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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한옥의 멋에 취하는 길 - 재동길과 가회로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건너편에 있는 헌법재판소부터 4차선 도로가 반듯하게 이어지는 언덕 꼭대기 감사원까지, 그리고 다시 감사원에서 언덕을 내려가 삼청동길과 만나는 지점까지의 재동길과 가회로는 북촌의 메인 스트리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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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건너편에 있는 헌법재판소부터 4차선 도로가 반듯하게 이어지는 언덕 꼭대기 감사원까지, 그리고 다시 감사원에서 언덕을 내려가 삼청동길과 만나는 지점까지의 재동길과 가회로는 북촌의 메인 스트리트라 할 수 있다. 안국역에서 재동초등학교 사거리까지는 재동길, 그 이후부터는 ‘기쁘고 즐거운 모임’이란 뜻을 가진 가회로(嘉會路)라 한다. 예전에는 두 길을 통틀어 ‘독곡로’라 불렀다.1995년 1월 27일, 조선 초대 한성판윤 독곡(獨谷) 성석인(成石璘)의 집터 부근을 지난다 해서 그리 지어졌다.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건너편에 있는 헌법재판소부터 4차선 도로가 반듯하게 이어지는 언덕 꼭대기 감사원까지, 그리고 다시 감사원에서 언덕을 내려가 삼청동길과 만나는 지점까지의 재동길과 가회로는 북촌의 메인 스트리트라 할 수 있다. 안국역에서 재동초등학교 사거리까지는 재동길, 그 이후부터는 ‘기쁘고 즐거운 모임’이란 뜻을 가진 가회로(嘉會路)라 한다. 예전에는 두 길을 통틀어 ‘독곡로’라 불렀다.1995년 1월 27일, 조선 초대 한성판윤 독곡(獨谷) 성석인(成石璘)의 집터 부근을 지난다 해서 그리 지어졌다.

헌법재판소와 감사원 같은 큰 기관 때문인지 1999년에 길을 넓히게 되었는데, 북촌길이나 율곡로와 마찬가지로 차를 위한 아스팔트 도로를 닦은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도 통행량이 많지 않고, 누가 보아도 북촌스럽지 않은 길을 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한옥과 잘 어울리는 우리 전통 소나무 가로수를 심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길을 넓힐 당시 사단법인 ‘종로북촌가꾸기’ 회장이었던 이형술 씨가 안면도에서 200여 그루를 옮겨 와 심었다고 한다. 최근 서울 도심에 노송이 많이 심어지고 있는데, 그럼 이 소나무가 떠난 안면도나 강원도 산골 풍경은 어찌 되었으며, 제 터에서 맘껏 가지 뻗고 살던 소나무가 꼭대기만 남기고 전지된 제 꼴을 어찌 생각할지 걱정이다.

가회동 31번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첫 손꼽히는 고급 주거지의 대명사로 불리었던 만큼, 지금도 가회로엔 큰 규모의 한옥과 양옥이 많이 남아 있다. 1917년의 지적 명세서나 1921년의 경성 지도에서도 세력가의 대형 필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회동 1번지는 박영효와 민영휘 등의 공동 소유였고, 가회동 31번지와 계동 105번지 역시 민대식, 민영휘의 아들의 소유였으며, 가회동 26번지 일대는 당시 한성은행 대주주였던 재력가 한창수의 소유였다.

아름다운 가게 안국점(재동 110-2, 02-736-0660, www.beautifulstore.org)

안국역 2번 출구에서 건너다보면, 한옥을 리모델링한 ‘아름다운 가게’ 안국점과 파라솔과 의자를 내놓은 ‘아름다운 커피’ 안국점을 볼 수 있다. 2002년 10월 재활용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아름다운 가게 창립과 함께 문을 연 1호점인 안국점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2009년 9월 현재 전국에 103개 매장을 오픈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별궁길 초입에 있던 안국점은 2008년 6월에 현재의 한옥으로 이사 왔다. 1호점답게 기업과 단체의 기부 행사가 대부분 이곳에서 열려, 헌 물건이 아니라 재고였던 새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다. 토요일에 행사가 많이 열리고, 크리스마스 케이크처럼 빨리 매진되는 게 많으므로, 홈페이지를 수시로 확인하다가 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야 한다. 아름다운 커피 안국점에서는 유기농 커피와 과일 주스, 장애인 자활 단체에서 만든 쿠키와 빵을 구입할 수 있다. 안국역 부근에서 만날 일이 있으면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해 저개발 국가 커피 농부를 도우면 좋겠다. 별궁길에는 아름다운 가게의 본부 사무실인 ‘그림담집’이, 가회로에는 ‘아름다운 재단’이 있어, 북촌은 아름다운 가게의 산실이라 할만하다.

츠키지(재동 109, 02-742-2335)

북촌에선 보기 드물게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일식집이다. 녹슨 철판으로 마감한 외관과 일본 냄새 물씬 풍기는 ‘츠키지’라는 레터링, 발레파킹을 해 주는 아저씨가 계신 초소까지, 강남에나 어울리지 싶었는데 과연 도곡동에 1호점이 있단다. 유명세에다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만큼 음식값이 만만치 않다. 차려 내는 모양새나 서빙하는 청년들 옷차림도 예쁘고 깔끔하지만 돈 생각 않고 배불리 먹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정식류가 1만 3천 원에서 3만 5천 원 수준으로 별도 세금이 붙는다. 지저분한 식당엔 차마 가고 싶지 않은 비 오는 날 오후, 홀로 호사를 누리고 싶을 때 들르면 좋다.

서울무형문화재 기능보존회 (재동 53-1, 02-747-0303, www.seoulmaster.co. kr)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이 침선, 매듭, 자수, 민화, 전통주, 나전장 등을 만드는 법을 시연하며, 매달 주제와 종목을 달리하여 이들이 만든 명품도 전시한다. 일반인도 체험은 물론 교육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작은 한옥 공간으로, 작품 판매처는 인사동에 있다. 헌법재판소 건너편 ‘돌절구떡집’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최승희 집터(재동 46-8번지)

한정식집 ‘한뫼촌’이 자리한 곳은 월북 무용가 최승희(崔承喜)가 자란 집터이다. 광복 이전 한국 무용계를 주도했던 최승희는 전통 한국 무용에 서구적 기법을 도입한 창작 무용으로 서구에까지 알려졌다. 시인 김영랑이 스무 살 무렵에 여고 4학년이었던 최승희와 결혼하려고 할 만큼 사랑했었다는 이야기나 최승희에 관한 글, 사진, 드라마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남쪽에 남았다면 더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승희마저 북촌에 살았다니,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의 주요 인물 중 북촌에 살지 않은 이를 찾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종가(재동 27-1, 02-764-7303)

탤런트 이정섭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유명세를 많이 탔다. 400년 종가 종손으로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정섭 씨는 궁중 요리와 서울 반가 음식을 조합한 요리를 낸다고 한다. 서울 음식은 원재료의 맛을 살려 담백하고 개운하다 못해 밋밋하며, 가지 수도 많지 않다는데, 그래서인지 가격은 비싼데 맛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는다. 서너 번 가본 나 역시 재료와 정성은 어떨지 몰라도 맛은 잘 모르겠다. 족편과 너비아니로 자랑스러운 한국 음식점에 꼽힌 종가는 재동에서만 20년이니 미각이 둔한 나를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손병희 집터(가회동 170-12)

독립 운동가이자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집은 3?1운동 거사 전날인 2월 28일,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23인이 안면을 익히고 독립 선언식의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최종 모임을 가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회합에서 공개적 장소인 탑골공원에서의 독립 선언식이 가져올 만일의 사태를 우려하여, 거사 장소를 인사동의 명월관(분관인 태화관. 일제의강제 합병 당시 매국노 이완용이 살다가 그가 이사 간 후 명월관 분관이 되었다)으로 급작스레 변경함으로써, 거사 일정에 혼선을 초래했다고 한다.

손병희 선생의 집은 800평이 넘는 대저택으로 현재의 북촌 미술관 빌딩, 음식점 궁연, 그리고 그 뒤편의 민가 몇 채까지 아우를 정도였는데 1915년 민간인 최초로 캐딜락을 몰았을 만큼 부유했다고 한다. 집터 표지석은 ‘북촌 미술관’ 앞에 있다.

백인제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제22호 가회동 93-1)

백인제 가옥

건평 47평, 대지 737평 규모의 조선 상류층의 대표 한옥이다. 1874년 4월에(1906년이라는 조사도 있다) 고종의 사촌이며 이완용의 조카로 한성은행장 중역이었던 친일파의 거두 한상룡이 압록강 흑송을 가져다 지어 1926년까지 살았다. 높은 대지 위에 솟을대문과 행랑채가 있고, 행랑 마당으로 들어서면 높은 기둥으로 인해 일부 2층으로 된 안채를 비롯해 사랑채, 별당 등이 있다. 사랑채 뒷벽에서 안마당 쪽으로 태극 문양과 완자무늬(불교를 나타내는 표시)를 넣은 담 꾸밈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집이다. 1977년, 문화재 지정 당시 백인제(白麟濟, 백병원을 설립한 당대 최고 의사로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선생의 소유였기에 백인제 가옥으로 불린다. 홀로 사시던 할머니마저 떠난 빈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흑송에 켜켜이 앉은 먼지가 더 눈에 띄는 아름다운 고옥이다.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다.

가회동 한 씨 가옥(서울시민속자료 제14호, 가회동 178)

1977년 문화재 지정 당시 산업은행이 관리하던 집이어서 ‘산업은행 관리 가옥’으로 불리었다. 백인제 가옥을 지었던 한상룡이 1928년에 이사 와 1946년까지 살았다는 대지 591평, 건평 111.27평의 저택이다. 고종 황제의 5촌 조카 이규용의 집을 사들인 한상룡이 사대부의 집을 기본으로 서양과 일본의 양식을 가미해 수리했다고 한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부 박흥식의 옛집이, 가회로 건너편에는 손병희의 저택과 백인제 가옥이 있었으니 이 일대는 대저택의 경연장 같았겠다. 조선시대에는 물론 이보다 더 큰 집이 있었다. 한 씨 가옥이 있는 178번지와 건너편 박흥식의 가옥이 있는 177번지 일대는 영조와 문숙의 소생인 화길 옹주를 능성위 구문화에게 하가시키면서, 부마가 살게 했던 능성위궁이 바로 그것이다. 연강학술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는 한 씨 가옥은 조선시대 양반가 체험관으로 활용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높은 시멘트 담벼락 너머 이후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 이곳 역시 일반에게는 개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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