그들에게 음악은 소모되는 열정이었다. 그 열정이 소모되는 만큼 그것의 메타적 열정 또한 더욱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되었던 것이다.


여자: 누구를 위한 노래죠?
남자: 아무도.

하지만 그것이 남자의 연인에 관한 노래라는 것을 여자는 알아챈다.

여자: 그녀는 어디 있죠?
남자: 갔어요.She’s gone.
여자: 죽었어요?
남자: 죽은 게 아니라 떠났어요.

또, 결혼은 했으나 남편이 떠났다는 여자에게 남자는 묻는다.

남자: 체코어로‘그를 사랑하나요?’가 뭐죠?
여자: 밀루에슈 호Milujes ho.
남자: 밀루에슈 호?
여자: 밀루유 테베Miluju tebe.

 

그들 각자가 만든 노래에는 과거 그들이 사랑한 그/녀가 있다. 모든 음유 시인이 그러하듯이 과거 속 그/녀는 리듬과 멜로디와 화성에 실려 그들이 부르는 노래로부터 점멸된다. 그들은 자신이 부르는 노래들 때문에 과거의 사랑을 재학습하고, 그 반복적 학습의 결과는 그들을 도착倒錯케 만든다. 자신이 만들고 부르는 노래 때문에, 자신이 그/녀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것은 실로 집요하고 신경증적이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작곡하고, 그/녀의 움직임이 너울대는 비디오 화면을 보며 작사한다. 그 언어와 리듬과 멜로디의 연금술 속에서 그/녀는 계속 낯선 매혹으로 그들을 포획한다. 그들의 음악과 과거의 사랑은
이토록 강박적으로 교착되어 있다.

그런데 그 교착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 둘의 만남이다. 그들은 상대의 노래를 들으면서 상대의 사랑과 상처를 함께 알아버린다.

남자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여자로 인해 남자는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한다. 대출업자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녹음실을 빌리고, 거리의 악사들을 모아서 밴드를 만든다. 그는 기타를, 그녀는 건반을, 그는 주음主音을, 그녀는 코러스를 연주하는 녹음실. 심장의 소리를 거스르면서, 맥동의 흐름을 바꾸면서 소리가 지나간다. 풍경의 원근을 교란시키고, 소실점을 옮겨놓는 과거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몸을 이완시켜 그/녀에 대한 시선 또한 굴절시키는 음악. 음악은 모든 것을 판타지로 만들지만, 음악 스스로는 판타지가 되지 않는다. 기어코 물질일 수밖에 없는 소리를, 그들은 모르는 사이 공유해버린다. 사랑에 당도하기 전에 음악이 먼저 가 그 미래의 징후적 사랑을 밀어내버린다. 그래서 그들에겐 더 이상 사랑이 불필요해진다. 노래 속에서 그들의 사랑조차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다.

단 한 번의 인연일 수 있는데,
그것을 떠나보낸다.

‘once’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무화시키는 최종 심급인가. 우리는 ‘단 한번’이라는 어휘에 속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기에 ‘사랑’이라는 어휘가 섞여들 때 속수무책 모든 것을 걸어버린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음악으로 사랑의 카타르시스에 당도했기 때문이며, 음악으로 사랑을 모두 해소시켰기 때문이다.

노래의 가사 중 “당신이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When will you learn?”라는 질문은 대답 없이 지속적으로 유예될 것이며, 단지 “가게 해 줘요Let it go”만이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될 것이다. 그들의 자발적인 유예와 떠남의 강박적 반복은 그녀에게는 옛 남편의 회귀와 그에게는 옛 애인과의 재회와 필연적으로 얽힌다. 그러나 역시 노래가 무의식적으로 흘렸듯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갈 수 없는데,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것이고, 돌아가기 위해 남자는 여자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떠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증여는 영원한
이별의 표지가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그 이별조차 그대로 선율이 되거나, 그 선율의 잔음殘音이 또 다른 사랑이 될 것이다. 혹은 채 재구되지 못했던 기억이 청각기호와 맞부딪쳐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거나, 그녀의 머리카락과 옆모습이 시각을 떠나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면서 멜로디로 재표상될 것이다. 아무리 재생 버튼을 눌러도 기억의 단말기가 더 이상 그녀를 보여주지 않을 때, 몸에 불수의적으로 번득이는 통증으로 그녀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때, 다행히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에게는 또한 음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지금 여기’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과 음악이 함께 있다면 비등점에 오르기도 전에 사랑은 이미 끓어 넘쳐 있을 것이고, 따라서 시작하지 않은 사랑은 이미 지나간 것이 되어 있어 사랑의 서사 속에서만 과잉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음악의 여분으로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대한 조망권을 잃어버린 채 과거 속에서 자신도 연인도 소외시키면서 단지 얼룩 같은 음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그래서 음악가에게 음악과 사랑은 동서同棲하지 못한다. 작가에겐 글쓰기와 사랑이, 화가에겐 회화와 사랑이 동시 진행될 수 없다. 전자의 누수漏水로만 음악가/작가/화가는 잠시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음악/글/회화 ‘이거나’ 사랑이므로, ‘지음의 연인’은 없는 것이다. 지음은 오히려 연인관계를 차연시키는 동력이며, 그 동력으로 작품은 태어난다.

***

당신은 음악을, 문학을, 어떤 또 다른 예술을
그/녀와 공유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유예시키는 대가로 예술을 얻고 싶은 거지요. 반대로, 예술의 포기를 비용으로 치르는 사랑은 어떨까요. 그러나 사랑은 짧고 예술은 길기에, 포기한 예술과 얻은 사랑이 대칭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쓴 비용보다 얻은 그것이 적다고 투덜대지요. 하지만 사랑이 끝났다고 예술조차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은 잔혹하게도, 사랑이 끝난 후부터 흘러내리는 잔여를 먹이로 비대해집니다. 그러니, 한 번쯤 사랑을, 그 찰나의 환상을 가져보는 것도 그리 죄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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